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속 보이는 무력 도발
  • 이기동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8.1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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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승호 나포 이어 NLL 남측에 해안포 발사해…권력 이양기 군부의 충성·용맹 과시로 비쳐

 

▲ 서해 최북단 백령도 심청각에서 바라본 북한 장산반도의 북한군 포대들(원 안). 위장막으로 가린 것들도 포대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한반도의 바다가 격랑의 파고에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북한은 동쪽 바다에서 우리 어선(대승호)을 나포하고, 서쪽 바다에서는 백령도와 연평도를 겨냥해 해안포 1백10여 발을 쏟아부었다. 이 중 10여 발은 사실상의 해상 군사분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측 해역에 떨어졌다고 합동참모본부가 지난 8월10일 밝혔다. 이는 명백히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에 대한 침범 행위로 규탄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러한 도발 행위를 연이어 감행하는 것일까. 우선 이번 대승호 나포 사건은 우려스럽게도 북한군의 사전 계획하에 감행되었거나 불순한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북한군은 어로 활동 중 북한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넘어간 우리 어선들(2005년 황만호, 2009년 연안호)을 나포한 후 우리측의 조기 송환 요구에 대해 나포 사실을 인정하는 공식 입장을 신속히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 통보는커녕 나포한 사실 자체를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우리 정부가 대승호 나포 사흘 만인 지난 8월11일 대한적십자사 명의로 송환을 촉구하는 대북 전통문을 발송한 데 대해, 북한 조선적십자회가 보내온 대남 통지문이 그것이다. 북한은 이 통지문에서 방북 체류 중인 한상렬 목사의 귀환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무사 귀환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이 대목에서 북한은 인도주의적 명분을 활용해 한목사의 위법 행위 문제와 대승호 송환 문제를 연계해 처리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한목사가 돌아온 이후 우리 당국이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대승호 송환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한목사의 위법 행위와 대승호의 우발적 월선 행위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실정법상 차원에서 대칭적 연계 대상이 될 것인지의 여부를 둘러싸고 남남 갈등이 촉발될 것이 우려된다.

대승호 나포에 바로 이은 NLL 인근과 이남에 대한 북한의 해안포 도발 의도 역시 크게 네 가지로 따져볼 수 있다. 첫째, 북한은 천안함 국면으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나기 위해 취해 온 자신들의 출구 전략이 한·미의 공동 대응으로 좌절된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7월10일)이 채택된 직후 6자회담 재개를 시사하는 주장을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선  천안함 문제 해결, 후
6자회담 재개’ 원칙을 고수한 한·미의 공동 대응에 막혀 좌절되었다. 북한은 천안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사-북한 장성급 회담 개최를 제의했고,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령급 실무회담이 개최되었다. 실무회담에서 국방위원회 검열단 파견을 줄곧 주장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과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켜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에 대한 원인을 평가하기 위한 공동평가단을 소집하자는 유엔사측의 입장 사이에서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 한국군 단독 서해 합동 해상 기동훈련이 실시된 8월5일, 독도함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외 관계 의식 않고 중국을 버팀목으로 삼으려 긴장 고조시켜

둘째, 북한은 서해상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못마땅해하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서해에서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끈끈한 북·중 군사 관계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한편, 양국 간의 군사적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점을 중국측에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실제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확정된 이후 북한과 중국은 물밑에서 활발한 군사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양국은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통한 국면 전환, 즉 천안함 출구 전략에 이해관계의 일치를 본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북한은 서해 군사 훈련 기간 중 군사적 충돌을 피하면서도,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체면치레용으로 도발을 감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북 응징 조치의 일환으로 실시된 우리 군의 해상 기동 훈련을 겨냥해 서부전선사령부 통고문(8월3일)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보도(8월5일)를 발표했다. 두 성명은 모두 ‘강력한 물리적 대응 타격’을 거론하면서 단호한 결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말과 달리 훈련 기간 중 아무런 행동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국군이 훈련을 마치고 철수하는 시점을 선택해 1백10여 발 중 10여 발만 NLL 이남 해역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하려 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밝힌 세 가지를 모두 관통하는 의도로써 권력 이양기 군부 엘리트들 사이의 충성 과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강성대국 대문 진입이라는 빡빡한 정치 일정 속에서 후계 체제를 효과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안팎의 여건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함에도 오히려 북한은 대내 고난과 대외 고립이 겹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 권력 엘리트들의 유화적 태도는 수령과 후계자에 대한 불충과 비굴함으로 비칠 수 있고, 적들에 대한 강경한 태도는 충성과 용맹의 표현이라고 비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권력 엘리트, 특히 군부 엘리트들은 강경한 태도에 대한 유혹을 쉽게 느낄 수 있고,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북한이 연이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 것은 남북 관계와 6자회담 재개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단행된 장관급 인사에서 예상과 달리, 통일·외교·안보 관련 장관들을 유임시켰다. 이러한 인사 조치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원칙에 입각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현재의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일단을 비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은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되며,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 표명이 6자회담 재개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을 확고히 했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응징 조치로 효과적인 대북 금융 제재를 추진하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한·미의 입장과 달리 북한을 비호하는 중국의 태도 그리고 북한 권력 엘리트들이 강경한 노선을 선호하는 경향이 상충하면서 6자회담 재개 전망은 난맥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을 버팀목으로 활용하면서 2012년 강성대국 대문 진입 및 후계 체제 공식화라는 정치 일정을 완주하는 것에 목표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제는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와 같은 대내외 조건과 환경을 따지기보다는, 어렵지만 후계 체제 구축이라는 당면한 정치 일정을 무난히 소화하는 것이 급선무가 된 것이다. 즉, 대외 환경과 후계 체제 구축 간의 주종 관계가 변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반도의 냉전 체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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