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로 되살려낸 ‘사라진 해상왕국’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8.3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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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공주에서 9월17일부터 2010 세계대백제전 열려… 역사문화단지에는 백제 왕궁·절 등 복원

 

▲ 세계대백제전이 열리는 충남 부여군 행사장.

 1천4백년 전 사라졌던 백제가 되살아난다. 충남 부여군 백제역사문화단지와 공주시 고마나루 일원에서 열리는 2010 세계대백제전이 오는 9월17일부터 한 달간 펼쳐진다. 이 축제가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축제와 다른 것은 2백40억원이라는 예산 때문이 아니다. 백제의 문화유산을 첨단 현대기술로 되살리고, 국내 관광과 해외 관광객 유치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만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백제는 한때 동아시아 일대는 물론 멀리 필리핀까지 지배했던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불렸지만,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우리 역사에서 존재감 없이 사라졌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 여행지로 부여와 공주를 찾아본 이들은 높지 않은 낙화암과 개울 같은 백마강을 보고, 사라진 해상왕국의 위용이 더욱 쪼그라드는 실망감만을 맛보았을 따름이다. 경주의 신라 유적지와는 다르게 백제 유적이 철저히 파괴되고 전해지지 않기에 생긴 현상이다. 오히려 ‘볼 것 없는’ 부여와 공주에 일본 관광객이 모여드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화 인프라 부족 현상은 대백제전을 통해 어느 정도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 사라진 백제의 왕궁과 절, 복식사, 음악사가 재현된 복합문화단지가 부여에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994년에 착공해 16년 만에 준공되는 백제역사문화단지는 100만평 규모로 백제역사문화관·역사재현촌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는 왕궁과 대찰 등이 백제 시대 건축 양식으로 재현되어 있다. 또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는 첨단 영상 기법과 매체를 활용해 디지털로 복원된 백제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 시설도 들어서 있다.

▲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 있는 백제역사문화단지.


 1급 휴양 시설도 함께 들어서 

백제문화단지의 또 다른 의미는 1급 휴양 시설이 함께 들어섰다는 점이다. 롯데그룹이 투자한 특급 리조트 시설이 백제문화단지 옆에 함께 지어졌다. 이는 부여-공주가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숙박형 관광지로 바뀐다는 의미이다. 롯데그룹이 서울과 부산을 빼고는 최초로 투자하는 지역이 바로 이 백제문화단지이다.

롯데그룹의 관광 사업은 일본인 관광객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일본 관광객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롯데가 부여에 백제를 테마로 한 특급 테마 리조트를 신설한 것은 그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방문의 해 위원회의 노영우 운영본부장은 “대백제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내륙 관광이 활성화되어야 외국인 관광객들을 더 불러모을 수 있다. 지금은 서울을 빼면 경주와 전주 한옥촌을 추천하는 정도이지만, 백제문화단지가 문을 열면 일본 관광객들이 더 몰려올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용우 부여군수는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백제의 뿌리를 찾는 콘텐츠를 발굴해 대백제전을 글로벌 축제로 부각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는 11월 KBS에서는 백제의 최대 강성기를 이끌던 근초고왕 시대를 다루는 대하 역사 드라마 <근초고왕>을 방영할 예정이다. 당분간 백제 붐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백제 오악사. 배소, 종적, 완함, 북, 거문고(왼쪽부터).

대백제전을 통해 되살린 백제문화유산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는 백제 5악사이다. 1천4백년 전 사라진 백제 음악이 5악사와 함께 되살아온다. 이들이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 금동대향로 덕분이다.

지난 1993년 12월23일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 안에서 발견되어 국보 287호로 지정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 초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 금동향로에는 1천4백년을 단숨에 뛰어넘는 백제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특히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5악사 조각은 백제 문화사 복원에 큰 자료가 되었다. 충청남도 문화산업과에서는 금동향로에 새겨진 배소(가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악기), 종적(세로로 부는 피리), 완함(비파 계열의 현악기), 항아리북(항아리 모양의 토기에 가죽을 씌운 북), 거문고 등 전통 악기를 국립국악원 등 각계 전문가를 동원해 3D로 복원했다.

그리고 그 뒤 실물 악기를 재현하고, 표준 음원을 만들어 수제천(정읍사)·무등산 등 기록이 남아 있는 전래 백제 소리를 정리해 이를 바탕으로 창작곡을 만드는 등 총 아홉 곡을 만들었다. 악기와 그 악기로 연주할 노래까지 함께 복원한 셈이다. 아울러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에게 의뢰해 금동대향로의 악사가 입고 있는 옷까지 복원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 프로젝트에 충남도가 들인 돈은 8억원.

금동대향로 덕에 백제 문화사의 생생한 현장이 가장 실물에 가깝게 복원된 셈이다. 이 악기로 연주된 음악은 대백제전 개·폐막식은 물론 축제 기간 중 열리는 수상 공연 <사비미르>에서 수시로 들을 수 있다.  

■ 역사문화단지

대백제전을 통해 처음 선을 보이는 것은 재현된 백제 시대 건축물이다. 탑조차 성히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백제 건축물을 어떻게 복원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번 백제 시대 건축물 재현 작업에는 김동현 전 문화재연구소장, 장경호 전 문화재연구소장, 김홍식 명지대 건축과 교수, 이왕기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 등이 참여해 힘을 모았다.

능사(절)는 장경호 전 소장이 기본안을 잡았고, 왕궁은 김동현 전 소장이 기본안을 만들었다. 절이든 왕궁이든 건축물 복원에서 가장 큰 난제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백제 시대 절터나 왕궁터에서 크기나 건물의 배치 양식에 대한 자료는 나왔지만 그 위에 건물을 어떻게 짓고, 처마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창호는 어떤 무늬였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고 목조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나 부석사 무량수전의 창호를 참조하고 1천3백~1천4백년 전 백제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중국와 일본의 건축물 양식을 참조하는 방식으로 백제 시대 건축물을 재현했다. 이왕기 교수는 “동아시아 국가는 서로 교류하면서 발전했다. 백제 시대의 청동탑이 출토된 것이 있다. 또 중국에는 위·촉·오 삼국 시대나 남북조 시대에 건축물을 그린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 자료를 통해서 창호나 처마 형태를 추정했다”라고 말했다.

■ 디지털 복원

이번 대백제전에서는 <동아시아의 문화강국 백제>라는 15분짜리 영상물이 상영된다. 실물 유산이 별로 없는 백제 유적지의 대안으로 디지털 기술을 통한 찬란한 백제의 영화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무령왕릉과 사비성 왕흥사, 정림사, <삼국사기>에 가장 큰 절로 기록된 대통사, 웅진성 등 지금은 옛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백제 유적의 디지털 복원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디지털헤리티지연구실에서 맡았다. 이 연구실의 박진호 연구원은 “무수히 많은 보물이 쏟아진 무령왕릉을 실제로 방문해보면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없지만 들어간다고 해도 벽돌로 꾸며진 전실만 보일 뿐 안에 유물은 없다. 하지만 디지털 복원 기술을 통해 1천6백년 전 무령왕릉의 문이 닫힐 때의 화려했던 유물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고구려와 신라의 문화유산의 디지털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그는 “작업을 하다 보니 백제가 인도나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그보다 더 뛰어난 결과물을 배출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금동향로가 대표적이다. 저절로 존경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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