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해진 한국 영화, ‘악마’ 뺨치겠다
  • 라제기 |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08.1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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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저씨>에 이어 ‘한 수 위’의 <악마를 보았다> 개봉…장기적으로 관객 내쫓는 역효과 낼 수도

 

 


눈알이 바닥을 뒹굴고 뇌수가 질척인다. ‘으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수시로 들린다. 토막 난 변사체는 이젠 클리셰(상투적인 상황 설정)가 되었다. 잘린 머리가 통통 구르고, 막 살해된 시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한국 영화가 잔혹해지고 있다. 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극단적인 표현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다. 두 차례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 홍역을 치른 뒤 청소년 관람불가로 지난 8월12일 개봉한 <악마를 보았다>는 최근 충무로의 잔혹화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스크린을 피로 적시는 잔혹한 한국 영화들이 대거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 스릴러 범람 따른 후유증 | 우선 스릴러의 범람이 꼽힌다. 2008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가 5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예상 밖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충무로에 스릴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어 터진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은 스릴러 바람을 돌풍으로 바꾸었다.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스릴러가 효자 장르로 급부상한 것이다.

투자배급사들이 스릴러가 돈이 된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공공의 적을 향한 사적 응징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쏟아졌다. <실종> <용서는 없다> <무법자> <아저씨> 등이 대표적이다. 복수를 소재로 한 이들 영화는 희생자의 신체를 훼손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주요 볼거리로 내세웠다.

스릴러 영화들이 과열 경쟁을 하면서 폭력의 표현 강도가 갈수록 높아졌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좀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야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최근 스릴러의 잇단 개봉이 이와 무관치 않다”라고 말했다.

■ 예술적 자의식의 발로인가 | 박찬욱·김기덕 감독 등의 국제적 성공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피가 흥건한 영상과 잔혹한 장면 등을 도구로 삼아 예술적 성취를 일구어낸 두 감독에 대한 따라 하기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만의 화법을 만들지 못한 젊은 감독들이 관객에게 강렬함을 안겨주기 위해 비교적 손쉬운 방법인 잔혹한 영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폭력을 정밀하게 묘사하게 된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작가 의식이 극단적인 표현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영화평론가는 “몇몇 감독은 잔혹한 장면을 예술적 표현의 한 방편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라고 평했다.

충무로에서는 최근 잔혹한 장면을 지렛대로 호객을 하는 영화들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손님 끌기에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손님을 내쫓는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 단위 관객을 대상으로 한 여름 극장가를 잔혹물이 점령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한 영화사 대표는 “관객이 원해서 잔혹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보다 제작자가 관객이 원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있다. 잔혹한 영화는 관객층을 넓히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친 폭력성을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 등이 규제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또 다른 영화제작사 대표는 “지나친 폭력성과 선정성도 문제이지만 제한상영가 등을 통한 규제는 오히려 창작욕을 위축시킬 수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실베스터 스텔론, 이연걸, 미키 루크,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한 영화에 나온다면? 거기에 현역 제이슨 스태넘이 가세한다면? 액션스쿨 총동창회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1980년대 액션영화에 향수를 지닌 386세대와 액션 ‘폐인’들에게 ‘CG와 와이어가 없는 우직한 액션이란 이런 것이여~’를 보여주기 위해, 동창회장 스텔론이 총대를, 아니 메가폰을 멨다. 

 

실베스터 스텔론이 이끄는 용병 팀은 브루스 윌리스로부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포기한) 일을 얻는다. 남미의 섬 빌레나의 독재자를 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섬을 장악한 자는 전직 CIA 출신 미국인이다. 그가 섬에서 재배된 마약을 독점한다. 찜찜한 느낌에 발을 빼려던 스텔론은 장군의 딸 때문에 나선다. 용병이 전직 CIA와 결탁한 남미 정부를 악의 축으로 삼아 괴멸시킨다는 구도가 부담스러웠던지, 영화는 무언가 명분을 지닌 듯한 딸을 대안 축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녀가 표상하는 애국심이 무엇인지, 영화가 알 바 아니다.

줄거리는 물론이고 액션도 ‘구리기’는 마찬가지다. 창의성 없이 화력만 높인 후반부 액션은 TV 전쟁물을 보는 듯하다. 각자 캐릭터와 전설을 지녔던 이들이 ‘창고 대방출’ 마냥 쏟아져나온 모습도 유쾌하지만은 않다. 특히 <황비홍> 등으로 ‘중국의 자존심’을 얼굴에 새긴 이연걸이 ‘꼬마’ 취급을 받으며, 초라한 액션시퀀스 하나를 할당받은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영화는 대단히 시대착오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시대정신에 걸맞다. 노골적인 물신의 욕망 외에 어떠한 명분이나 ‘분장’도 소용없어진 신자유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섭외력만 지닌 채 맥 빠진 과거 형식을 답습하며, 원래 그것을 표방했던 것이라 우기던 <박중훈 쇼>를 극장에서 보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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