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에서도 거침없는 돌진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0.09.0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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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저가항공사들, 높은 생산성 앞세워 ?승승장구’…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은 37년간 흑자 행진

 

▲ 말레이시아 저가항공사 에어아시아X가 운항하는 에어버스330이 쿠알라룸푸르 외곽 세팡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민간항공운송협회(IATA)는 전세계 항공업체가 지난해 1백10억 달러 손실을 입었다고 추산했다. 지오반니 비시냐니 IATA 회장은 “지난 10년은 끔직한 나날이었다. 해마다 평균 50억 달러의 손실을 입어 총 4백9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는 그나마 조금 나아져 38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듯하다”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저가항공사는 낮은 원가 구조와 높은 생산성을 앞세워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일랜드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가 독일 대형 항공사 루프트한자를 제치고 국제선 서비스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저가항공사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국내선 부문에서 시장 1위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지난 37년 동안 적자를 기록한 해가 없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성공에 힘입어 저가항공사는 1990년대 말 잇따라 설립되었다.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은 1971년 첫 비행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나서야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팔았다. 미리 좌석을 배정하지 않고 손님들을 선착순으로 앉혔다. 전세계 저가항공사들은 하나같이 사우스웨스트항공을 흉내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해마다 승객 1억명가량을 실어나른다. 유럽에서는 저가항공사 이지제트가 여객기 1백82대로 5백개 노선에 취항하고 있다. 이지제트는 해마다 4천6백만명을 실어나른다. 저가항공사의 세계 항공 서비스 시장점유율은 24%이다. 가장 큰 저가항공 시장은 유럽이다. 지난 10년 동안 유럽 지역 저가항공사들은 시장점유율을 9%에서 39%로 높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조만간 세계 최대 항공 서비스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항공기개발협회(JADC)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항공 여객 수가 지난해에는 북미와 유럽에 뒤졌는데 2029년에는 32%로 세계 최다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시아·태평양 하늘을 나는 저가항공사는 19개 업체나 된다. 중국 업체가 다섯 곳으로 가장 많고, 한국 업체가 네 곳으로 그 뒤를 따른다. 인도 업체가 세 곳이고 호주 업체가 두 곳이다. 그리고 싱가포르·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업체가 한 곳씩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저가항공의 선두 주자는 말레이시아 업체 에어아시아이다. 지난 2001년 설립한 에어아시아는 현재 동남아시아 시장 1위 업체로 성장했다.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같은 아세안(ASEAN) 국가부터 영국, 호주까지 취항하고 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하는 노선만 60개가 넘는다. 평균적으로 1인당 1km 비행 시 운행 요금이 32원에 불과하다. 일반 항공사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에어아시아X라는 장거리 전용 자회사를 설립했다. 저가항공사는 장거리 운항에 부적합하다는 고정 관념을 깬 것이다. 대표 노선이 쿠알라룸푸르-런던 항로이다. 편도 요금이 34만원가량으로 일반 항공사의 40~50%에 불과하다. 에어아시아는 오는 11월 인천-쿠알라룸푸르 노선을 개항할 예정이다. 발표 당시 편도 6만원이라는 파격 이벤트로 눈길을 끌었다. 

에어아시아를 바짝 쫓는 저가항공사는 호주 업체 제트스타이다. 제트스타는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지난 2004년 국내선 운항을 시작한 제트스타는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취항하고 있다. 호주에서 벗어난 국제 노선에 에어버스330 일곱 대를 투입해 중거리 노선에 취항했다. 제트스타는 일본까지 날아가 그리스 아테네나 이탈리아 로마까지 가는 호주 항공사 콴타스의 노선까지 넘보고 있다. 콴타스는 최근 뉴질랜드 국내 노선에서 철수해 제트스타의 영업 범위를 공간적으로 넓혀주었다. 지난 2007년 타이완의 타이페이와 일본의 간사이 간 노선을 개설했다. 브리즈번-간사이 노선 운행 요금은 65만원가량이다. 일반 항공 요금의 70% 수준이다. 해마다 일본에 광고비 2백80억원을 쏟아붓고 있다.

▲ 라이언에어(왼쪽)와 사우스웨스트 항공(오른쪽)이 세계 항공 서비스 시장을 이끌고 있다. ⓒ연합뉴스

원가 상승 대비해 색다른 전략 모색하기도

필리핀 업체 세부퍼시픽은 1996년 필리핀 대기업 JG서밋홀딩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2001년 국제 노선을 개항해 중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한국에 취항하고 있다. 인천-세부 노선의 편도 요금은 2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일반 항공사 요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세부퍼시픽 노선은 필리핀 내 관광 리조트 지역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밖에 중국 업체도 국제선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 주자 격인 춘추항공이 지난 7월 상하이-이바라키 노선을 개설했다.

저가항공사가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대형 항공사와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있다. 저가항공사가 성장하면서 원가가 늘어나고 기존 대형 항공사가 원가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항공사들은 인터넷이나 전자티켓을 광범위하게 도입하고 새 고용 계약을 체결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저가항공사는 경쟁이 치열한 국내 노선에서 벗어나 국제 노선까지 진출하고 있다. 저가항공은 최신 기종을 도입하고 출발지와 도착지만 오가는 노선 방식을 채택해 연료 효율과 운항 빈도를 높이고 지상 지체 시간은 줄였다. 또, 신규 업체로 등록되어 대형 항공사와 달리 노동조합 법규나 노동 관련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저가항공사의 원가는 대형 항공사의 36%(미국)에서 70%(아시아와 남미)에 불과했다. 원가가 낮다는 것은 가격 경쟁력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원가가 높으면 매출도 높아진다. 대형 항공사는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 서비스에 투자해 훨씬 많은 수입을 거두고 있다. 브라이언 피어스 IATA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사과와 배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저가항공사와 대형 항공사는 사업 모델 자체가 다르다. 저가항공사와 대형 항공사의 차이를 비용이라는 기준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대형 항공사와 저가항공사의 원가 차이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IATA 원가 절감 방안인 사업단순화(StB) 프로그램을 통해 대형 항공사들은 한해 1백68억 달러를 줄일 것으로 IATA는 추산한다. 이와 달리 저가항공사는 사업 확장에 따라 원가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 프로드 라자 캐나다 요크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가항공이 성장하면서 원가 부문에서 저가항공의 경쟁 우위 요소가 없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미 지역에서 저가항공사나 대형 항공사의 인력 규모는 비슷하다. 다만 종업원당 생산성 면에서는 저가항공사가 높다. 

국내선이나 단거리 국제선 서비스 시장에서 저가항공사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대형 항공사도 나타나고 있다. 에어캐나다는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좌석을 팔고 기본 좌석에다 고객 요구에 따라 수하물이나 음식물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항공권 값을 낮추고 있다. 에어캐나다 사업 모델은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에어캐나다와 달리 프리미엄 서비스로 승부하는 항공사도 있다. 세계 1위 항공사 싱가포르항공은 풀서비스로 차별화를 꾀한다. 니콜라스 아이오나이즈 싱가포르 항공 부사장은 “(싱가포르 항공은) 전사 차원에서 예산 절감 운동을 실행하고 있으나 고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분야는 예외로 하고 있다. 싱가포르 항공은 프리미엄 항공사이다. 프리미엄 풀서비스는 싱가포르 항공이 주도하는 틈새시장이다. 프리미엄 포지셔닝은 실적 개선에 기여하며 새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항공은 저가항공사인 타이거에어웨이스의 지분을 갖고 있다. 타이거스에어웨이스는 동남아시아 항공 서비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싱가포르 항공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되어 운영된다. 과거 브리티시에어웨이스의 고나 델타의 송처럼 대형 항공사 산하 저가항공사가 모회사의 경영 간섭에 의해 망한 선례를 따르지 않기 위해서다.

▲ 호주 저가항공인 제트스타가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정비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유가 변동에 민감…장거리 노선 취항이 도움

제트스타도 호주 콴타스 항공이 소유하고 있다. 알란 조이스 콴타스항공 대표이사는 “우리는 저가항공 설립을 필수 과제로 보았다. 호주 안셋 항공이 무너지고 나서 버진블루(호주 저가항공사)가 시장의 50%를 차지했다. 과거 대형 항공사들이 저가항공사들을 만들려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우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저가항공사가 지나치게 독립되어 있으면 대형 항공사 시장을 잠식할 수 있고, 반대로 너무 가까우면 원가가 지나치게 높아질 위험이 상존한다. 사업 초기 제트스타와 콴타스의 국내 노선은 거의 겹치지 않았다.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시장 자체가 나누어졌다. 제트스타는 지금 26개 국내 노선에서 콴타스와 나란히 취항하고 있다. 조이스 대표는 “콴타스의 멜본-시드니 최저 항공료는 93달러이나 제트스타는 36달러이다. 그럼에도 두 브랜드에서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저가항공사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국제 유가이다. 가격에 민감한 시장에서 영업하고 있어 유가 급등에 따라 비용 증가를 상쇄할 만한 여지가 거의 없다. 저가항공사는 원가를 지속적으로 낮게 유지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성숙 시장에서 원가를 지속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라자 교수는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성장성은 떨어지는 단거리 시장에 집중하는 것과 사업 전략이나 원가 구성에 변화를 주어 장거리 노선까지 취항하는 확장 전략이 그것이다. 세 번째는 아예 사업 모델을 총체적으로 바꾸어 대형 항공사와 경쟁하는 방식이다.

라자 교수는 “세 번째 방식은 저가항공사에게 죽음의 키스와 같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방식이 유력하다. 에어아시아는 에어아시아X를 설립해 첫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첫 저가항공사가 되었다. 에어아시아X와 제트스타는 장거리 운항 서비스의 원가 절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손잡았다. 북미와 유럽 저가항공사들도 잇달아 장거리 노선을 운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언에어나 캐나다 저가항공사 웨스트제트는 조만간 대륙 사이를 오가는 국제 노선에 자사 여객기를 띄울 채비를 갖추고 있다. 라자 교수는 ‘조만간 태평양 상공을 오가는 저가항공사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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