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8.1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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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의원,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 2년째 1위…박근혜 전 대표는 2위 원로 그룹 영향력은 퇴조하고 임태희 등 ‘영 파워’들 두각…박영준, 11위로 순위권 첫 진입

 

▲ ⓒ시사저널 유장훈

‘형님의 자리를 아우가 대신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8일 단행한 개각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40대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화제의 초점이 되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권의 권력 구도에 어떤 변화가 올지 주목하고 있다. 친(親)이명박(친이)계와 친박근혜(친박)계 간 대결 구도는 물론 친이계 내 ‘힘겨루기’도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올해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 조사 결과는 여권 내부의 권력 현황을 잘 보여준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올해에도 이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SD) 한나라당 의원이 1위를 차지한 것은 ‘형님 권력’으로 불리는 이의원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해석을 낳는다.

이의원은 지난해 조사에서도 이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로 꼽혔다. 당시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 사유화’ 논란이 일자 공식적으로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한 상태였지만, 전문가들은 대통령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가장 큰 것으로 보았다. 이후 한 해가 지났다. 이의원은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았고, ‘정치 일선 복귀’ 선언도 없었다. 자원 외교에 전념한다며 외국을 오갔다. 하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4%포인트 높은 29.6%를 차지했다. 이대통령과 형제 관계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권력의 핵심으로서 그의 힘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입증한 것이며, 권력 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지난 정권과는 다른 양상이다. 노무현 정권 때에는 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가 해마다 바뀌었다. 정권 출범 직후인 2003년에는 문희상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가장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고, 2004년에는 대권 수업을 받던 정동영 통일부장관, 2005년에는 노대통령의 오랜 동지인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2006년에는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이의원과 함께 이른바 ‘원로 그룹’을 형성해 온 인사들은 순위가 다소 내려갔다. 지난해 4위였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올해 두 계단 아래인 6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한나라당 대표에서 국회의장으로 영전한 박희태 의장의 경우 5위에서 15위로 내려앉았다.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대표적인 ‘SD 인사’로 꼽히는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이 11위에 오른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차관은 지난해 조사에서는 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의 ‘몸통’으로 지목받기도 한 그는, 현 정권 들어 권력의 실세로 부상했고 그 배경에 이의원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최근 불거진 일련의 권력 남용 사건에 박차관의 연루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박차관의 정치적 계보를 놓고 보면 어쨌든 SD와의 연관성 속에서 권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9.3%를 얻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위를 차지했다. 이는 박 전 대표가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일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권력의 또 다른 축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줄곧 영향력을 유지해 온 원동력도 여기에 있다.

박 전 대표와 함께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정몽준 전 대표의 경우 지난해 10위였으나 올해는 공동 11위에 그쳤다. 그 사이 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지만, 이대통령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또 다른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선거에서 경쟁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함께 공동 20위에 오른 것이 전부이다.

야권에서는 정세균 전 대표 ‘유일’

지난 7월28일 치러진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재입성한 이재오 의원이 14.9%를 얻어 박 전 대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정계에 복귀하기 전인 지난해 조사에서도 13.9%로 ‘빅3’에 이름을 올린 이의원은 향후 정치적 역할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의원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11일 만에 특임장관에 내정되어 ‘날개’를 달았다. 이의원이 앞으로 맡게 될 임무가 어느 선까지일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지만, 내각은 물론 청와대와 국회에까지 그 영향력이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가 국민권익위원장 시절에 보여준 ‘광폭 행보’의 공간이 훨씬 더 넓어진 셈이다. 이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각종 현안을 현장에 적용하는 데서도 상당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 ‘젊은 피’의 영향력이 커진 점도 두드러진다. 선두 주자는 7.5%로 4위에 오른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청와대를 총괄하는 자리가 갖는 영향력도 있지만, 이전 정정길 실장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재선 의원에 노동부장관을 지낸 그는 이상득 의원의 양아들로 불릴 만큼 권력 핵심과 가깝다. 40대 총리 후보로 거론되었을 만큼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단숨에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다. 친이 직계를 대표해 당 지도부 입성에 성공한 정두언 최고위원도 2.7%를 얻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원내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2%로 공동 8위였지만 올해는 6.2%로 5위에 올라섰다. 당·정·청 핵심 라인으로서 ‘안상수-이재오-임태희’ 트리오의 역학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야권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만이  3.7%로 8위를 차지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야당 인사가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연이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현재의 정치권력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정 운영의 힘이 여당 쪽으로 급속히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야당이 개입할 여지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야당 스스로 역동성을 갖추지 못한 측면도 있다. 야권 내 ‘인물 부족’도 또 다른 이유로 거론된다.

경제인으로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유일하게 20위권에 올랐다. 지난해 15위였던 이회장은 올해 공동 11위로 4계단 올라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별 보좌관,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17위를 차지한 것도 눈길을 끈다. 한·미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는 이대통령과 현 정권의 외교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소망교회 원로 목사인 김지철·곽선희 목사는 지난해보다 영향력 순위가 낮아졌다. 김목사는 13위에서 16위로 세 계단 떨어졌고, 지난해 17위였던 곽목사는 20위권 밖으로 나갔다.

황인상 P&C네트워크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기존의 인력과 전략 틀만으로 후반기 국정 운용을 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다. 이번 개각의 경우 좀 더 다각화하려는 의지가 깔려 있다. 그동안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쳐온 특정 인사들도 결국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 이명박 대통령과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의원(오른쪽). ⓒ연합뉴스

“청와대의 각 부처에 대한 인사 개입은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 8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각을 단행한 바로 다음 날, 당 지도부인 최고위원이 민감한 인사 문제를 공식 석상에서 끄집어내자 당내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흘러나왔다. “너무 나간 것 아니냐”라는 비난과 “해야 할 말을 했다”라는 호응이 엇갈리는 분위기이다.

정최고위원이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이날 발언이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이른바 ‘형님 권력’을 겨냥한 것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최고위원을 비롯한 ‘친이 직계’ 내에서는 그동안 인사 문제에서 이의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친이 주류’로부터 번번이 소외당했다는 불만이 쌓여왔다.

정최고위원의 지적은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으로 해석된다. 그는 “장관들이 각자 자율 권한을 갖고 뛰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새롭게 진용을 갖춘 내각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이번 개각을 통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정최고위원과 호흡을 맞춰온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신재민 문화관광체육부 차관이 각각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함께 친이 삼각 편대의 또 다른 한 축으로서 역시 ‘형님 권력’과 대립해 온 이재오 의원이 특임장관으로 내정되면서 전선이 더욱 명확해졌다. 이재오 의원의 최측근인 진수희 의원은 보건복지부장관으로 내정되었다. 정최고위원이 “장관들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마저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라고 비판한 것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차관급 이하 인사를 앞두고 ‘형님 세력’이 인사에 개입할 여지를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이재오·정두언 그룹의 힘이 커진 것은 분명하지만, 향후 여권 내 세력 판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등장 등을 들어 이대통령에 대한 이상득 의원의 영향력이 쉽게 줄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만, 야권을 중심으로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이상득 의원’에 대한 공세가 날로 치열해지는 부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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