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잠’, 밤에는 ‘알바’
  • 한병관 인턴기자 ()
  • 승인 2010.08.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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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족의 삶’ 현장 취재 / ‘자신 상실’ 하기 전에는 활발한 생활인…“당장 힘들지만 나름의 꿈 있어”

인천에 있는 PC방에서 날품팔이를 하는 니트족 강상혁씨(가명·26). 지난 7월21일 오후 7시, 강씨는 약속 장소인 인천 선학역 앞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 앞 버스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서 기자가 다가갈 때까지 연신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무척 피곤해 보였다. 그는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냐는 질문에 “얼마 전부터 부모님의 성화 때문에 PC방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낮에는 거의 잠으로 보낸다. 아직 잠이 덜 깼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아르바이트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저녁을 같이 먹었다. 강씨는 한동안 제대로 된 외식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째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매우 궁핍하다. 자존심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기도 부담스럽고, 자연히 밖에서 남과 식사할 기회가 적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밥 한 그릇과 돼지갈비 3인분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면서도 “지난 몇 년 동안 는 것은 담배밖에 없다”라며 식사 내내 담배를 놓지 않았다.

배를 채우고 긴장이 풀렸는지 강씨는 자신의 얘기를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강씨는 지난 2008년 주식에 손을 댔다고 한다. 그는 “수익률이 8백%까지 올라간 적도 있지만 주식워런트증권(ELW)에 손을 대 투자금 전부를 잃었다. 그 뒤 다니던 2년제 대학도 휴학했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이가 어떤 연유로 인해 일을 포기하는, 전형적인 ‘자신 상실형’ 니트족이었다.

 

▲ 니트족 가운데는 별 다르게 시간을 보낼 것이 없어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왼쪽은 서울 신림동 고시촌 인근의 한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시사저널 윤성호

강씨는 당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이 가난했다. 단숨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주식이라고 생각했다. 병역특례 업체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모은 1천5백만원을 주식으로 날린 뒤 모두 끝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당시 심정을 설명했다. 강씨는 이후 대인 기피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실제로 그와 연락이 닿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의 휴대전화는 대부분 전원이 꺼져 있기 일쑤였다. 강씨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놓는다. 친구들에게 무너진 내 모습을 보이기 싫다”라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강씨가 일하는 PC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씨는 이전 근무자와 임무를 교대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돈을 세거나 카운터 앞 스낵을 정리할 때도 서툴러 보였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PC방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강씨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PC방 손님들 중에도 니트족이 꽤 있다. 별 다르게 시간을 보낼 것이 없기 때문에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PC방에는 20~30대 또래로 보이는 청년들이 많았다.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을 건 듯, 모니터 속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PC방에서 30시간 넘게 게임을 한 적도 있다”

PC방에서 강씨의 소개로 또 다른 니트족 임현수씨(가명·25)를 만날 수 있었다. 임씨는 현재 네 살 연상인 부인과 다섯 살배기 딸을 둔 가장이었다. 그는 “5년 전 딸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 지금은 친가와 처가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질문하는 도중에도 임씨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레벨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겉보기에도 심각한 게임 중독이었다. 전문가들은 니트족들 중에는 게임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 경우 사이버 세상과 같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회와의 소통이 불가능해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게 된다고 한다. 이른바 ‘은둔형’ 니트족이다.

ⓒ시사저널 윤성호

임씨는 오늘만 9시간째 게임 중이라고 했다. 심할 때는 PC방에서 30시간을 넘게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그의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었고, 입술은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게임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지 못한 듯 상당히 초췌해 보였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냉동만두와 냉동완자를 가져와 먹기 시작했다. 임씨는 식사를 대부분 PC방에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운다고 했다.

임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무직자로 있다. 취직하기 위해 애써 보았으나 실패했다. 임씨는 “며칠 전에는 안 되겠다 싶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하지만 성격상 진득하게 일을 하지 못한다. 노력했지만 나흘 만에 일을 그만두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딸의 육아는 어떻게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임씨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게임에 빠져 있는 내가 답답하다. 번듯한 일자리도 갖고 싶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가장으로서 마음에 남아 있는 책임감 때문인지 몹시 괴로워했다. 임씨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장모는 물론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아내도 놀고 있는 탓에 집에서 항상 부딪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임씨의 아내 역시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집에 머무르고 있다. 간혹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생활비와 양육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친가에서 보내오는 돈과 같이 살고 있는 장모의 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며칠 전에도 취업 문제로 장모와 심하게 다투었다. 임씨는 “장모께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다만 나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질 무렵, 임씨는 딸을 업고 나온 장모 손에 이끌려 PC방을 빠져나갔다.

벌써 새벽 3시를 넘긴 시각, 강씨는 졸음을 쫓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강씨는 유일한 낙이라며 스포츠 채널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의 어렸을 때 꿈은 축구 선수였다. 그만큼 예전에는 매우 활달했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막노동, 단란주점 웨이터, 금속공 등 안 해본 일 없이 열심히 일했다.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래도 희망을 갖고 활발하게 생활했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 강씨의 교대 시간이 되었을 즈음, 그의 재활 의지가 궁금해졌다.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PC방에서 밤을 지새운 청년들도 하나 둘 자리를 비웠다. PC방을 빠져나와 강씨의 퇴근길에 넌지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나에게도 나름의 꿈이 있다. 앞으로 투자회사 CEO가 되고 싶다. 마음이 정리되면 자기 계발도 하고 싶고 오랫동안 쉰 학교도 가고 싶다. 다만 천천히 하고 싶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탄 강씨는 기자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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