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전쟁, 지구 숨통을 죈다
  • 조홍래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8.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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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기상 재앙 잇따라…각국 온난화 방지 노력은 소극적, 물·식량을 둘러싼 국지전 일어날 수도

요즘 지구촌의 기후 이상이 예사롭지 않다. 모스크바는 폭염과 산불로 난리이고 중국과 파키스탄에서는 홍수로 수천 명이 죽고 수천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중동의 최빈국 예멘은 약 10년 후 물이 한 방울도 없는 나라가 될 뿐만 아니라 알카에다의 소굴이 되어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터키가 북부에 건설한 댐 때문에 이라크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 상류에 건설한 댐은 메콩 강물을 몽땅 가두어 인도차이나 반도의 여러 나라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폭염, 홍수, 가뭄, 지진 그리고 빈번한 산불은 모두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이상 기후에 기인한다.

▲ 8월4일 러시아 랴잔 주의 한 마을 주민이 산불이 번져 인근 숲을 태우고 있는 상황에서 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AP연합

문제는 지구가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는데도 각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 기후 정상회담에서는 당장 지구 온난화 대책을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긴축 재정을 펼쳐야 한다는 구실로 차일피일 예산 집행을 미루고 있다. 심지어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후학자들의 이메일까지 해킹하면서 기후 변화의 실상을 은폐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눈앞의 이익에 얽매여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기후 변화가 초래할 참상을 경고하는 책들은 인간의 우둔을 질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두 권의 책이 가장 크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우선 전
<포천(Fortune)> 편집인이며 블룸버그 통신 <비즈니스위크>의 부국장 에릭 풀 리가 쓴 <기후 전쟁(The Climate War)>과 미국의 비영리 기후연구소인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의 선임연구원인 헤이디 쿨런이 쓴 <미래의 기후(The weather of the Future)>가 눈길을 끈다. 이 두 권의 책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구가 뜨거워질 경우 인간의 삶이 어떤 모습이 될지를 보여준다. 얼핏 보면 책 내용은 공상과학소설 같기도 하지만 두 저자의 예상은 정확한 환경학적 데이터와 과학자들과의 인터뷰를 근거로 하고 있어 소름을 끼치게 한다. 이들의 경고는 북극의 빙산이 녹고 히말라야의 빙하가 흘러내리는가 하면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상식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기후 전쟁은 1차로 미국 의회에서 시작되었다. 일산화탄소를 배출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대기업 로비스트들은 가스 배출의 상한선을 정하려는 환경보호주의자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지금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의회 내 기후 전쟁은 단시간 내에 끝나지도 않을뿐더러 기업 로비스트들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최대의 가스 배출국인 미국이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는 지정학적 변화가 생겨났다. 방글라데시의 가뭄과 홍수는 수많은 ‘기후 난민’을 만들고 인도 북부의 물 부족은 파키스탄과의 물 전쟁을 잉태한다. 

▲ 지난 5월 방글라데시의 차크바라 마을에서 한 주민이 지난해 사이클론의 피해를 입은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

‘지구의 허파 절반은 사망한 상태’ 경고도…미국의 ‘실천’에 주목

안보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를 ‘곱하기식 위협(Threat multiplier)’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위협이 발생하면 부국과 빈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급기야는 물과 식량 확보를 둘러싸고 국지전이 일어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의 속도대로 배출되면 20년 만에 나타나는 뜨거운 여름이 앞으로는 3년마다 오게 된다. 그리고 금세기 말에는 살인적 더위가 한 해 건너마다, 혹은 그보다 더 자주 엄습할 수도 있다. 지구가 더워진다는 것은 육지와 바다의 물이 그만큼 빨리 증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세계 도처에서 가뭄과 홍수를 유발한다. 더운 지구는 극지의 빙하와 얼음을 녹여 해수면을 높이고 이는 다시 홍수를 일으키고 허리케인을 부른다. 카트리나 같은 허리케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엄습하면 대책이 없다.   

이런 상황이 되면 지난해 기후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합의를 하고도 행동에 옮기지 못한 것을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미국이 미온적으로 나오자 미국 다음으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중국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러시아의 폭서와 산불도 불길하다. 모스크바의 기온은 38℃를 오르내린다. 이런 살인적 고온은 100년 만이라고도 하고, 1천년 만에 처음이라고도 한다. 산불은 러시아 서부 12개 성의 2백50개 지역을 삼켰다. 모스크바 동쪽 4백Km 떨어진 최대의 핵연구소도 위험에 빠졌다. 게다가 24년 전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를 낸 체르노빌 지역으로 불길이 번져 지하에 축적된 방사능이 유출되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수천 명의 병력을 투입해 핵 관련 사고 예방에 나섰다. 고온과 가뭄 끝에 일어난 산불로 이미 50여 명이 죽고 2천 곳의 마을이 파괴되었다.

미국의 국립해양환경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뜨거워진 지구는 연속적으로 신기록을 세운다. 지난 12개월이 가장 덥다고 하더니 지난 6개월은 그보다 더 더워졌다. 지난 4월, 5월, 6월은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캐나다 과학자들은 바닷물이 더워져 해양 생물의 먹이인 식물플랑크톤이 40% 감소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니제르·수단·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 등 아홉 개국은 사상 최고 기온을 갱신했다. 빙산은 녹아내리고 농작물은 말라죽고 바다는 산성화된다. 지금의 지구 건강을 인체에 비유한다면 매일 밤 스테이크를 먹다가 콜레스테롤 수치가 3백에 도달한 경우와 같다. 지구의 허파가 절반은 사망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토크빌은 오래전 미국이라는 나라는 일이 터지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고 예언했다. 이 말이 지금도 유효할까? 오바마가 말하는 클린 에너지 경제가 탄생해 지구도 살리고 일자리도 만드는 세상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아니면 괴물 같은 기상 이변을 맞아 허둥지둥할까? 이 질문에 누구도 자신 있는 답을 할 수 없다. 카트리나의 몇백 배 위력을 가진 태풍이 몰아쳐 천지개벽이 일어나야만 미국도, 세계도 미몽에서 깨어날 것이라는 것이 환경론자들의 슬픈 한탄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아예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말자고 제의했다. 그 말 대신 ‘지구의 불가사의’(global weird)가 낫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상 이변을 불가사의로 치부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 대자연의 법칙에 의해 지구가 움직인다고 해도 이제는 순리를 무시하고 욕망만을 추구한 인간의 오만이 기후 재앙을 자초하고 있음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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