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허’ 팽팽한 삼각 분할
  • 이유주현 | 한겨레 정치팀 기자 ()
  • 승인 2010.08.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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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당권 경쟁, 대세론 없이 손학규·정동영·정세균 ‘막상막하 대결’…새 권력 질서 생겨날 가능 성도

수도권의 재선 의원인 민주당 박기춘 의원(남양주 을)은 요즘 고민이 많다. 전당대회를 한 달 반 남겨둔 지금 ‘빅3’ 가운데 누구를 택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의원은 정동영·정세균·손학규 세 사람과 나름으로 인연이 있다. 박의원은 17대 국회에 입성할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정동영 의원으로부터 공천장을 받았고, 정세균 전 대표와는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경기 도의원 출신인 박의원은 손학규 전 대표와는 손 전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세 사람 모두에게 마음을 조금씩 나누어주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 사람 모두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이렇게 털어놓는다. “손 전 대표는 대권 주자로 가장 유력해 보이지만 왠지 캠프 진영에 녹아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정동영 의원은 아직 나설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세균 전 대표는 훌륭한 관리자이기는 하나 어쩐지 대권 주자로서는 ‘2%’ 부족한 느낌이다.”  

▲ 8월18일 국립현충원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행사를 마친 정동영 의원·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정세균 전 대표(오른쪽부터)가 묘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오는 10월3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사람들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한나라당은 계보라고 해야 ‘친이(친이명박)계-친박(친박근혜)계’로 구도가 간명하지만, 민주당은 친노(親盧)·486·구 민주계·옛 열린우리당 중진·재야·비주류 그룹 등 ‘성분’이 다양하다. 김근태 전 의장을 중심으로 한 개혁 모임인 ‘민주연대’, 박상천 의원을 수장으로 하는 ‘신송회’, 백원우·서갑원·이용섭 의원 등 친노 인사로 구성된 ‘청정회’, 최근 ‘반(反)정세균’ 전선으로 뭉친 ‘민주희망쇄신연대’, 쇄신연대에 반발해 범당권파 인사 30여 명이 결성한 ‘진보개혁모임’, 우상호·이인영·임종석·오영식 전 의원 등 486 세대의 모임 등이 있다. 정동영·정세균·손학규 세 명 모두 사조직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어느 그룹도 당을 장악할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각기 다양한 세력들이 어떤 구도에서 누구와 손을 잡느냐가 중요한 변수이다.

지난 8월2일 사퇴한 ‘정세균 체제’는 친노+486+옛 열린우리당 중진 그룹 등의 연합 세력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정동영·천정배·박주선 등 반정세균 세력인 쇄신연대가 맞서고, 정세균 전 대표와 ‘느슨한 연대’를 이루어왔던 손학규 전 대표가 정치 일선으로 복귀하면서 새로운 판이 짜일 상황이다.

아직 합종연횡이 도드라지지는 않고 있다. 현재처럼 대표와 최고위원이 분리된 1·2부 리그제를 할지, 한나라당처럼 대표·최고위원을 함께 뽑는 통합 리그를 할지 구체적인 지도부 선출 방식도 정해지지 않았다. 유동성이 크다. 당내에서는 한나라당의 ‘주이야박’(낮에는 친이, 밤에는 친박)을 빗대 ‘주정야손’(낮에는 정세균 쪽, 밤에는 손학규 쪽) 같은 농담까지 나온다.  

 
아직까지는 합종연횡 ‘잠잠’…대의원들도 대부분 ‘관망 모드’

하지만 정세균·정동영·손학규 세 명의 자기장으로 쏠리는 양상은 나타난다. 평소 농담 삼아 “나는 486에 얹혀 있다”라고 말했던 정세균 전 대표는 이번에도 486 세대를 주력 부대로 하고 있다. 강기정·최재성 의원을 비롯해 김민석 전 최고위원과 우상호·한병도·윤호중 전 의원 등이 정 전 대표를 돕고 있다. 열린우리당계인 김진표 전 최고위원은 선거 캠프를 지휘하고 있고, 장영달 전 의원과 노영민 전 대변인도 정 전 대표 편에 서 있다. 정 전 대표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 유인태 상임고문 등 옛 열린우리당 중진들에게도 공을 들이고 있다. 2년간의 ‘대표 프리미엄’을 통해 원외 지역위원장들의 두터운 지지층도 확보한 상태이다. 가령 정만호 7·28 재·보선 당선자처럼 정 전 대표로부터 직접 공천을 받고 ‘정세균 사람’이 된 경우가 여럿이다.

손학규 전 대표는 ‘당심(黨心)보다는 민심’에 의지하고 있다.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정세균 전 대표나 정동영 의원이 조직은 강하지만, 대의원들의 밑바닥 민심은 손 전 대표로 쏠리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박양수 전 의원, 차영 전 대변인 등이 손 전 대표 캠프에서 뛰고 있으며, 최근 박은수·서종표·송민순·전혜숙 등 비례대표 의원들과 이찬열·김동철·정장선·우제창 의원 등 의원 10여 명이 손 전 대표를 지지하는 쪽으로 ‘커밍아웃’했다.

정세균 체제를 구성했던 친노 그룹은 아직까지는 지난번처럼 정 전 대표 쪽으로 확실히 결집하지 않았다. 대신 친노 일각에서는 손 전 대표에게 우호적으로 변화한 흐름이 감지된다. 친노 핵심인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지난 8월15일 춘천에서 ‘삼계탕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던 손 전 대표를 깜짝 방문해 ‘막걸리 러브샷’ 장면을 연출한 것도 그 한 사례이다. 실제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호남당 극복’을 외치며 손 전 대표를 열심히 돕고 있다. 한 친노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지난 2년 동안 손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이 옅어진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 전 대표 지지를 선언한 사람들 가운데는 지역 조직을 잡고 있지 않은 비례 대표 의원들이 많아 실제로 표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칠지는 미지수이다.

당권파가 정세균·손학규 쪽으로 양분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주류 의원들 역시 정동영·천정배·박주선 의원 등으로 다양하게 갈라지고 있다. 대선 후보를 지낸 정동영 의원이 당내 비주류의 구심점임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규식 의원과 염동연·김낙순·정청래·노웅래 전 의원 등이 정의원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으며, 박영선·우윤근 의원 등은 표 나게 활동하고 있지는 않으나 정동영 사람들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는 자신의 실력만큼 세를 모으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정의원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고향 출마, 탈당, 무소속 출마로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던 정의원이 이번에는 전대에 출마하지 않고 좀 더 백의종군하기를 권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강창일·장세환 의원처럼 정의원 캠프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야 할 사람들조차 당권 도전은 이르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선명한 개혁’을 내세우고 있는 천정배 의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일찌감치 활발하게 전국을 돌며 준비해 온 박주선 의원은 조영택 의원 등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김부겸 의원의 외곽 조직들이 박의원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민주당 사람들 대다수가 관망 모드이다. 사석에서는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라는 의원들도 많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한국 정치에서 드물게 대세론이 없다.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세 사람이 팽팽히 맞서는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전대를 통해 기존의 계파 구도 대신 새로운 권력 질서가 생겨날 가능성도 크다. 오늘의 주류가 내일의 비주류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적이 내일 함께 손잡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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