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비핵화·관계 개선 병행하라”
  • 김지영 기자 | 정리·한병관 인턴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8.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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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지원 하다 보면 한반도 정세 안전해지고 대외 신인도도 높아져”

 

ⓒ시사저널 유장훈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 5월 방중 이후 또다시 국경선을 넘어갔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을 데려간다는 명분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는 서울을 찾았다. 이같은 일련의 행보는 8월25일과 26일 이틀 사이에 벌어졌다. 천안함 사태 이후 잔뜩 경직되었던 한반도 주변국들의 외교 라인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8월26일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난 것은 이러한 안팎 정세와 관련해서다. 정 전 장관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와 관련된 지방 행사 등에 참석하고 각종 강연에 나가면서 ‘몸살’ 기운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터뷰할 때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한국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6자회담 재개 문제와 관련해 가장 경직되어 있다. 미국은 6자회담 재개를 한없이 외칠 수만 없다는 생각 때문에 지미 카터라는 거물 정치인을 북한에 보냈다. 방북의 외형적 목적은 미국인 억류자를 데려오는 것이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카터가 방북한 목적을 무엇이라고 보나?

미국 당국자들은 인도적이고 개인적인 방북이라고 얘기하지만, 카터가 전세기를 타고서 방북한 것은 미국 정부가 개입되었다는 증거이다. 미국에서 카터를 지목한 것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의 ‘좀 더 높은 차원’(김정일 위원장)에서의 결단 및 대미 메시지를 끌어내려는 것이다.

▶카터가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으로 갔다. 김위원장이 카터를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보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특사가 갈 경우 언제든지 사전에 탐지한다. 특사가 신통치 않으면 김위원장을 못 만난다. 김위원장은 이번에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25일) 카터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했을 때 이미 미국의 내심이 들어났을 것이다. 그것이 매력 없으니까 (26일) 중국을 방문한 것이라고 본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하니까.

▶‘급한 불’이 무엇인가?

9월9일 노동당대표자회가 만약 김정은에 대한 후계 공식화라면 인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당장 인민의 손에 쥐어줄 선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10월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했을 때 여러 가지 지원을 언질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된 듯하다. 지난 5월 김위원장이 방중했을 때에도 요청했는데 잘 안 된 것 같다. 중국의 북한 원조 문제가 잘 풀리지 않고 있다. 북한은 현재 김위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다.

▶왜 중국의 북한 원조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보나?

중국은 천안함 사태 이후 진행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대북 압박이자 대중국 압박이라고 본다. 중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국은 북한 때문에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불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약속한 원조 문제가 잘 안 되는 것이다. 

▶북한은 신의주 홍수 피해를 즉각 보도했다. 이례적이다.

1995년 홍수 때도 북한은 바로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신의주는 (중국 쪽에서) 눈에 보이는 지역이기 때문에 숨길 수 없다. 어차피 알려질 바에야 사실대로 보도하고 지원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지금 국제 사회의 지원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지 않나.

▶미국 오바마 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북·미 관계가 잘 풀릴 것으로 전망되었는데.

오바마 대통령 초기에는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했지만, 우리 정부가 거기에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는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을 주장했다. 미국은 이런 우리 정부의 입장에 따라왔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그리 치밀하지 않다. 방향만 정해놓고, 일정과 계획은 잡지 않는다. 미국에게 우리와 북한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미국 정부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하고 있는데.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바람직하지 않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솔직히 무서울 것도 없다. 말로는 ‘핵의 비확산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북한이 핵을 가질 경우 한국의 대미 안보 의존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미국의 무기 수출이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꽃놀이패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경해지면 미국의 정책도 얼마든지 강경해질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의 대북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 정부 초기에는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만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가, 천안함 사태 이후에는 (천안함 사태에 대해) 사과해야만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무엇을 해야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무조건 연계 정책을 쓰고 있다. 논리적으로 옹색하다. 조건이 계속 덧붙여지면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아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아무것도 못하고 나갈 수도 있다. 처음에는 임기 중에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했지만 계속 안 되고 있다. 버릇을 고치려고 조건에 조건을 걸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북 관계를 방기하고 한·미 관계를 중시하면서 북한 때리기를 계속하다 보니, 한·미-북·중 대결·갈등 구도가 되어 가고 있다.

▶남북 관계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남북 관계를 풀려면 속된 말로 돈이 나간다. 하지만 대북 지원을 하다 보면 한반도가 안전하게 관리되면서 대외 신인도도 높아진다. 그러면 투자가 늘고 수출도 늘고 생산성이 커진다. 북한 변수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긴장이 고조되면 상황이 안 좋아진다. 기본적으로 핵 문제와 남북 관계를 연결하는 것을 빨리 고쳐야 한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꼬였다. ‘선 비핵화, 후 지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지만, 그것으로는 안 된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비핵화와 남북 관계 개선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연계 전략에서 병행 전략으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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