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토반’ 달리는 독일 경제
  • 조명진 |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8.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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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최고 성장률 보이며 유럽 성장까지 견인…중국·인도 등 ‘이머징 마켓’ 수요에 수출 날개 달아

유럽연합 통계국인 유로스타트(Eurostat)는 8월13일 유로존은 2/4분기에 1/4분기의 0.2% 성장보다 높은 1% 성장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독일이 2.2%의 성장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연간 성장률로 치면 9%에 가까운 것이어서 낙관적인 전망조차 초월한 놀라운 결과이다. 독일 통일 이후 지난 20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독일 경제가 바야흐로 ‘아우토반(독일의 고속도로)’에 올라선 셈이다.

 

▲ 지난 4월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차 발표회에서 ‘SLS AMG’가 소개되고 있다. ⓒREUTERS

유로존 16개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4%로 미국보다도 높다. 다시 말하면, 지난 12개월간 독일은 미국의 3.2%보다도 높은 3.7%의 성장을 기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독일의 성장은 가속화하는 반면, 미국의 성장은 둔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BGC파트너의 시니어 전략가인 하워드 윌돈은 독일이 유럽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고 평하며 “독일은 파워하우스로서, EU의 엔진이며 동시에 유로존의 엔진이다”라고 독일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을 치켜세웠다. 이번 발표가 더욱 놀라운 것은 불과 1년 전인 2009년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최저 기록인 4.9%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독일 수출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의 경제도 덩달아 호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내총생산(GDP)은 2/4분기에 0.2% 증가에 그쳤고, 그리스는 오히려 -1.5% 성장하는 등 유로존 내에서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유로존 16개국의 경제 성장률이 1%이니 겉으로는 균형 있는 발전을 한 것 같지만 내막은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독일의 경제 호조는 수출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국내 소비가 증가했다. 하지만 국내 소비가 증가했는데도 정작 고급차인 메르세데스의 판매량이 감소한 몇 안 되는 국가 중에 독일이 들어 있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를 두고 진보 성향인 독일판 파이낸셜 타임즈 8월16일자는 독일 경제가 이처럼 빠르게 성장한 것은 지난해 기록적인 4.7%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올 경제 성장 기록과 지난해 기록은 독일이 수출 의존형 경제를 가지고 있어 국내 경제 활동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독일 경제가 이제는 유럽 시장만 바라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일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에 힘입어 수출 확대로 경제 성장을 이끄는 강점이 있지만, 이는 동시에 독일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경제 일간지 NRC한델스블라드 8월14일자에 따르면, 유로존에서 독일과 네덜란드의 경제 성장을 빼면 유로존의 성장률은 0.5% 정도에 그친다. 유로존 내에서 흑자를 낸 국가군과 적자에 허덕이는 국가군 간의 불균형이 장기적으로 유로존 전체에 불안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8월13일자는 ‘터보 엔진 단 독일(Turbocharged Germany)’이라는 제목으로 독일의 경제 성장을 부각시키며, 유로존에서 가장 큰 경제 대국인 독일이 수출에서 호조를 보이는 것은 중국과 인도 같은 떠오르는 시장(emerging markets)의 수요 덕이라고 평했다. 독일은 중국의 발전소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부품과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의 엔지니어링과 경쟁력 있는 자동차들은 신흥 공업국 부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다”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

▲ 지난 6월1일 독일 함부르크의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화물선에 컨테이너가 적재되고 있다. ⓒAFP연합

독일 자동차 판매 신장세 지속…고용 시장 안정 등으로 전망도 밝아

고급차의 대명사인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의 중국 수출은 1년 사이에 세 배가 증가했고, 인도 수출도 두 배가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폭스바겐과 BMW, 아우디 같은 다른 독일 차들 또한 이들 시장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메르세데스의 요하힘 쉬미트 판매 및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지난 7월 전세계의 메르세데스 판매량이 그 전달보다 17% 늘었다고 발표하며 올 하반기에도 상반기처럼 두  자릿수의 판매 신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과 캐나다에서 메르세데스 판매량은 각각 20%와 18%로서 세계 평균 증가율을 약간 넘었다. 반면, 홍콩을 포함한 중국에서는 1만4천6백대가 팔려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2백5%의 성장을 보였다. 한국에서도 한 달 판매량으로 최대인 1천3백대가 판매되어 지난해 7월보다 다섯 배나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 밖에 호주 48%, 러시아 1백16%, 인도 1백42%, 터키 1백55%의 증가율을 보였다.

독일 제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는 점과 관련해 노사 관계 측면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독일의 고용 시장은 미국처럼 호황과 불경기에 따라 반복되는 ‘채용과 해고 문화(hire-and-fire culture)’와 전혀 다르다. 경영진은 불경기 때는 근로자의 근무 시간을 줄여 인건비를 감축한다. 따라서 상품 수요가 다시 생길 때면 새로운 채용을 거치지 않고 기존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강점을 지녔다.

근면과 성실이 몸에 밴 사고방식에 더해, 독일 노동자들은 한번 고용되면 경영진에 대한 신뢰와 존경으로, 경쟁사의 급여 조건이 낫더라도 회사에 대한 기존의 충성심을 버리고 더 나은 근무 조건에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이것이 독일의 일반적인 고용 환경이다.

미국과 영국의 젊은 세대들이 대학에서 경영 또는 경제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취득한 후 높은 호봉의 금융계에 진출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것과 달리, 독일 사회는 기술직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우대하는 풍토를 지녔다. 이런 점도 경제 성공의 패턴이 미국은 모기지를 이용한 금융 (파생) 상품에서, 독일은 전통적 장인 정신의 산물인 고급 승용차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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