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어 가도 모를 깊은 잠 무엇이 만드나
  • 김형자 | 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0.09.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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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의 수면방추와 수면의 상관관계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열대야가 시작되면 잠을 이루지 못해 양만 세며 날밤 세우는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열대야가 아니더라도 여름 밤에는 열어놓은 창문 밖의 소음에 시달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기 일쑤이다. 설사 잠이 들더라도 자다 깨다를 반복해 얕은 잠을 잘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 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자는 사람이 있다. 으르렁대는 천둥 소리는 기본이고, 옆에서 대판 싸움을 해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부러울 만큼 쿨쿨 잘 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수면방추 많이 발생할수록 소음 차단해 잠 잘 잔다 | 즐겁고 깊게 자는 ‘쾌면(快眠)’은 쾌식(快食), 쾌변(快便)과 함께 장수의 3대 비결이다. 뇌는 자는 동안 체력을 축적하고, 정보를 보관·재정리하며, 면역 기능을 조절하는 등,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활동을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불면증은 아니다. 수면 리듬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무너질 수 있다. 소음도 하나의 원인이다. 그런데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다면 이는 분명히 축복받은 것이다. 소음 속에서도 잠을 잘 잘 수 있는 비법은 무엇일까. 

의학 전문지 <Current Biology>에 발표된 제프리 엘렌보겐(Jeffrey Ellenbogen) 교수 팀의 연구에 따르면, 외부의 소음에도 잠을 깨지 않는 사람들은 뇌 안에 수면 중 잡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소음을 차단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소음으로 인한 수면 장애는 불면증의 가장 일반적인 증상이다. 소음에 대한 반응은 개인 차가 크다. 어떤 사람은 큰소리가 나도 잘 자고,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엘렌보겐 교수팀은 수면을 유지하는 뇌의 작용에 대해 실험을 해보았다.

실험 대상은 12명의 신체 건강한 사람들이고, 실험은 3일 밤 동안 이루어졌다. 참가자들의 머리에는 뇌파 기록 장치(EEG)만이 장착되었고, 침대 옆에는 실험 대상자들의 머리를 향해 네 개의 큰 스피커가 설치되었다.

먼저 첫날 밤에는 전혀 소음이 없는 조용한 환경에서 퀸사이즈의 넓고 안락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도록 했다. 두 번째 밤과 세 번째 밤에는 전화벨 소리, 자동차나 비행기의 엔진 소리, 진료 기구의 전자 비프(beep) 소리를 들려주어 최대한 수면을 방해받도록 했다. 뇌파가 수면을 방해받고 있다는 현상이 나타날 때까지 몇 초간의 공백을 사이에 두고 점점 큰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런 후 뇌파 기록 장치에서 실험 대상자들의 수면 뇌파 활동을 조사했다. 그 결과 어떤 소음에도 잘 자는 사람들의 뇌에서는 수면방추(sleep spindle)가 보통 사람보다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면방추는 약 1~2초 동안 급격한 뇌파의 주파수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수면 중에만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8~14Hz의 뇌파이다.

실험에서는 첫날 밤 조용한 환경에서 수면 방추파의 발생률이 높았던 사람이 소음을 동반하는 두 밤에도 잠을 깨는 일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웬만한 소음에는 전혀 잠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소리가 아주 큰 경우에만 수면에 약간의 방해를 받았다. 이는 수면방추가 수면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수면방추가 자주 나타날수록 외부 소음이 수면방추와 마주쳐 소음을 차단하므로 수면이 방해를 덜 받는 것이다.

수면방추는 뇌의 시상피질에서 발생한다. 시상(視床)은 대뇌피질에 지각 정보가 들어가는 게이트 웨이이기 때문에, 외부 자극의 영향을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수면방추의 기능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예컨대 어떤 뇌 작용을 하는 사람들이 수면방추를 자주 만들어내는지, 또 수면방추를 인위적으로 늘릴 경우 소음에도 끄떡하지 않고 숙면을 취하게 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수면방추가 수면의 품질 보증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만일 뇌가 이미 수면 중 외부 소음을 경감시키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소음을 차단하는지 알아내 수면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소음을 차단하는 약과 같은 ‘화학적 귀마개’의 개발로 발전될 수 있을지 모른다.

■ 신생아가 자다가 자주 깨는 까닭 | 수면방추라는 독특한 뇌파가 나타나는 것은 본격적으로 잠이 들기 시작하는 2단계 수면에 접어들었을 때이다. 이때 뇌파를 측정하면 아래위로 갑자기 삐죽하게 솟아오르거나 마치 실이 감겨 있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파동이 촘촘해지는 부분이 나타난다. 솟아오른 부분이 K-복합체이고, 촘촘해진 부분이 수면방추이다.

숙면을 취하는 사람들의 뇌파에서는 수면방추가 특히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자는 사람 옆에서 이름을 부르거나 물건을 떨어뜨려 큰소리를 내면 뇌파에서 수면방추가 생긴다. 수면방추가 잘 형성되면서 소리가 나도 쉽게 깨지 않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수면방추가 잠을 쉽게 깨지 않게 한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채 100일이 안 된 신생아들의 경우,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수시로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아기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알아듣게 타이를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신생아를 키우는 부모라면 흔히 겪는 일이다. 

뇌 과학자들은 신생아가 밤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것은 깊은 잠을 유도하는 특수한 뇌파인 수면방추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면방추는 생후 3개월 후부터 나타난다. 100일이 되기 전의 신생아가 수시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모두 매일 잠을 잔다. 인생의 3분의 1이 잠자는 시간이라면 평균 수명을 80세라고 볼 때 자그마치 27년이라는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재충전을 충분히 해 내일을 맞을 준비를 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고 밤에 잠들기 힘들고 자반 뒤집기를 하기 일쑤라면 한 번쯤 뇌파를 체크해 보아야 한다. 오늘 밤 당신의 수면방추가 너무 적다고 SOS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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