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 방중’에 숨은 중국 노림수
  • 박승준 | 인천대 국제정치학 초빙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9.0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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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군사 훈련에 대한 항의의 연장 선상에서 천안함 사건 해결도 6자회담 거치라는 뜻 비친 것으로 보여

▶ 김정일의 이번 방중(訪中)에 아들 김정은이 수행하지 않았는가?

“중국과 조선(북한) 사이에는 지도자들의 상호 방문 전통이 있다. 중국과 조선이 공동 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되고, 관련 당사국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김정일의 주요 수행 인원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 중국은 최근 미국이 보여준 6자회담 재개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국제 분쟁을 해결하자는 것은 중국의 일관된 주장이다. 현재 한반도의 정세는 복잡하고 민감하다. 우리는 관련 당사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길을 가는 것이, 상호 관계를 개선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중략) 6자회담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장치구안(長治久安)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익한 마당이다.(생략)”

▶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최근 미국을 방문했는데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새로운 방안이라도 제시했나?

“우다웨이 특별대표는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 조선과 한국, 일본을 방문했고, 미국에 이어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우다웨이 대표의 이번 방문 목적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각 당사국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각국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한 것이다.”

 

▲ 지난 8월2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이 중국 지린 성의 창춘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

지난 8월26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동북 지방 방문이 끝난 후 9월2일 처음으로 열린 중국 외교부 브리핑에서 장위 대변인이 베이징 주재 외국 특파원들과 주고받은 문답 내용이다. 질문은 긴박하지만, 대답은 늘상 한가해 보이는 평소의 선문답(禪問答) 그대로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카터-김정일 회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돌연 이루어진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대한 중국 외교부의 사후 공식 설명은 이상의 답변이 전부였다. 김정일 방문에 김정은이 수행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내놓은 “우리는 이미 김정일의 주요한 수행 인원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라는 말은 “김정은은 수행원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말인지, “김정은이 수행 인원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공식 수행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발표된 주요한 수행원 명단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라는 뜻인지가 알쏭달쏭한 평소의 중국식 화법이었다.

중국 외교의 특징은 소설다주(少說多做; 말보다는 행동을 많이 하는 것)이다. 평소 중국인들의 언행도 그렇고, 중국 외교관들의 행동 양식도 그렇고, 중국이라는 국가가 보여주는 외교 행태도 그렇다. 그래서 중국 외교관과 외교부, 중국이라는 국가의 계산과 속내를 읽기는 늘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왜 3·26 천안함 사건에 대한 싸늘한 국제적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북한을 끌어안고 가는 것일까. 왜 건강도 나빠지고, 경제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김정일을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동북 지방의 창춘까지 달려가 극진히 예우하는 것일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후계 3대 세습이 이루어지는 데 대한 중국의 입장은 무엇일까. 중국의 관심은 역시 자신들이 의장국인 6자회담을 다시 여는 데 있는 것일까.

앞으로 할 말 하고 행동도 하겠다는 의지 밝힌 것이라는 시각도

중국의 수많은 매체 가운데 정부를 비판할 줄도 알고 이견도 제시할 줄 아는 유일한 매체는 중국 남부 광둥 성 광저우에서 발행되는 남방일보(南方日報) 계열의 온-오프라인 신문 남방미디어이다. 남방미디어는 9월1일 ‘김정일의 방중이 보여준 세 가지 정보’라는 주목할 만한 글을 올렸다. ‘김정일 방중이 보여준 첫 번째 정보는 그들(조선노동당)이 곧 당 대회를 개최할 것이라는 정보이고, 두 번째 정보는 (카터의 평양 도착을 무시한 채 중국을 방문한 것은) 자기네들이 미국을 불신한다는 표시를 한 것이며, 세 번째 정보는 핵무기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노동당 당대표자회를 앞두고 김정일이 창춘으로 가서 후진타오를 만난 것은 당대표자회가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사전 설명을 하기 위한 것이며, 카터가 곰즈 씨를 데리러 평양에 도착한 뒤에 김정일이 중국 방문길에 나선 것은 중국을 향해 “우리는 미국보다는 중국을 중시한다”라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한 것이고, 한반도 비핵화에 따른 북한 핵 폐기를 중국 외교의 기본 정책으로 하고 있는 중국의 국가주석을 김정일 위원장이 3개월 사이에 잇달아 방문해서 만났다는 사실은 김위원장이 은근히 핵무기 폐기에 동의한다는 뜻을 후진타오에게 전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이었다.

남방미디어의 시각은 김정일 방중이 남긴 또 다른 메시지에 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북한에 심각한 수재가 발생했지만, 지난 3월의 천안함 침몰을 겪은 한국은 8월24일까지도 북한에 식량 원조를 해주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위원장의 방중이 끝난 8월31일 돌연 적십자사를 통해 100억원 상당의 식량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점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이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자는 선의의 제의를 한 것이며, 같은 날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가 일본 외상을 만나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 상황을 설명하면서 6자회담 재개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 일이다. 결국 한국 정부가 김정일의 방중이 끝난 날 북한에 100억원 상당의 식량 원조를 제의한 것도 중국측이 한국 정부에 김위원장 방중에 관한 설명을 해주면서 김위원장이 6자회담에 동의했으니 한국도 6자회담 석상으로 나오라고 권유했고, 이에 한국이 동의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것이다.

중국 외교에 관한 최고 지휘권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는 중국 외교의 총사령탑인 중국공산당 외교영도소조의 의장이며, 이 소조(태스크포스)에는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 양제츠 외교부장을 포함한 외교와 국방, 안보의 최고 책임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후진타오가 내린 천안함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처방은, 일단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미국에 대해 도광양회(韜光養晦; 칼날의 빛을 감추고 조용히 실력을 기른다)의 자세를 취하던 시대를 벗어나 유소작위(有所作爲; 할 말과 행동은 한다)의 시대로 들어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한반도 근해에서 작전을 벌이는 데 대해 그동안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밝힌 뒤에 “천안함 사건의 해결도 역시 중국이 의장국인 6자회담으로 해야 한다”라는 답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이 제시한 그런 답안에 이명박 정부는 이미 동의를 해준 것일까. 그렇다면 북한 지도부에 대한 개별 금융 제재와 지속적인 한·미 군사 훈련 실시라는 미국의 강도 높은 천안함 침몰 처방전과 6자회담을 어떻게 병행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끝낸 것일까. 중국식 해답과 미국식 처방 사이에서 선택한 우리의 정책은 과연 어떤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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