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이 ‘제2 벤처붐’ 불 댕겼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8.1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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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산업 분야에서도 창업 열기 뜨거워…실패 경험 딛고 복귀한 1세대들의 재기도 주목

제2의 벤처붐이 일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에만 1천개가 넘는 벤처기업이 창업했다. 조사가 시작된 1998년 이후 월별 사상 최다 기록이다. 현재 등록된 벤처기업의 수는 2만1천여 개(6월 기준)로 2만개를 넘어선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10년 전 벤처붐이 일 때에도 1만을 조금 넘은 정도였다. 한 자릿수에 머무르던 증가률이 2009년에 22.7%로 대폭 오르더니 올해 상반기에는 13.2%나 상승했다. 허진호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주위에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10년 만에 느껴보는 활기이다. 그동안 벤처기업을 차려서 성공한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사업 영역이 전혀 없었다. 인터넷 혁명에 비견되는 모바일 혁명이 벤처붐을 일으키고 있다”라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벤처붐의 원동력은 스마트폰 출시로 인한 모바일 산업과 녹색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 영역의 탄생에서 꼽을 수 있다. 이미순 벤처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998년에 일었던 벤처붐이 IT업종에 치중되어 있었다면 최근에는 에너지, 부품 소재, 첨단 융합, 모바일 등으로 산업 영역이 다양해지고 확대되었다. 높은 기술력과 신속한 대응이 요구되는 이런 산업 영역의 확대가 벤처붐에 불을 댕겼다”라고 분석했다.

 

▲ 일러스트 허경미

모바일 혁명은 벤처 1세대들의 귀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전의 인터넷 혁명을 능가하는 엄청난 시장이 열린 만큼 못다 푼 한을 풀어보자며 재기에 나섰다. 인생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전제완 프리챌 대표를 비롯해, 부도를 맞고 IT업계를 완전히 떠났던 노상범 홍익인터넷 대표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 국민을 ‘싸이질’에 열광케 한 주인공임에도 큰돈을 벌지 못하고 SK커뮤니케이션즈(이하 SK컴즈)에 싸이월드를 팔아야 했던 이동형 대표, 승승가도를 달리다 무료해져 사업을 그만두었던 NHN 창업자 김범수 대표까지 벤처 사업가로 돌아왔다. 한국의 벤처 창업 환경은 척박하다. 10년 전, 벤처 열풍이 불었을 때에는 투자 자금이 넘쳐났다. 정부 지원금도 잇따랐다. 하지만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개인투자자는 사라졌고, 벤처캐피탈은 안전 지향적인 투자로 보수화되었다. 벤처 창업은 고급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대안임에도 사회적 인식은 중소기업으로 치부해버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인재들이 몰리지 않아 창업자 혼자 모든 일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벅찰 수밖에 없다. 벤처 1세대들은 이런 환경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다. 복귀에 나선 이들이 한목소리로 “벤처 창업의 성공 모델이 되어 보이겠다. 벤처 영웅이 되어 벤처붐을 제대로 이끌어내겠다”라며 도전장을 내민 것도 책임 의식의 발로인 셈이다. 

▲ 전제완 유아짱 대표(위)는 개인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짱라이브’를 들고 재기에 나섰다. ⓒ시사저널 박은숙

소셜 네트워크와 스마트폰이 새로운 사업 환경 조성

 전제완 프리챌 대표는 ‘유아짱’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개인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짱라이브'(www.jjanglive.com)’를 들고 나왔다. 프리챌로 인터넷 커뮤니티 열풍을 몰고 왔던 그답게 이번에는 영상으로 소통하는 소셜 영상 미디어에 초점을 맞췄다.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게 되면 영상의 일상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미국에서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멀티미디어 시대의 마지막 강펀치가 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인들과 소통하는 데에는 영상만큼 호소력이 강한 것이 없다. 유튜브에 올리는 UCC는 보여주기 위한 영상이지 소통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새로운 영역의 UCC를 겨냥했다. 개인 방송 홈피를 만들어줌으로써 지인들끼리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사업이다”라고 설명했다. 짱라이브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는 물론 메일, 게시판, 커뮤니티 등 연동되어 있는 모든 사이트에 등록시켜주는 서비스이다. 동영상이 촬영된 지역까지 지도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이 관심을 갖는 지역 정보를 다른 사람들이 올린 영상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의 최종 목표는 글로벌 상거래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다. 언어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영상을 이용하자는 발상에서 영상 플랫폼을 만들었다.

전대표는 인생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이 사업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리챌 대표로 있던 2002년, 횡령과 배임 등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2년간 형을 살다 나온 그에게 남은 것은 2백50억원의 빚뿐이었다. 구속된 이후 그는 회사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프리챌홀딩스의 부도로 인한 부채를 모두 떠안았다. 대표이사에게 무한 책임을 묻는 연대 보증제도 때문이었다. 한 번 벤처 창업에 실패한 사업가들이 재기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 폐단이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 허진호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캐피탈은 실패를 2번 정도 경험한 사업가에게 가장 활발하게 투자한다. 하지만 한국은 연대 보증 제도 때문에 대표이사가 재기에 나설 수 없다. 경험 많은 벤처 창업가가 탄생할 수 없는 환경이다”라고 지적했다.

전대표가 재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살기 위해서다. 그는 “뛰어내릴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하겠더라. 개인 파산신청을 해서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 벤처 사업은 나의 운명이자 숙명이다. 벤처로 돈 번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벤처 영웅이 탄생하고 그래야 벤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 그 역할을 한번 해보고자 한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 노상범 홍익세상 대표(왼쪽)는 쉽고 저렴하게 안드로이드 앱을 제작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앱 개발 도구를 개발했다. ⓒ시사저널 우태윤

홍익인터넷으로 한 해 70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웹에이전시’의 터줏대감 노상범 대표도 지난 1월에 복귀했다. 2003년 회사가 부도난 이후 업계를 떠났던 그가 7년 만에 ‘홍익세상’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돌아왔다. 필리핀을 오가며 포커룸 임대 사업을 하던 그에게 모바일 시장은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보였다. 인터넷 시대에 웹사이트를 구축해주는 서비스로 주목받은 것처럼 이번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사업으로 도전에 나섰다. 그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소 1천만원 이상이 든다. 처음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웹사이트를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었을 때와 똑같다. 단순한 조작으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주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번득 스치고 지나갔다. 과거 많은 회사를 상대해보았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라며 재기에 나선 계기를 설명했다. 홍익세상이 개발하고 있는 ‘하이씨엘(HiCIEL)’은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 없이도 클릭 몇 번으로 안드로이드 앱을 제작할 수 있도록 만든 개발 도구이다.

하지만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좋은 아이템이었지만 과거에 한 번 실패했다는 이유로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벤처 거품이 가져다준 학습 효과도 한몫했다. 그는 “과거에는 벤처회사라고 말만 하면 돈을 투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투자자는 전무하다시피 하고, 벤처캐피탈 역시 신생 업체에게는 투자하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에게 1억원을 빌려서 프로그램 개발비로 충당해야 했다”라고 털어 놓았다. 내수 시장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글로벌 회사를 차리겠다는 의지로 모든 시스템을 영어, 일어, 한국어 3개 언어로 개발했다. 그는 “벤처를 처음 창업했을 때에는 대부분 기술이나 아이디어 개발에 몰두한다. 하지만 회사는 그 외에도 마케팅, 내부 조직, 자금, 인력 관리 등 신경 쓸 것들이 많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 것도 한 번 실패한 경험에서 얻은 교훈 덕이다. 회사 경영의 노하우가 어느 정도 생겼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10개 중 9개 실패…재기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싸이월드 창업자인 이동형 대표는 위치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런파이프’를 가지고 나왔다. 현재 자신이 있는 장소에 대해 여러 사람이 작성한 글을 보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그는 SK컴즈 일본 싸이월드 대표로 일본에 있으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대표는 “일본이라는 낯선 공간에 가니 다른 사람들이 쓴 정보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쓸데없이 바가지를 쓸 염려도 없었고, 맛 없는 식당에서 돈을 허비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이처럼 정보는 공유할수록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위키피디아처럼 한 장소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사람들이 직접 작성해 공유하게 된다면 생활이 편리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창업 계기를 설명했다.

그가 처음에 싸이월드를 만들어 창업하던 1999년에는 오직 돈을 벌 생각만 했다고 한다. 창업한 지 4년이 지나자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협심증, 지방간, 급성 녹내장까지 앓았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10년이 흐른 지금, 그는 여유를 되찾았고 새로운 가치관이 생겼다. 이대표는 “세상의 모든 일이 지속성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사라지면 그만인 사업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 사회에 기여하는 사업을 해야 지속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나의 존재 가치도 높아진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불기 시작한 벤처붐이 반가울 따름이다. 최근에는 SNS를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려고 하는 회사 대표 6명이 함께 모임도 만들었다. 정보 공유를 통해 발전된 사업 모델을 모색하고 벤처를 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 위해서다. 그는 “내 사업 아이템이 당장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내 경험이 다른 사업 아이템을 성공시키는 밑거름이 되는 것도 큰 기쁨이다. 벤처 생태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나의 결과물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 싸이월드 공동 창업자인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위)는 위치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런파이프’를 선보였다. ⓒ시사저널 이종현

NHN 창업자인 김범수 대표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새롭게 재기에 나섰다. 2007년 NHN을 떠난 뒤 4년 만에 복귀했다. 그에게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은 모바일 시장의 ‘혁명’으로 와 닿았다. 그는 “전세계 PC 사용자는 18억명이다. 휴대전화는 그 두 배가 넘는 48억명이 사용한다. 이들이 나중에는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다고 가정하게 되면, 모바일 시장은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가졌다”라고 전망했다. 그가 지난 3월 출시한 ‘카카오톡’은 아이폰 사용자 간에 무료로 문자메시지 및 사진과 동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고, 실시간으로 그룹 채팅을 할 수 있는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이다. 모바일에서 그룹 채팅을 할 수 있는 것은 카카오톡이 처음이다. 8월 중순에는 안드로이드 버전도 출시할 예정이다.

벤처 1세대들의 귀환은 벤처 생태계를 건강하게 다지는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 어려운 한국의 벤처 환경까지 생각하면 ‘의지의 사나이’라는 칭호도 아깝지 않다. 허준호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벤처는 10개 가운데 9개가 실패한다. 태생적으로 그렇다. 따라서 실패한 사람들이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벤처 생태계가 건강해질 수 없다. 대표이사에게 연대 보증을 서게 하는 악습을 없애고, 실패한 이들의 등을 다독거려 줄 수 있도록 사회적 토양이 바뀌어야 벤처붐이 지속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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