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잃은 ‘니트족’출구는 어디에…
  • 이철현 기자·임송 인턴기자 ()
  • 승인 2010.08.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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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6월 말 기준 8.3%)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기업 실적 개선과 투자 확대에 따라 전체 실업률은 떨어지고 있으나 청년 실업률은 고공 비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공공 부문에서는 청년 실업 완화 정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임시직이나 계약직 형태로 청년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한 조처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청년 무직자를 일컫는 ‘니트족(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이 그들이다. 취업에 자주 실패한 탓에 일할 의지마저 잃어가는 청년 무직자들은 경쟁 사회의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표류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니트족과 함께 지내며 그들이 삶을 소진하는 행태, 좌절과 자기 모멸 속에 신음하는,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또한, 위풍당당하게 살아가는‘자발적 니트족’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시사저널 윤성호

중앙대 법학과 졸업 예정자인 김미영씨(가명·25)가 올해 상반기에만 작성한 입사지원서는 벌써 30여 개가 넘는다. 김씨는 아직까지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졸업을 미루고 추가 학기를 다니며 다음 하반기 채용을 기다리기로 했다. 김씨처럼 구직난 탓에 취업 전에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들이 부지기수이다. 이에 ‘대학 5년생’을 배려하기 위해 졸업유예제가 잇따라 도입되고 있다. 2008년 졸업유예제를 도입한 한국해양대학교의 학사과 직원 김미옥씨는 “졸업 요건을 갖추었어도 어학 능력과 자격증 취득 등의 기회를 주기 위해 졸업유예제를 도입했다. 졸업생 신분보다는 재학생 신분이 취업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졸업 유보를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해양대의 졸업유예제 신청자는 첫해 7명에서 현재 98명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졸업유예제를 도입하는 학교도 점점 확산되는 추세이다. 취업난 탓에 어쩔 수 없이 졸업을 유예해야만 하는 이들의 상황은 정작 청년 실업률에 반영되지 않는다.

자발적 구직 의사 포기보다 일자리 부족에 따른 낙오 사례 더 많아

2010년 7월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8.3%이다. 통상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청년 실업률은 10% 안팎이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청년 실업률 수치 자체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에 대한 노동 시장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지표와 현실의 괴리는 ‘청년 실업률’에 포함되지 않는 ‘비경제 활동 인구’ 탓에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고시생이나 현실 회피자가 바로 ‘비경제 활동 인구’에 포함된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선임연구원은 “한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비경제 활동 인구를 실업률에 포함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 니트족이다”라고 설명했다. 니트는 1999년 영국에서 의무 교육만 마치고 진학하거나 취직하지 않고 직업 훈련도 받지 않는 청소년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일자리를 갖지 않은 채 진학이나 직업 훈련을 포기하는 비경제 활동 인구를 일컫는다. 니트족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국형 니트족은 스스로 구직 의사를 포기한 것보다 일자리가 부족한 탓에 취업 경쟁에서 낙오된 사례가 더 많다. 그리고 가족 노동형, 청년 실업형, 함정형, 현실 회피형으로 구분된다. 함정형과 현실 회피형은 비경제 활동 인구로 분류된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과 고시생이 함정형 니트족이다. 일본형 니트족은 한국에서 현실 회피형에 해당한다. 금재호 선임연구원은 “니트족은 현실적인 지표로서 대학 이상 졸업자의 실업, 비경제 활동 문제를 들추고 지원 정책을 펼치는 데 단초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정확하게 구직난을 평가하기 위해 설문자의 현실을 더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수도권 소재 2년제 대학을 다닌 김정훈씨(가명·27)는 2년간 편입 시험에 실패한 후 부모의 가게 일을 돕고 있다. 김씨는 대학가에서 퓨전식 주점을 운영하는 부모를 도와 저녁 시간부터 마감 때까지 일하고 있다. ‘가족 노동형 니트족’에 해당되는 그는 “내가 큰아들이라 어차피 이 가게가 내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큰 걱정은 없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1년간 대학에 다니다가 바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편입하기 위해 친구들을 따라 학원에 열심히 다녔지만 성적도 잘 오르지 않고 경쟁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김씨는 “어차피 요즘에는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고, 취업을 해도 연봉이 적다. 차라리 부모님의 술집 경영을 돕는 것이 낫다. 나는 이것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편입에 실패한 내 친구들 가운데는 그냥 노는 애들도 많다. 이제 나는 나이도 웬만큼 있는데 편입하고 취업하려면 골치 아프다. 지금 버는 수입에도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직 니트족이다.

니트족 지표는 대학 이상 졸업자의 실업이나 비경제 활동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다.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청년 실업률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니트족의 비율은 오히려 높아지는 추세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교육 정도별 비경제 활동 인구’ 자료에 따르면 대졸 이상 비경제 활동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고시 준비생과 공무원 시험 준비생인 함정형 니트족은 비경제 활동 인구로 분류되며 실업률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 총 1천7백19명을 선발하는 9급 국가직 공무원 공채 시험에는 10만명이 넘는 인원이 응시했다. 최대 고시원 밀집 지역인 서울 관악구 대학동과 신림동에는 4만명가량의 고시생이 거주하고 있다.

대학동 고시촌에 6년째 거주하고 있는 이유현씨(가명·27)는 법과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학원에 다니거나 동영상 강의, 독학 등 매번 공부 방법을 바꿔가며 노렸지만 여전히 벽은 높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어 뒤늦게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니 로스쿨 도입이 확정되면서 2013년을 끝으로 사법고시가 폐지될 형편이다. 이씨는 “사법고시와 로스쿨은 입학 시험 내용도 다르고 그 성격도 달라서 우선 하던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점점 고시 합격 정원은 줄어드는데, 기를 쓰고 몰리는 사람도 많고 해서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와서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 아직 대학 졸업도 하지 못한 상태이고 다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시에서 떨어지면 어떡하나 막막하기만 하다”라고 말했다. 함정형 니트족은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대 수준에 부합하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데서 발생한다. 이들은 구직 의사를 가졌으나 사회적 평가, 희망 임금의 차이와 장래성 등의 문제로 취업을 하지 않고 있다.  

 

▲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일부 ‘니트족’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로 당장의 생활고를 해결하기도 한다. ⓒ시사저널 윤성호

사회의 높은 기대치도 구직 활동 방해…정부 차원 종합 대책 시급

함정형 니트족과는 달리 취업 희망을 표명하지 않는 비구직 니트족으로 현실 회피형 니트족이 있다. 최인수씨(가명·25)는 결혼과 함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구직 활동에도 수차례 실패한 후 결국 친가와 처가에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PC방에서 보내고 있으며 가끔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가 들어와도 1주일도 채 안 되어 그만두고 마는 등 일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다. 최씨는 “내가 배운 것도 없고 성격도 서글서글하지 못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뭐라도 배워서 먹고살아야 할 텐데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개인의 경쟁력을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탓에 니트족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의 높은 기대치는 오히려 직업을 구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되고 있다. 여러 가지 부담과 압박으로 구직자들이 구직 활동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고시 또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41만명, 현실 회피자가 30만명, 가족 노동자가 3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청년 실업률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니트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학력이나 경력 등이 부족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직업 심리검사, 심층 상담, 취업 알선을 돕는 ‘청년층 뉴스타트’와 중소기업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 인턴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청년 실업률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하다. 노동부 취업지원과 구원희씨는 “아직 니트족만을 위해 특화된 프로그램은 없다. 기존 프로그램에 니트족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8월 안에 청년고용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금재호 선임연구원은 “노동 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한 현실 회피자를 정책 대상으로 삼아 급변하는 산업 사회의 피해자나 부적응자로 파악해야 한다. 단체 생활을 통해 그들에게 사회 간접 경험을 시키고 사회 참여 의욕을 고취시켜 노동 시장으로 다시 복귀하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통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일본에서는 경기 침체기에 ‘인터넷 카페 난민’이라 불리는 니트족들이 많이 늘었다. ⓒEPA

전문가들은 일본에서 니트족이 느는 원인을 고용 환경과 교육 문제에서 찾고 있다. 1990년대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은 고용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취업하고 싶은 청년들이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취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겐지 유다 도쿄 대학 사회과학연구소 교수는 자신의 저서 <니트>에서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지나치게 개성을 중시하고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그대로 방치한다. 또 오랫동안 풍요를 누리며 자란 일본 청년들은 생계에 어려움이 없어 여전히 부모에게 기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본 사회에서 어려움 없이 곱게 자란 젊은이들이 파편화되고 자생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니트족의 유형을 크게 ‘비행형’ ‘은둔형’ ‘자기 실현 추구형’ ‘자신감 상실형’의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사회에 불만을 갖고 반사회적 행태를 보이는 ‘비행형’과 일명 ‘히키코모리’로 대변되는 ‘은둔형’은 전세계에서 나타난다. 반면 직장 생활에 겁을 먹는 ‘자기 실현 추구형’과 직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자신 상실형’은 일본 특유의 유형이다. 일본에서는 졸업 후 일제히 취업하고, 비슷한 시기에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 생활 방식이다. 때문에 한 번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면 재취업하기 힘든 구조이다. 일본 사회학자들은 “위계적이고 정형화된 일본의 직장 풍토가 곱게만 자란 일본 청년들과는 맞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는 니트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하나의 사회적 공감대로 형성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 2005년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해마다 8백억 엔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 문부과학성의 ‘청년 자립·도전 플랜’이다. 일본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의 직업관을 정립하는 진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진로 교육은 중학교 때부터 실시한다. 사회에 진출하기 전, 학생들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주고 니트족이 되는 것을 처음부터 막겠다는 취지이다. 일본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니트족 자립 기숙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자립 기숙사’는 전국 40여 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니트족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생활 습관을 바로잡고 봉사 활동을 통해 근로 의식을 고취시킨다.

최근 한국에서도 일본의 사례를 연구하고 현실에 응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엿보인다. 한국노동연구원 남재량 박사는 “한국에서도 일본의 재활 프로그램 사례 연구가 일부 진행되고 있다. 국내 몇몇 시민단체는 일본 재활 지원 단체와의 교류를 통해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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