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입속의 ‘검은 잎’일 뿐?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09.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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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속의 ‘노무현 차명 계좌’ 실체 추적 / 조청장의 실언인지 진실인지 밝히라는 압력 거세져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 계좌 존부(存否)에 자신이 있으니까 조현오 경찰청장을 임명한 것 아니겠나.”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 8월30일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홍최고위원은 그 근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지만 발언 자체만으로도 여권이 차명 계좌에 대한 단초를 확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앞서 그는 8월19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특검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보면, 자신 있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라며 묘한 여운을 남긴 것이다.

▲ 지난 8월30일 오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조현오 경찰청장에게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은 홍최고위원의 발언에 즉각 반발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천호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 등이 “무책임한 발언이다”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은 “특검을 하자고 하면 적극 응하겠다”라며 맞섰다. 의혹으로만 남겨두기에는 국민의 관심과 파장이 커져버린 상황이다.

노무현 차명 계좌 논란의 시작은 조현오 경찰청장의 입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지난 3월 서울경찰청 강당에서 경찰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전날 검찰이 거액의 차명 계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전까지 어디에서도 차명 계좌에 대한 언급이 나온 적은 없었다.

차명 계좌는 과연 있는 것일까. 지난해 검찰 수사 당시로 되돌아가서 거꾸로 상황을 짚어보자.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박 전 회장은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에게 5백만 달러를 송금했다. 이 돈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의 투자금으로 사용되었다. 2007년 6월에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권양숙 여사에게 100만 달러를 건넸다. 2007년 9월에는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뉴욕에서 집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계약금 40만 달러를 송금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박 전 회장에게 노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받은 6백40만 달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그렇다면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하는지를 밝히는 것에 주력했다. 이 가운데 5백만 달러는 퇴임 이틀 전에 전달되어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낮았고, 초점은 1백40만 달러에 맞춰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사전에 이를 알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수사는 그것으로 마무리되었고, 검찰 수사 기록도 봉인되었다. 

▲ 지난해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자료
법조계 회의론 우세…여권 부담 커 특검 가기는 어려울 전망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 검찰의 수사 초점은 권여사가 받은 돈을 노 전 대통령이 알았는지 여부이다. 수사 과정에서 차명 계좌에 대한 근거를 확보했다면 수사 방향이 확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가족들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을 넘어서 수뢰 과정에 노 전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 뇌물죄로 끌고 가던 검찰로서는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이 된다. 당시 ‘대통령 자살’이라는 초유의 사건으로 검찰이 수세에 몰린 형국이었다고 하지만 반전 카드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문제를 그냥 묻어두기에는 아까울 수 있다. 따라서 차명 계좌 존부에 대해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검찰 수사가 이에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법조계의 추론에 무게가 실린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대검 중수부 수사팀도 차명 계좌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당시 수사기획관)은 “차명 계좌로 나온 것은 없었다. 조청장이 수사 상황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우병우 대검 수사기획관(당시 대검 중수1과장)은 “차명 계좌가 있었는데 검찰이 곤란해서 말을 못하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인규 변호사(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는 “할 얘기가 없다”라며 언론 접촉을 꺼리고 있다.

조청장을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노무현재단과 ‘친노’ 세력은 더욱 화난 표정이다. 천호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은 “조청장이 서거 전날 차명 계좌가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그랬다면 노 전 대통령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단 말인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는 것인가. 또 노 전 대통령이 그 사실을 인지했다면 변호사를 통할 수밖에 없는데 변호인들은 차명 계좌에 대한 내용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라며 검찰 수사 기록에 차명 계좌가 있을 가능성을 일축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특검만 하면 단기간에 존부 여부가 드러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노무현 차명 계좌가 특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나라당이 청문회 국면을 전환하고 내부 갈등 요인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차명 계좌 문제로 정국을 이끌겠다는 생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특검에서 차명 계좌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면 조현오 청장은 물론, 그의 임명을 강행한 이명박 대통령에게까지 상당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부담도 있다.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도 노무현 차명 계좌 특검이 홍최고위원 개인의 생각일 뿐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정치평론가인 황인상 P&C네트워크 대표는 “사안의 폭발력으로 볼 때 여야 모두 위험 부담이 크다. 이후 추가적인 요인이 나온다면 모를까 특검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기국회 국면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조청장의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신유철)는 유족과 노무현재단이 고소·고발장을 제출한 지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고소인 조사도 벌이지 않았다. “일반 명예훼손 혐의 수사와 동일한 절차대로 한다”라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지만, 수사 상황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당시 수사 기록을 확인할지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호선 최고위원은 “수사 기록에 차명 계좌가 나와 있는지 여부와 조청장이 어디서 들었는지 확인하면 금방 끝나는 수사이다. 시간을 끄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검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검사 출신의 한 여당 의원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수사가 실익이 있을까 의문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라서 검찰이 수사 방향을 쉽게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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