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청문회 정국’ ‘여진’은 계속된다
  • 감명국·반도헌 기자 ()
  • 승인 2010.08.2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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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20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재훈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인물 사진은 김태호·박재완·신재민·유정복·이재오·진수희·조현오·이현동·이주호·이재훈(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시사저널 사진팀·연합뉴스

“아무래도 ‘조’(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는 살아날 것 같지 않아요? 오늘 천안함 유족들이 조의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하잖아. 그러면 (야당의 공세도) 한풀 꺾이는 것 아냐.”

8월20일 인사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하루 전날.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하는 한 고위 인사가 기자에게 넌지시 물은 말이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동의를 구하는 듯했다. 그는 “이재훈(지식경제부장관 내정자)은 좀 어려울 것 같다. 쪽방촌 투기 의혹이 아무래도 좀…”이라고 덧붙였다. 기자가 “김태호 총리 내정자나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내정자도 의혹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라고 하자 “그 양반들은 참…”이라며 입맛을 다시고 말을 얼버무렸다.

이명박 정부가 인사 문제로 또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부 초기 ‘고소영’ ‘강부자’ 내각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위장 전입 내각’ ‘유유상종 내각’이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또 탄생시켰다.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절감했음인지, 한나라당에서도 “몇 명 정도를 희생시키면 되겠느냐”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인사청문회 대상인 내정자 10명 중 최소한 한두 명은 ‘부적격 판정’을 내려야 들끓는 비판 여론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런 상황에 당 내부에서 이재훈 내정자가 거론되는 것은 주목된다. 10명 가운데서 이대통령의 최측근이거나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는 인사들 그리고 당의 실세이거나 혹은 실세의 비호를 받고 있는 인사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하게 남는 인사가 이내정자이기 때문이다. 호남(광주)이 고향인 그는 지난 30여 년간 지경부에서만 일해 온 정통 관료 출신이다.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인 민주당의 한 의원은 “여당이 그나마 ‘줄’이 없는 이내정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번 인사 논란을 적당히 넘기려는 술수로 밖에 안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이내정자의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건물에 대한 투기 의혹이다. 그의 부인이 2006년에 이 건물을 다른 두 명과 공동 명의로 7억3천만원에 매입했다. 이 건물은 뉴타운 개발 예정지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내정자의 부인은 서울 중계동과 남창동에도 각각 상가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기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투기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또 한 명의 인사가 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내정자이다. 여당에서는 신내정자에 대해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습이다.

신내정자는 2006년 12월 부인 윤 아무개씨 명의로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일대 임야 9백80㎡(약 3백평)를 구입했다. 당시 그는 <주간조선> 편집장으로 있었다. 이 지역은 대규모 복합 휴양촌 건설 소문이 있어 땅값이 많이 오른 지역이다. 최근에는 ‘한화호텔앤리조트’의 투자 계획이 지역 신문에 의해 보도되기도 했다. 투기 목적이 의심되는 이유이다. 실제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그는 이 땅을 총 2억2천5백만원에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의 한 부동산 업자는 “신복리 일대는 전원주택 입지로 인기가 좋다. 2006년 평당 80만원(윤씨 구입가)이면 비싼 편으로 위치와 방향이 좋은 곳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등기부등본상 아직 이 땅의 소유주는 윤씨로 되어 있다. 신내정자는 지난해 5월부터 팔려고 내놓았지만 장관 내정자로 발표되기 20여 일 전인 7월18일에야 매각되었다고 설명했다. 아직 잔금이 들어오지 않아 등기 이전이 되지 않았고, 매매로 인한 시세 차익은 5백만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상당히 다급하게 매도했다는 정황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업자는 “땅값이 떨어지는 것을 봤나? 이 지역은 특히 그렇다. 부동산 경기가 안 좋고 구매 당시 비싸게 구입한 감은 있지만 4년이면 최소한 20%는 올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부동산 업자는 “지역 시세가 평당 100만원은 족히 된다. 위치와 방향에 따라 더 비싼 곳도 있다. (시세 차익이 5백만원이라는 것이 맞다면) 급하게 매매하면서 상당히 손해를 본 것 같다”라고 말했다.

 

▲ 8월20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가 청사를 방문한 천안함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화점식 각종 비리 의혹 불거져 여권은 ‘딜레마’에 빠져

신내정자가 땅을 팔게 된 이유로 들었던 난개발 문제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지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개발 이야기가 나온 곳이다. 부인 윤씨가 구매할 당시에도 개발에 대한 기대로 땅값이 많이 오른 상태였다. 개발이 확정되면 호재라면 호재이지 악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윤씨가 구입했던 지역 인근에도 전원주택이 몇 채 있을 뿐 난개발의 흔적은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부동산 투기 의혹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급하게 처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신내정자와 관련된 의혹 중에는 이처럼 부동산 투기 의혹이 많다. 2001년 5월 분양받은 4억원 상당의 오피스텔을 2006년 6월 10억9천만원에 매매해 상당한 시세 차익을 남겼다. 2003년 6월에는 9억8천만원에 분양받은 서울 자양동 아파트 역시 현재 시세가 1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피스텔 분양 과정에서는 양도세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등기 이전을 늦췄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신내정자의 부인 윤씨의 위장 취업 문제와 관련해서도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윤씨는 지난 2007년 1월부터 12월까지 한 설계 및 감리회사에서 연봉 5천6백80만원을 받았다. MBC 아나운서 출신인 윤씨가 비상근직으로 근무하면서 프레젠테이션 교육과 자문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윤씨가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흔적을 찾기 힘들다. 매월 지급된 급여에 대한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이 있을 뿐 프레젠테이션 교육에 대한 근거 자료나 일정표 등이 없다.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도 대부분 윤씨나 교육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사장을 맡고 있던 신 아무개씨도 윤씨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위장 취업에 대한 의혹은 이 회사 이 아무개 회장이 신내정자와 중학교 동창인 친구 사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조차도 “내가 봐도 일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김태호·이현동 내정자, 의혹과 관련해 현 정부에 상당한 부담 줄 듯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2002년 당시 장상 국무총리 내정자가 위장 전입 문제로 낙마했는데, 이번 인사 대상자 중에서 최소한 2002년 이후에 위장 전입을 했다면 그는 고위 공직자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신내정자를 두고 한 말이다.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와 이현동 국세청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역시 그 후유증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김내정자의 경우, 처음에는 마땅한 자료가 없어 고민했는데 갈수록 과거 그의 행적과 관련해 부적절한 처신을 알려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라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역시 김내정자에 대한 최대 이슈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돈 수수 의혹’이다. 지역에서 김내정자와 박 전 회장이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는 데다, 특히 돈 전달자로 알려진 식당 주인 곽현규씨가 의혹의 핵심 인물로 부각되고 있어 이 문제는 총리 임명 이후에도 두고두고 논란이 될 전망이다. 현재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곽씨는 잠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장 전입과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이현동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의 최대 논란거리는 역시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에 대한 사퇴 압박 개입설’이다. 특히 최근 오마이뉴스가 안 전 국장의 사퇴에 백용호 전 국세청장(현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개입했다는 증언이 담긴 새로운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논쟁이 단순히 이내정자 개인을 넘어서서 자칫 안 전 국장 사퇴 압박 과정의 ‘윗선’ 개입 여부와 배경으로까지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도곡동 땅은 이명박 대통령의 것이다”라는 의혹을 제기한 안 전 국장 파문이 이내정자와 관련해서 계속 불거지면 현 정부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따라서, 이내정자의 거취는 또 다른 면에서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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