내 몸속의 ‘조폭’뱃살을 잡아라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8.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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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으면서 활동하지 않는 것이 근본 원인…병에 걸리거나 의사의 경고 듣기 전에 ‘기름기’ 빼야

주부 박소미씨(가명·38)는 올여름에도 비키니 수영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10년 전 결혼 초기에만 해도 마른 몸매였는데, 출산 후에 살이 붙기 시작하더니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옷맵시까지 망치는 뱃살은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렸다. 박씨는 “본래 살 찌는 체질이 아니어서 방심했더니 한 번 찐 뱃살은 빠지지 않았다. 뱃살 빼기가 살림하는 것보다 어렵다”라며 복부 비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사저널 전영기

노출의 계절을 맞아 뱃살에 대한 고민은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를 이룬다. 뱃살은 흔히 똥배라고도 불리는데, 몸에서 쓰고 남은 기름기가 복부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을 말한다. 병원에서 컴퓨터 단층 촬영(CT)이나 자기 공명 단층 촬영(MRI)으로 복부 지방을 확인할 수 있다. 가정에서도 자신이 복부 비만에 해당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뱃살 측정은 본래 허리와 엉덩이 둘레를 비율(몸통 비)로 따지지만, 요즘에는 허리둘레 사이즈만으로도 충분히 건강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다. 대게 골반의 툭 튀어나온 부분에서 3cm 윗부분의 허리둘레를 재면 된다. 서양인과 차이가 있지만 한국 남성의 허리둘레는 90cm(약 35.4인치) 이상, 여성은 80cm(31.5인치) 이상이면 복부 비만이다. 바지나 스커트 치수가 이 이상이라면 뱃살을 줄여야 한다. 이 정도면 복부 전체 공간에서 주요 장기보다 지방 덩어리가 차지하는 공간이 크다.

잘 먹지 못했던 과거에는 배가 조금 나온 것은 흠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격’이라고 해서 후덕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뱃살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건강의 적신호이다. 남성은 군 제대 또는 결혼 후에, 여성은 폐경기 전에 뱃살이 급격히 늘어난다. 서양인에게는 뚱뚱한 체격에 배까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지만, 동양인에게는 아담한 체격에 배만 볼록 튀어나온 점이 특징이다.

뱃살이 붙는 이유로는 운동 부족, 과음, 흡연, 유전, 질병, 약물, 정신적·사회적 요인 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많이 먹으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몸에 들어오는 영양분은 많은데 소비량이 적으면 잉여 에너지가 복부에 지방 형태로 저장된다.

복부에 쌓인 지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피부 아래에 기름기가 쌓이는 피하 지방이 있다. 주로 여성의 뱃살이 피하 지방이다. 겉으로 드러나고 손으로도 잡힌다. 이른바 S라인 몸매를 유지할 수 없으며, 옷맵시도 나지 않는 등 미용상 좋지 않다. 특히 팔과 다리는 날씬하지만 배만 볼록하게 나온 사람이 있는데, 이들을 ‘마른 비만’이라고 한다.

 

▲ CT로 촬영한 복부의 내장 지방(왼쪽)과 피하 지방(오른쪽). 내장 지방과 피하 지방은 성질이 다르다. 내장 지방이 건강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 ⓒ대한비만학회

‘나쁜’ 내장 지방, 지방간의 원인이 되며 당뇨병으로 발전할 수도

문제는 복부의 장기 사이에 끼는 기름기, 즉 내장 지방이다. 내장 지방이 있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뱃살이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뚱뚱하다는 의미로 토피(tofi; thin outside, fat inside)족이라고도 불린다. 이지원 연세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비만클리닉을 찾는 사람 가운데 절반이 내장 지방을 가지고 있다. 남성과 폐경 후 여성에게서 흔하지만 20~30대 여성과 청소년도 내장 비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라고 말했다.

토피족은 스스로 날씬하다고 믿고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피하 지방과 다른 성질을 가진 내장 지방은 건강을 위협하는 ‘나쁜 지방’이다. 복부에 있는 지방은 유리지방산 형태로 바뀌어 장기로 흡수된다. 이 물질은 장과 간 사이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 관(간문맥)을 통해 간으로 이동한다. 이는 지방간의 원인이 되며, 근육이 포도당을 흡수하는 능력도 억제한다. 이런 과정에 의해 당뇨병이 생긴다.

또, 장기 주변에 지방이 쌓일수록 렙틴(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도 많아진다. 혈관 기능에 장애를 유발해서 고혈압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뇌졸중, 심근경색증과 같은 뇌·심혈관질환의 발생 위험까지 높인다. 이는 사망률 증가를 의미한다. 박혜순 서울아산병원 비만클리닉 교수는 “이런 질환의 무리를 대사증후군이라고 총칭하는데, 대사증후군의 뿌리를 추적하면 복부 비만이라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결국, 뱃살(내장 비만)은 건강을 위협하는 여러 질환을 조종하는 폭력 조직인 셈이다”라며 뱃살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다행스럽게도 뱃살을 줄이는 데에 특효약이 있다. 바로 운동이다. 활동량을 늘려 남아도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앉아 컴퓨터 자판이나 휴대전화에서 손가락만 움직인다. 활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일부러라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 허리둘레를 줄이기 위해 특별한 복부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 체내 에너지를 소비하면 그만이다.

유산소 운동이 가장 적합하다. 그중에서도 하루에 40분 이상 걷기가 최고이다. 숨이 약간 찰 정도(옆 사람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1주일에 3~5회 걸으면 좋다. 운동 시간이 한 시간이라면 40분은 자전거 타기나 수영과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머지 20분은 근력 운동에 배분하면 더 효과적이다.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다면 일상생활에서라도 활동량을 늘려야 한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거나 주차도 일부러 멀리 하고 걷는 거리를 길게 잡으면 된다.

운동을 시작하면 사람에 따라 살이 빠지지 않거나 오히려 살이 찌기도 한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장기적으로는 살이 빠지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운동을 계속하다가도 중단하면 다시 뱃살이 생긴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나이에 맞춰 운동 시간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비교적 젊은 30~40대는 새벽이든 저녁이든 시간에 상관없이 운동하면 된다. 60대 이상은 새벽 시간보다는 저녁 식사 후에 운동하는 것이 좋다. 혈당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이가 있는 사람은 굳이 살을 빼기보다는 대사증후군을 다스린다는 기분으로 운동량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적게 먹어 배고프면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좋아

육체적 활동량은 늘리지 않으면서 뱃살을 빼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은 다이어트 식품이나 살이 안 찐다는 음식에 솔깃한다. 많이 먹어서 생긴 뱃살을 먹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런 수요에 맞춰 시중에 수많은 다이어트 식품이 나와 있다. 그럼에도 복부 비만 인구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살이 찌지 않는 음식이라고 믿고 ‘많이’ 먹기 때문이다. 가령 요구르트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말에 솔깃해서 밥 대신 요구르트를 먹는다. 배가 고프니 많이 먹는다. 영양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과일과 견과류까지 넣어 먹는다.

비만 전문가들은 뱃살 예방에 특별히 좋은 음식은 없다고 강조한다. 대신 평소의 식사량을 조금 줄이라고 권장한다. 끼니마다 먹는 식사량에서 20%만 적게 먹으라는 것이다. 특히 밥·면·감자 등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좋다. 적게 먹어 배가 고프다면 채소를 충분히 먹으면 된다. 섬유질은 열량이 적으면서도 포만감을 빨리 느낄 수 있다. 적게 먹으면 체중이 줄면서 체내 지방도 감소한다. 일반적으로 체중을 10kg 줄이면 내장 지방도 약 30%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사량을 조절하는 데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된다. 하나는 천천히 먹는 습관이다. 빨리 먹을수록 자신도 모르게 식사량을 초과할 뿐 아니라 뇌에서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내도 뒤늦게 감지한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제때에 식사하는 버릇이다. 끼니를 거르면 급하게 먹어 폭식할 가능성이 크다. 폭식은 과식을 부르고, 과식은 뱃살로 이어진다. 간식과 야식은 주식보다 칼로리가 높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피해야 한다.

활동량을 늘리고 식사량은 줄이는 것이 뱃살 빼기의 지름길이다. 그럼에도 또 다른 지름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병원에서 지방흡입술과 같은 인위적인 방법에 기대는 부류이다. 특히 20~30대 여성이 이런 이유로 병원을 많이 찾는다. 병원에서 피하 지방을 제거하면 몸매는 날씬해진다.

그러나 지방흡입술로 배의 기름기를 뺐다고 해서 대사증후군이 호전된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결국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지지만 건강 유지에는 효과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운동과 식습관에 신경 쓰지 않으면 뱃살이 다시 늘어나는 요요 현상도 생긴다.  

흔히 ‘술배’라는 표현이 있다. 직장인 등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의 뱃살을 말한다. 알코올은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등 다른 영양소가 소비되는 작용을 방해한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까지 먹게 되므로 허리둘레는 현저히 늘어난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20대보다 40대가 복부 비만에 걸리기 쉽다. 20대보다 비교적 활동량이 적은 데다 에너지 대사도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상 금주가 어렵다면 절주해야 한다. 알코올 도수에 상관없이 모든 술은 뱃살을 늘린다. 술 먹을 기회를 줄이고, 술자리에서도 술을 적게 마시는 것이 상책이다. 2차, 3차 술집을 전전하거나 술을 마신 다음 날 해장술을 즐기는 습관도 삼가야 한다. 술을 마신 후 사우나 또는 운동으로 평소보다 많은 땀을 빼는 것은 체내 지방 소비에 별 의미가 없다. 땀으로 수분만 많이 배출할 뿐이다.

 

흡연은 체중 줄이는 데 도움 안 돼…오히려 복부 비만과 관련 있어

뱃살을 빼려면 담배도 끊어야 한다. 흔히 담배를 피우면 체중이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코틴이 식욕을 억제해서 밥맛을 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담배를 끊으면 식욕이 생기면서 체중이 늘어난다고 해 몸매 유지를 목적으로 흡연하는 여성도 있다. 그러나 흡연은 복부 비만과 관련이 있고 대사증후군의 원인이 된다. 예컨대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해 당뇨 위험성을 높인다. 또 담배 자체가 동맥경화의 주 위험 요인이다.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 사람이 흡연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어린 자녀의 뱃살은 더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의외로 아이의 뱃살에 대해 염려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뱃살이 빠질 것이라는 믿음이 강한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대병원의 박민선 교수는 “요즘 아이들은 많이 먹고 운동은 하지 않아 복부 비만이 생긴다. 비만인 10~17세 청소년은 성인이 되어서도 비만일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초등학교 1~2학년일 때 살이 찐다 싶으면 식습관에 문제가 없는지, 운동을 하지 않는지를 확인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방치하면 지금의 청소년이 성인이 된 후에는 복부 비만이 심각한 사회 문제까지 초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뱃살은 자살’이라는 외국의 광고 문구가 있다. 그럼에도, 뱃속 기름기를 빼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몸이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것 외에는 생활에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병에 걸리고, 의사의 경고를 듣고서야 허리둘레에 줄자를 갖다 댄다. 전문가들은 뱃살을 무시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변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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