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국가도 춤추게 한다
  • 조홍래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9.0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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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 33명 매몰 현장에 구조 손길 가득 모여…대통령도 정치 운명 걸고 지원 나서며 온 국민 ‘한마음’

 

▲ 지난 8월5일 일어난 붕괴 사고로 광부 33명이 갇혀 있는 칠레 산호세 광산에는 곳곳에 칠레 국기가 꽂혀 있다. 그 사이사이로 광부들의 생환을 바라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6개월 전 1세기 만의 지진 대재앙이 덮쳤을 때 칠레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뒤이어 닥친 쓰나미는 5백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재해 대처에 무능한 정부를 규탄하는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혼란을 틈탄 약탈과 혼란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런 칠레에 또다시 재앙이 닥쳤다. 지난 8월5일 광부 33명이 지하에 매몰된 것이다. 이들은 빨라야 4개월 후인 크리스마스 때나 구조될 전망이다. 그러나 연이은 재앙 앞에서 지진 때와는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모든 국민이 하나로 뭉쳐 광부들을 구하기 위한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슬픔도 눈물도 비난도 사라졌다. 오로지 인명을 구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 꿈틀거리고, 심지어 비극을 환희로 바꿀 수 있다는 결의와 흥분에 기쁨마저 묻어나는 분위기이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구조에 동참했다. 매몰된 광부들의 가족도, 가족이 아닌 사람도 한 가족이 되었다. 구조의 손길은 국경을 넘었다. 전 인류가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대열에 합류했다. 로마 교황도 기적을 기도했다. 모든 노력과 관심은 7백m 지하 갱도에 고립된 광부들에게 집중되었다. 사고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구겨진 칠레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국기 아래 모인 1백50명의 광부 가족들 그리고 이들을 돕기 위해 국내외에서 달려온 수많은 사람이 반드시 살아돌아올,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순간을 고대하고 있다. 

칠레는 남미의 최선진국임을 자처해왔다. 이 자부심은 지진 당시의 추악한 이미지로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자연이 준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사랑의 힘이 새로운 칠레의 탄생을 신호하고 있다. 칠레인의 핏속에 또 다른 사랑의 열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라는 표정이다. 안전 수칙을 무시한 광산회사와 감독을 소홀히 한 당국에 대한 원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광부들이 생환하지 못할 때 원성은 다시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만은 조용하다. 광부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일념에 모두가 하나로 묶였다.   

광부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알리는 메시지를 처음 보낸 것은 8월22일 일요일이었다. 메모 쪽지는 플라스틱 배기관을 통해 드릴에 매달려 지상으로 올라왔다. 붉은 페인트로 쓴 메모에는 “우리들 33명이 모두 살아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세바스찬 피네라 대통령은 그 메모를 TV에 비추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뉴스가 나간 후 전국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가정과 직장, 식당에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다. 서로 얼싸안고 키스하고 환호했다. 가족들은 “희망을 잃지 않겠다”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광부들은 좁은 아파트 넓이의 공간에 피신해 있다. 구조대원들은 소량의 음식과 과자를 윈치에 메달아 지하로 보냈다. 다행히 지하에는 물과 공기가 있다.

매몰 광부들과 교신하고 음식 제공돼 ‘크리스마스 이전 생환’ 기대 커

▲ 지난 8월29일 TV를 통해 방영된, 칠레 산호세 광산에 갇힌 광부들의 생존 확인 비디오 영상. ⓒ연합뉴스

구조대는 지하에 소형 카메라를 투입했다. 드디어 8월29일 갱 속에 갇힌 광부들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 영상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광부들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비디오가 방송되자마자 환희와 희망의 물결이 밀려왔다. 구조에 4개월이 걸린다는 말에도 좌절이나 체념은 없었다. 광부 가족과 주민들은 박수를 치고 춤을 추었다. 굳건히 살아 있는 광부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비디오에는 33명의 매몰 광부 중 28명의 모습이 나왔다. 일부 수척해진 사람은 있었으나 대다수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비극에 ‘조직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듯했다. 조를 짜서 교대로 ‘근무’하면서 배기통을 통해 지상과 교신하고 침실, 게임실, 목욕실, 배설물 처리 공간까지 마련했다.

보건 당국은 특히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이는 다섯 명의 광부들에게 보낼 처방약을 결정하기 위해 의료진 회의도 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극도의 고립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상의하기도 했다. 일곱 명 이상의 정부 각료들이 천막에서 매몰된 광부의 가족들과 생활을 함께한다. 수많은 정치인, 백만장자, 시민들이 텐트 부근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이미 인기가 떨어진 피레나 대통령도 광부 구출에 정치 운명을 걸었다. 미디어 왕국의 억만장자인 그는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모든 역량과 전략을 모조리 동원했다.  

광부들의 사기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매몰 17일 만에 처음으로 생존이 확인되고 지상과 통신했을 때 일었던 ‘도취감’(euphoria)이 사라지면 광부와 그 가족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광부들과의 대화에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편지를 보낼까 하는 문제를 사전에 토론한다. 34세의 아들이 매몰된 한 어머니는 전문가들이 좋은 자문을 해준다고 고마워했다. 보건 전문가들은 광부들을 위한 운동 및 오락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장시간의 고립을 버티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낮과 밤의 활동을 구분할 것도 광부들에게 지시했다. 광부들이 갇힌 공간은 6백 평방피트 너비의 좁은 공간이다. 하지만 그 부근에는 많은 갱도가 있어 산책도 할 수 있고 개인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고 광산회사측은 밝혔다.

관리들은 광부들의 생존을 확인한 후 이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구조에 몇 달이 걸린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칠레 독립일인 9월18일까지는 구조가 어렵다는 정보는 제공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전까지는 기어코 구조를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구조가 장기화할 경우 광부들은 몇 가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첫째는 위생 문제이다. 물과 공기가 오염될 수 있다. 게다가 배설물이 골칫거리이다. 장기간 쌓이면 대피 공간 전체의 환경이 악화된다. 다음은 심리적 문제이다. 병이 생기면 마음이 약해지고 사기도 저하된다. 칠레에서는 광부들이 25일 이상 지하에 매몰된 기록이 없다. 좌절감이나 절망감도 문제이다. 이번처럼 오래 버티려면 광부들 스스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서로 협조하고 격려해야 한다.

광부들이 좋은 건강을 유지할지 의문이다. 그러나 광부들이 지상과 통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 광산 사고와는 다르다. 그래서 여기에 거는 기대가 크다. 편지나 사진들을 주고받고 대화를 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수많은 난관과 불확실성에도 크리스마스에 33명이 모두 생환함으로써 사상 최고의 선물을 안겨줄 것이라는 기적을 모두가 고대한다. 전례가 없는 시련을 극복하는 날 칠레는 위대한 국가로 다시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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