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몹쓸 짓’ 했나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9.0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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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성들, “합동 심문 과정에서 성적인 모욕받았다” 토로…“성추행당한 경우도 있어”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하는데 남자 직원이 문을 열고 막 들어왔다.” 지난해 말께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 여성 A씨가 국가정보원이 주도하는 합동 심문팀에서 조사를 받기 전 겪었다는 황당한 경험이다. 그녀는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항의를 하거나 그럴 힘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여러 명이 함께 샤워를 했는데, 이런 일이 있은 후 ‘샤워하러 갈 때 조심하라’라고 서로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탈북 여성들을 관리하던 그 직원을 ‘키가 자그마한 40대 남성’이라고 밝혔다.

▲ 지난해 말 한국에 정착한 한 탈북 여성이 조사 과정에서 겪었던 일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시사저널> 취재진은 탈북 여성들의 인권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들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한 이들이 남한 땅을 밟는 순간 느끼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오랜 도피 및 수감 생활을 해 심신이 지쳐 있다. 여성들의 경우 제3국에서 인신매매의 덫에 걸려 고통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한국행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해서도 그 고통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7월께 태국을 통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A씨는 한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국정원 직원 두 명이 공항에 나와 있었는데, 처음부터 눈을 부라리면서 욕설을 해서 너무 무서웠다. 어렵게 목숨을 걸고 왔는데 오자마자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너무 얼이 빠져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라고 밝혔다.

곧바로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후 숙소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보낸 두 달은 감옥 생활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줄을 세워 번호를 부르게 했는데, 한 직원이 ‘이 안에 양의 가죽을 쓴 승냥이가 있는지 누가 아느냐. 너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며 겁을 주었다. 반말과 욕설은 보통이었다. 태국 감옥보다 더 그랬다”라고 말했다.

▲ 탈북한 여성들이 마스크를 쓴 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말과 욕설은 보통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녀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탈북 여성들은 몇 차례 내부 시설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숙소에 있는 TV에서는 교육 방송만 나와서 영화 관람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영화 상영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여성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날 50대 후반의 얼굴이 넓적한 직원이 맨 뒷자리에 떨어져 앉았는데, 앞자리부터 채운 다른 여성들과 달리 한 여성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A씨는 “남자 직원이 그 여성의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말이 퍼졌다. 화면이 밝아질 때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본 것이다. 처음에 우리 방에 있던 ○○○라는 애가 지목을 받았는데, 나중에 다른 방의 ○○○인 것으로 알려졌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그 직원이 있으면 다들 ‘저 사람이다’라며 수근거렸다”라고 밝혔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녀는 당시 같이 있었던 여성들 중에서 지금도 연락이 되는 몇 명에게 전화를 걸어서 관련 내용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 한국에 정착한 A씨의 충격적인 증언을 들은 후 <시사저널>은 그동안 탈북 여성들이 정부 기관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여러 경로를 통해 취재했다. 그 결과 다른 탈북 여성들도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난해 3월 탈북인단체총연합회 사무실에 여러 명의 탈북 여성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사회적 일자리 문제로 모였는데, 이들 사이에서 하소연이 터져나왔다. 일부 여성들이 정부 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갖은 곤욕을 치렀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복수의 탈북자들에 따르면, 특히 30대 중반의 B씨는 자신이 겪었던 치욕스러운 일을 떠올리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탈북을 한 후 한동안 중국에서 지내다가 가까스로 태국으로 도망 간 그녀에게 국정원에서 나온 직원이 ‘남자를 몇 명이나 갈아치웠느냐’ ‘며칠에 한 번씩 성관계를 했느냐’라는 등 성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질문들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 남자와 중국 남자가 성관계를 하는 방법을 비교해서 설명하라’는 식으로 터무니없는 조사를 하면서, 대답을 하지 못하자 뺨까지 때렸다고 한다.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불이익을 줄까 봐 말을 못할 뿐이다. 남한 사회에 대한 탈북 여성들의 인식 수준이 낮고 신분이 불안하다는 것을 이용해서 그러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다른 탈북자 지원 단체의 회장도 “조사 기관에서 ‘남자 몇 명이 거쳐 갔느냐’ ‘중국인과 몇 번 자봤냐’ 이런 질문까지 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자리에 함께 있었던 한 탈북 여성은 “반말에 ‘이× 저×’ 하면서 겁을 줘 무작정 울게끔 만든다. 초장에 얼어서 말을 제대로 못하면 ‘간첩 아니냐’라고 다그친다”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제기한 인권 침해 사례를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도 듣고 갔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전한 또 다른 탈북 여성은 “당장 무슨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별다른 해결도 없었고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지치고 말하기를 싫어한다. 솔직히 지나간 일이고 창피한 일이다 보니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6년 한국으로 온 탈북 여성 C씨도 조사를 받으면서 갖은 모욕을 당했다고 한다. 탈북을 한 후 오랫동안 중국에 머물렀던 그녀는 “인격을 존중해주는 조사관도 있었지만,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조사관도 있었다. 북한 주민임을 인정받기 전에는 너희는 개보다 못하다는 말까지 들었다”라고 밝혔다.

한국에 정착한 후 탈북 여성을 대상으로 상담도 하는 C씨는 “성희롱을 당하고 성추행을 당해도 당시에는 잘 모르는 탈북 여성들이 많다. 쫓기고 억눌린 삶을 살다 보니 그저 순종하면서 그런가 보다 한다”라고 설명했다.

 입국 심사 기간 늘어날까

탈북자들이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입국을 하면 합동 심문팀에서 신원 확인 등을 위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 팀에는 국정원을 주축으로 해서 기무사, 경찰 등 유관 부처 관계자가 참여한다. 여기서 위장 탈북자, 조선족, 화교 등을 걸러낸다. 조사 기간은 통상 1~2개월 걸린다.

합동 심문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호 대상’ 판정을 받으면 북한 이탈 주민 정착 지원 시설인 하나원에 입소하게 된다. 이곳에서 건강 증진,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직업 훈련 등의 교육을 받는다. 기간은 총 12주이다. 교육을 마치면 초기 정착 지원금과 주택을 할당받게 된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탈북자라면 4~5개월 정도 조사와 교육을 받으면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 기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통일부는 합동 심문 기간을 최장 1백80일로 하는 북한이탈주민지원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법제처에서 심사 중에 있으며 한 달 후에는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탈북자들이 사회로 진출하기까지 최장 9개월가량의 기간이 걸릴 수도 있게 되었다. 합동 심사 기간을 늘리는 배경에는 간첩 등으로 의심이 되는 위장 탈북자에 대해 좀 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판단이 깔려 있다.

반면,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조사 기간이 늘어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통일부에서 입법예고를 할 때부터 ‘제3국에서 오랜 기간 집단 수용 생활을 경험한 탈북자들에게 집단 생활이 더 늘어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위축과 불안감을 고조시킬 수 있다’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통일부도 이러한 의견이 여러 곳에서 나오자 규제개혁위원회에 안건을 올려 심사를 가졌다. 결과는 원안 통과였다. 통일부는 입국·정착 등 탈북자에 대한 종합적인 일을 담당하지만, 실제 탈북자 조사는 국정원 등에서 맡고 있어서 이들 기관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이들 기관은 위원회에서 ‘통상적인 탈북자의 경우 90일에 맞춰서 내보낼 것이다. 단지 신분을 위장하거나 국가 안보에 우려가 있는 경우 1백80일까지 하겠다는 취지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탈북자 단체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협회 회장은 “조사를 몇 달 더 연장하면 간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 모든 탈북자가 1백80일까지 조사받는 것이 아니냐며 꺼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조사가 통상적으로 해 오던 대로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나면 달라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 국가정보원 ⓒ시사저널자료
<시사저널>은 탈북 여성들의 ‘국정원 직원 인권 침해’ 주장과 관련해 국정원에 질의서를 보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정원이 보내온 반론을 싣는다.

 

국정원은 ‘탈북 여성의 인권 침해’ 주장과 관련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국정원 직원은 보호 중인 탈북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동포애에 입각하여 최대한 인권을 존중하고 있으며, 반말·욕설 및 범죄자로 취급한 사실이 없다”라고 밝혔다. ‘탈북 여성들이 샤워를 하는 도중에 직원이 들어왔다’라는 증언에 대해서는 “여성 탈북자들은 수용 직후 공동 샤워실에서, 남성 직원의 접근이 차단된 상태로 먼저 입국한 여성 탈북자의 안내에 따라 1회 단체 샤워를 한다. 숙소 배정 후에는 같은 실에 여러 탈북자들이 함께 있고, 샤워실은 문을 잠글 수 있어 남자 직원의 접근이 불가능하다”라고 해명했다.

 ‘영화 관람 중 성추행이 있었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영화는 탈북자 교육용 교실에서 수십 명이 함께 관람하는데, 수십 명이 있는 장소에서 성추행했다는 주장은 상식 밖의 일이다”라고 일축했고, “태국에서의 조사는 방콕 이민국 감호소 내 UNHCR 사무실에서 진행되며 칸막이 없는 좁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업무를 수행하고, 다른 탈북자들이 조사받기 위해 같은 사무실 내에 대기하고 있어 담당관이 성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또 “탈북자들에 대한 조사는 국내 정착 사전 단계로서 실시되는 관계로 우호적인 상황에서 진행되므로 모욕적인 질문은 있을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시사저널>에서 취재하고 있는 내용과 관련해 ‘탈북자들에게 전화로 확인을 한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탈북자, 특히 탈북 여성들에게 전화를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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