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분열이 ‘세종시’ 망쳤다
  • 배운섭 | 중소기업인 ()
  • 승인 2010.08.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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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안 부결된 것은 박 전 대표와 대통령 탓…신뢰를 위해 국민을 버린 큰 오류 범한 일

 

원통하고 분하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비운에 잃고 다시는 볼 수가 없어 허공만 쳐다보고 멍하니 서 있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2010년 6월29일 제18대 국회 6월 임시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투표를 통해 찬성 1백5, 반대 1백64, 기권 6으로 부결되었다. 그 결과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 대신에 9부2처2청을 이전하는 행정 중심 복합도시 건설이라는 원안이 실현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중앙 행정 부서가 두 곳으로 나누어져 근무를 하게 되니 가족의 거소와 근무지가 장거리로 분리되어 출퇴근의 불편함 외에 시간과 경비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게 되었다. 또, 야간 공동화에 따른 유령 도시의 병폐로 인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과천 청사의 경험으로 충분한 실험료를 지불했다고 본다. 비효율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차치하고라도 국가 비상사태 발발과 같은 분초를 다투는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서울과 연기에서 언제 함께 모여 국무회의를 개최할 것이며 긴급 안보회의를 열어 국가 안위에 관한 사항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한국전쟁은 일요일 새벽 4시에 발발했고, 북한군은 순식간에 서울까지 밀려왔다. 이러한 상황 대처를 생각한다면 행정수도 분할은 출발 자체가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충청권 유권자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려는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세종시 안으로 “재미 좀 보았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이미 확인된 사항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는 “세종시는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봐야한다. 미래의 문제로,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고 보드레한 말이다. 그러나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 균형 발전 방안이라면 굳이 행정수도를 분할하지 않고 수정안처럼 국제 교육·과학·비즈니스 벨트로 개발하면 훨씬 더 효과적일 텐데, 비효율성에다가 위험 부담까지 떠안아가면서 원안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국토의 균형 발전은 나라 전체의 발전이라는 전제하에서 필요한 것이지 균형 발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나라 전체가 마이너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박 전 대표는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약속은 지켜야 하지만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 아무리 약속이라도 잘못된 약속은 양해를 구하고 다시 해야 한다. 잘못된 약속인 줄 알면서 신뢰를 얻기 위해 지켜야 한다면 애초에 그 약속이 국민을 위한 약속일진대, 신뢰를 위해 국민을 버린다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백보를 양보해서 잘못된 약속이라도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지켜야 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할 때 그 국민은 전체 국민 5천만명인가 아니면 충청도민 5백만명인가. 만약 5백만명 충청도민과의 약속이라면 4천5백만명 국민이 충청도민 5백만명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

한 번 옮긴 행정 부처는 자손 만대까지 이어지므로 그 엄청난 피해는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행정수도를 둘로 쪼개 놓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하물며 당리당략이나 계파의 이해에 따라 충청도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이는 대역적 발상이요,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다.

 

▲ 지난 6월22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 실시된 세종시 수정안 표결에서 안건이 부결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계파의 이해 따라 표 얻기 위한 것이라면 큰 잘못

세종시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수정안을 통과시키려면 국회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므로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일치단결해 당론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데 당론 결정 순서를 무시하고 충청 지역 출신 총리로 하여금 앞장을 서게 하면서 일이 틀어졌다. 행정부를 분할하지 않으면서도 충청도민에게 다른 경제적 혜택을 부여하고 국토 균형 발전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으면 당연히 여당 의원은 모두 찬성할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매장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한 발상은 잘못된 발상이고 참모들이 그런 제안을 했더라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하고 국운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만에 하나라도 잘못될 경우(수정안이 부결될 경우)를 예측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때를 대비한 모든 방비책을 강구했어야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사전에 박근혜 전 대표와 잘 조율했어야 하고, 만약 박 전 대표가 끝까지 반대를 하면 국회 통과가 불가능하므로 무슨 명분을 붙여서라도 국민투표까지도 생각했어야 현명하고, 훌륭한 대통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국민투표까지 가서 부결되면 그것은 불가항력이므로 대통령이 책임질 성질이 아니지만, 그 이전에 수정안이 폐기되는 것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책임이다. 박 전 대표와 조율이 잘되어 국회에서 수정안이 통과되었다면 그것을 계기로 친이·친박의 갈등도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다.

세종시 원안 추진이라는 이 불행한 결과는 야당의 반대 때문이 아니다. 여당 분열의 책임은 전적으로 친이·친박의 두 수장인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에게 있다. 직접적으로는 반대표를 던진 박 전 대표를 위시한 친박 의원에게 그 책임이 더 많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개연성을 충분히 숙지하고도 방치한 것은 국정의 책임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애국심보다는 사적 감정이나 개인적인 공명심의 발로라고 판단된다. 이는 인식 있는 과실 내지는 미필적 고의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차기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한 박 전 대표를 지지하고 신뢰했던 수많은 지지자가 실망하고, ‘박근혜도 못 믿겠으니 누굴 믿을 것이며 누구에게 나라를 맡겨야 안심하고 살 수 있을까’ 하는 허탈감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그 ‘국민과의 약속’과 ‘국민의 신뢰’라는 것이 명분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충청도민 5백만명과의 약속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4천5백만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충청도 유권자의 10배에 해당하는 표를 잃는 우를 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분명히 소탐대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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