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수사 ‘폭격’ 맞은 방산업계
  • 김종대 | 편집장 ()
  • 승인 2010.08.1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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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윗선’의 지시로 리베이트 척결한다며 ‘강행’…지난 정부의 비자금 찾겠다는 정권의 의도로 비쳐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무기 도입비의 20%는 깎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군의 무기 도입 예산의 20%가 불법적인 리베이트로 거래된다’는 뜻이다. 1년에 9조원이 넘게 쓰이는 군의 무기 도입액 중 1조~2조원이 리베이트를 근절하면 절감될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이런 지적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급기야 앞으로 외국과의 모든 무기 거래는 “업체의 개입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 대 정부 구매 방식(FMS)으로 추진하겠다”라는 김태영 국방부장관의 언급이 지난해 12월3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나오기까지 했다. 국방부장관의 이같은 언급은 국내 무기중개상이나 해외 방위산업체 무역 대리점들이 국방 예산을 축내는 존재라는 확신을 전제로 하고 있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더군다나 국방부장관 보고 직후 변무근 방위사업청장은 재차 국내 무기중개상들에게 ‘리베이트 척결’을 공언하는 서신을 발송했다. 이 편지를 받은 무기중개상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변청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1일 서울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열린 2010년도 외교·안보 분야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김태영 장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이루어진 뒤 1월 초에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권력형 비리, 교육 비리, 공기업 비리, 금융 비리 등 사회·경제 사범을 집중 단속한다는 방침과 함께 무기 도입 관련 리베이트 척결을 최우선의 사정 대상으로 내세웠다. 국내 방위산업체에 대한 고강도 사정이 공개적으로 언급되고 난 이후 방산업계는 지금 고난과 시련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검찰의 칼끝은 방위산업체의 부당 이득이 방산 제품의 원가 부풀리기에 있다고 보고 원가 조작을 통한 비자금 조성의 주범을 색출하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방위산업체에 대한 압박과 함께 국방 예산의 증가율 둔화, 갑작스러운 물량 축소로 인한 경영난 가중 등으로 몇 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셈이다. 이에 따른 피해는 대기업보다, 여기에 딸린 수백여 개의 중소 협력업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는 양상이다.

방위산업체 비리 의혹에 대한 현 정부의 고강도 압박이 전개될수록 방위산업체의 정부에 대한 반감도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그런 양상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드러났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다. 부산·창원·사천 등 방위산업체 공장이 몰린 지역의 여러 업체 관계자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의외로 야당이나 무소속 표가 많이 나온 것 같다”라며 달라진 업체 직원들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투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강압적 수사에 대한 비판 제기돼

지난 6월 초에 국내 굴지의 한 방산 대기업의 전 대표 P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P씨는 서울지검 특수3부의 지휘 아래 2개월 동안 방산 제품 가격을 원가 조작으로 부풀렸다는 혐의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고 있었다. 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P씨는 수차례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동안 자신은 물론 주변 친지에게까지 수사망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검찰로부터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사정에 정통한 방산 관계자들은 방산업체에 대한 검찰의 강압적 수사 사례가 무수히 많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또한, 알려진 것과 달리 P씨가 몸담았던 기업의 비리가 대단치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서울지검이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검찰의 방산 비리 수사는 현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에, 김대중 정부 당시 전투기 도입 사업(FX) 등 수주 실적이 높은 8개 무기 중개업체에 대한 세무 조사에서부터 그 신호탄이 나타났다. 본격적인 방위산업체 수사는 지난해 상반기에 한 중소기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러시아제 무기 도입 사업, 즉 ‘불곰 사업’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 업체를 수사하면서 당시 검찰은 회사 경영진에게 “지난 정부에서 뇌물을 준 정치인을 대라”라며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업의 경영자는 당시 조사를 받으면서 ‘이것이 정치 사찰이구나’라는 점을 직감했다고 한다. 이후 방위산업체에 대한 대부분의 수사는 ‘원가 조작→비자금 조성→정치권 뇌물 공여’ 조사 수순을 현재까지 거의 답습하고 있다. S사, E사, H사, D사, K사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방위산업체가 거의 다 수사 선상에 올랐다. 한 야당 국방위 관계자는 필자에게 “지난해에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은 업체가 확인된 것만 최소한 13개사이다. 거의 모든 방산업체가 사실상 비리 집단으로 내몰렸다”라고 말했다.

최근 방산 비리와 관련된 내용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한 지방검찰청에 불려갔다 온 한 기업 관계자 K씨는 필자에게 “‘청와대가 방위 산업에 대한 기획 수사를 지시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지검 관계자는 대검 중수부로부터 내려온 공문까지 보여주며 “청와대가 방위 산업 수사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라며 “정치인 몇 명만 불어라”라고 압박했다고 필자에게 증언했다. 한편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들도 “방산 비리 정보 수집 실적을 올리라”라는 압박이 비서관을 통해 강도 높게 내려왔다고 밝히고 있다.

방위산업체 수사를 통해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비자금을 찾겠다는 정권의 의도는 집요하고도 끈질겼다. 그러나 지난 정부에서 무기 도입의 대가로 오고 간 거액의 리베이트가 과연 존재하는지, 있다면 그것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는 잡히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제기되고 있다. 1993년 율곡 비리 파동 이후 지난 17년간 검찰이 방위산업체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수사를 해본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복잡한 무기 도입 절차를 이해하는 것도 벅찬 일이지만, 변화된 국제 군수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감각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 결과, 검찰이 당초 수사 의도에 부합하려 하면서도 그 목표와 방향이 명확치 못하고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운 ‘준비되지 못한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그러다 보니 결국 사업을 수주한 실적이 높은 업체 순서대로 ‘먼지 털이 식’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에 응하고 있는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정인철 전 기획관리비서관이 수사에 관여했다는 말도 돌아

이런 수사 방식으로 원하던 성과를 뚜렷하게 거두지 못하자, 검찰 내부에서 자중지란의 조짐이 나타나기도 했다. 검찰 고위직 인사 K씨와 그 아래 검사장급인 B씨 간의 갈등과 마찰은 대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얘기가 되어버렸다. 실제 ‘윗선’의 지시로 K씨가 강도 높은 방산 수사를 요구하자, B검사장이 반발하는 모양새가 검찰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한 검찰 출입기자는 “방산에 대한 무리한 수사를 지시하는 K씨에게 B검사장이 항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방산 비리 수사 강행 문제로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졌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수사 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간부 K씨가 방산에 대해 실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윗선’의 지시에 맹종하는 태도를 보이자, 일선에서 이에 대해 반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방산 비리 수사와 관련해서도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 7월 ‘영포회’ 또는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의 국정 농단 및 인사 개입 논란에 따른 여파로 사퇴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업계 주변에서는 “방산 비리 수사를 총괄하는 청와대 부서는 당연히 민정수석실이어야 함에도 왜 정 전 비서관이 나섰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의 ‘월권 논란’과 관련해서 그동안 기획관리비서관실이 금융감독위, 국정원, 경찰, 검찰, 기무사로부터 파견받은 인력으로 운영해 오면서 사정 업무까지 총괄했다는 증언들이 잇따르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지난 정부 국정상황실의 핵심 기능을 거의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 청와대 핵심 부서인 기획관리비서관실의 ‘국정 상황 관리’라는 포괄적 임무 속에는 각 부처의 업무를 통제할 수 있는 파워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 내에서도 안보 분야 부서와 정 전 비서관의 기획관리비서관실 사이에서 알력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안보 분야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정비서관이 (군 비리에 대해서도) 강한 의욕을 갖고 사정 기관과 함께 공조해왔다. 안보 분야에 깊숙이 개입하는 행태를 많이 보여 청와대 안보 관계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 전 비서관은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할 입장이 못 된다”라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지난 2년여 동안 계속되어온 현 정부의 방산 비리 척결의 궁극적인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은 지난 10년 정부의 권력형 비리를 찾아내 심판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정권 초기 촛불 시위로부터 증폭되기 시작한 현 정부의 위기감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는 군과 방산업체의 비리를 응징함으로써 국방 예산에서의 거품을 걷어내겠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된 함축적인 단어가 바로 이대통령이 말한 “리베이트 20%”였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국방부장관, 법무부장관, 방위사업청장 등이 일제히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자 청와대는 매우 흡족해했다. 올해 1월 김태영 국방부장관의 업무보고가 끝나고 청와대는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해준 업무보고를 했다”라며 국방부가 주도하는 국방 개혁 수정, 무기 획득 체계 개편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전언이다.

최근 방위산업체의 대기업 5곳이 ‘원가 개선 시범업체’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이 업체 현장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엽기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위사업청에서 파견된 ‘원가 검증단’ 요원이 조립 현장에서 엔지니어의 일거수일투족을 초시계로 잰다는 것이다. 인건비가 적절한지 검증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고숙련 지식 노동자에 대해서도 이런 원시적 방법의 원가 검증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원가 검증을 왜 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그 성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짐작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하라니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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