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쌘 저가 항공 ‘고도’를 높이다
  • 이철현·이은지 기자 ()
  • 승인 2010.09.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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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항공이 상승 궤도에 올라섰다. 지난해 세계 항공 서비스 시장 선두 업체(여객수 기준)는 저가항공사들이었다. 아일랜드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가 독일 대형 항공사 루프트한자를 제치고 국제선 서비스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저가항공사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은 오래전부터 국내선 선두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세계 저가항공사들은 기체 운항 빈도는 높이고 비용은 낮추는 방식으로 기존 항공 서비스와 다른 틈새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저가항공사들도 이제 나름의 수익 모델을 갖추고 날아오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하늘을 누비는 저가항공사만 19개 업체이다. 한국 업체도 네 곳이나 된다.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인 진에어와 에어부산, 애경그룹 산하 제주항공, 이스타항공이 서비스 경쟁력을 갖추고 국내 항공 여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국내 저가항공사 소속 여객기는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부터 태국 방콕까지 날아가고 있다. 사업차 가까운 국가를 오가는 비즈니스맨이나 싼 항공 티켓을 찾는 여행객이 저가항공사의 에어버스320이나 보잉737에 오른다. <시사저널>은 국내 저가항공이 보유한 경쟁 전략을 분석하고 저가항공이 앞으로 항공 서비스 시장을 어떻게 바꿀지를 전망했다. 저가항공 소비자에게 유용한 저가항공 활용법까지 정리했다. 고객이 저가항공 영역에서 가장 우려하는 기체·운항의 안전성 문제도 아울러 살폈다.

 

중앙대 시간강사인 김미영씨(37)는 매달 두세 차례 저가항공을 이용한다. 벌써 3년째이다. 자주 이용하다 보니 프로모션 행사 가격인 1만9백원으로 제주도를 가는 행운도 누렸다. 저가항공사가 등장하자마자 이용하기 시작한 김씨는 이제 저가항공사에 대한 불안감이 전혀 없다. 김씨는 “호주와 유럽에서 5년간 살면서 이미 저가항공사를 많이 접해 보았다. 안전하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에 국내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는 데에는 심리적인 걸림돌이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국내 저가항공사를 더욱 자주 이용하고 싶지만 국제 노선이 관광지에만 치우쳐 있어 이용할 기회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대학생인 강신유씨(25)도 저가항공사 마니아이다. 2년 전 유럽에 배낭여행을 다녀올 때나 그 이후에 홍콩과 제주도를 갈 때에도 모두 저가항공을 이용했다. 강씨는 “비성수기에는 대형 항공사의 절반 가까운 가격에 다녀올 수 있다. 대학생들처럼 돈은 없지만 해외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고객들에게 적합한 상품이다”라고 말했다.

저가항공사들은 이제 도입기를 거쳐 성장기로 들어섰다. 진에어와 에어부산이 올해 처음 흑자를 기록한 데 이어, 제주항공도 올해 말부터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타항공은 노선을 배정받지 못해 흑자로 전환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올해 매출이 지난해 상반기 대비 3백60% 증가하는 등 실적 향상에 탄력이 붙었다. 외국 저가항공사의 경우 설립한 지 5년 정도 지나야 흑자로 전환되는 것과 비교해 다소 빠른 성과이다. 1일 평균 해외 여행자 10만명 시대를 맞이할 정도로 해외 여행자 수가 급증한 호재 때문이다. 동시에 항공사 내부적으로 가격 절감을 위한 치열한 노력들이 시너지 결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저가항공사는 대형 항공사와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요금을 평균 20%가량 낮추기 위해 인력 축소와 함께 자체 시스템 개발로 수수료를 절감하는 등 마른 수건 쥐어짜기 식의 비용 축소에 나서고 있다.

▲ (왼쪽부터)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눈물 겨운 비용 절감 노력, 승객에 혜택으로

진에어는 예약·발권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외주업체에 지불할 수수료를 절감했다. 좌석 번호 없이 구역만 정한 뒤 선착순으로 탑승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발권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적은 인원으로 많은 탑승객의 발권 서비스를 처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은 시간대에 맞춰 가격이 자동적으로 변동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수요에 맞춰 홈페이지에서 알아서 가격이 조정된다. 영업사원이 비성수기 티켓을 판매하기 위해 영업을 해야 하는 비용을 줄였다. 또한 조기에 예약하는 사람들에게 파격적인 가격대로 할인해주는 얼리버드 요금 체계(선착순 할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인터넷을 통한 직접 판매 비중을 높였다. 여행사에 지불하는 판매 수수료를 줄이기 위해서다. 제주항공은 항공기 운항 횟수를 늘리기 위해 운항 준비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켰다. 김포에서 제주도에 도착한 후 다음 출발까지 보통 40분의 준비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를 25분으로 줄였다. 양성진 제주항공 상무는 “기장을 포함해 승무원들이 직접 기내 청소를 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기내 정리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에어부산을 제외하고는 국내선에는 뜨거운 음료가 제공되지 않는다. 온열 기구를 들여놓기까지 까다로운 검열을 거쳐야 할 뿐 아니라 비용이 몇십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부적인 노력에도 국내선 운항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박수전 이스타항공 영업본부장은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기름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이동 거리가 짧으면 운행을 할수록 오히려 손해가 난다. 국제선은 국내선보다 거리가 짧을지라도 더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여러 가지 검열 절차를 거친다는 이유에서다. 그 밖에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국제선으로 노선을 확대하는 것은 저가항공사가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제주항공에서 2008년 일본 히로시마로 국제선을 첫 취항한 이래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이 연이어 국제선으로 노선을 확대했다. 1년에 1만회 이상 운행을 한 항공사에게만 국제선 허가를 내주는 제도가 지난해에 없어진 것도 한몫했다.   

외국에는 저가항공기 전용 터미널이나 주요 공항과 다소 떨어진 지역에 군소 공항들이 많이 있어 공항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제주항공이 일본 후쿠오카 공항이 아닌 키타큐슈 공항처럼 저렴한 주변 항공을 이용해 요금을 절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국내선은 야간 비행을 할 수 없는 반면 국제선은 야간 운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항공기 운행 횟수를 늘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기내식도 간단하게 나온다. 양성진 제주항공 상무는 “일본처럼 짧은 구간에는 삼각 김밥을 제공한다. 방콕처럼 긴 구간에는 데울 필요가 없는 샌드위치나 차가운 기내식이 간단하게 나온다. 고객들이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 식사를 하고 탑승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기내용 모니터도 설치하지 않는다. 다만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에서는 승무원들이 마술쇼를 하거나 퀴즈게임을 함으로써 고객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고자 한다. 

흑자 폭을 넓히기 위해 국제선 노선 확대가 불가피한 만큼 면허를 취득하기 위한 경쟁 또한 치열하다. 매년 국토해양부에서 국제항공 운수권을 배분한다. 여러 평가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순서대로 노선을 배분한다. 올해에는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모두 똑같은 점수를 받아 비슷한 수준의 노선을 배분받았다.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제주항공은 홍콩·마닐라·세부 노선을, 진에어는 필리핀·마카오·상하이 노선을, 에어부산은 필리핀·홍콩 노선을 새롭게 취항할 예정이다. 이스타항공은 첫 취항 이후 1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수권을 배분받지 못했다. 때문에 이스타항공은 허가가 필요 없는 일본 자유화 지역에 두 개 노선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중국에는 부정기 운항을 통해 항공기 운행 횟수를 늘릴 예정이다.

공항 사용료 인하 등 정책적 배려 따라야

국내 저가항공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외국 저가항공사의 국내 상륙에도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에어아시아엑스는 오는 11월1일 인천-쿠알라룸프르(말레이시아) 노선을 첫 취항하면서 편도 6만원이라는 파격적인 할인가를 선보였다. 하루 만에 티켓 8만장이 매진될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에 취항하고 있는 이스타항공에게는 다소 불리한 상황이다. 이에 박수전 이스타항공 영업본부장은 “고객층이 다르다. 쿠알라룸프르는 비즈니스 고객이, 코타키나발루는 관광객이 대다수이다. 또 에어아시아에서는 물 한 컵도 모두 유료이다. 한국인의 정서상 모든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크다. 오히려 에어아시아 덕분에 저가항공사의 본래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유료 서비스를 실시해 수익성을 제고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라고 내다보았다.

겉으로는 태연한 반응이지만 과잉 공급이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내 최초 저가항공사였던 한성항공이 오는 9월 재취항에 나서는 것도 이런 우려를 더한다. 한성항공이 부도를 맞은 지 1년 만의 재기이다. 티웨이항공(T’way Air)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윤덕영 전 아시아나항공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신보 종합 투자에서 투자를 받아 재기 비용으로 충당했다. 현재 보잉737-800 한 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오는 8월과 12월에 각각 한 대씩 추가로 도입할 예정이다. 공급이 늘어나면서 2008년에 벌어졌던 생존 경쟁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 두 번째로 설립되어 과도기를 거쳐온 제주항공은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기초 체력을 다질 수 있도록 윈-윈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성진 제주항공 상무는 “이제 겨우 뿌리를 내렸다. 또다시 출혈 경쟁을 벌여서는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없다. 항공사 내부적으로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을 하는 동시에 저가항공기 전용 터미널 건립이나 공항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정책적인 배려가 뒤따른다면 저가항공기 시장을 확고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고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이점으로 작용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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