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감독들 대목 실종 사건’의 전말
  • 라제기 |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09.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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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 전후해 아무도 작품 안 내놓아…‘글로벌’ 화두로 내걸고 대부분 차기작 촬영 중

지난해 영화팬들은 개봉작 면면만으로도 포만감을 느꼈다. 박찬욱·봉준호 등 한국의 대표 감독들이 한 달이 멀다 하며 대거 신작을 선보였고, 2006년 <괴물> 이후 3년 만에 관객 1천만명을 동원한 영화 <해운대>도 탄생했다. 하지만 올해는 판이하다. 최대의 장이 선다는 올해 추석은 대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이름만으로도 몇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한국의 간판 감독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 촬영 현장의 윤제균 감독. ⓒJK FILM제공

우연의 일치인지 검증된 흥행 감독들은 모두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화두는 ‘글로벌’이다. 해외 자본과 손잡고 대작을 만들어 한국 영화의 판을 키우려 하고 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다 보니 진척 속도가 느리고 일정이 불투명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은 <템플 스테이>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당초 망망대해의 석유시추선에 나타난 해저 괴물과 인간의 사투를 그릴 3D 영화 <제7광구> 연출을 검토했던 윤감독은 올 초 판타지 영화 <템플 스테이>로 방향을 틀었다. 내년 봄 촬영에 들어가 내년 겨울 개봉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템플 스테이>는 미국의 어린 남매가 우연히 한국에 템플 스테이를 왔다가 겪게 되는 모험을 다룬다. 절의 수호신 사천왕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9백99년 동안 착한 일을 하며 모은 눈물 주머니의 눈물을 남매가 다 마시면서 벌어지는 판타지가 컴퓨터 그래픽(CG)에 힘입어 스크린에 펼쳐질 예정이다. 시나리오 초고는 나왔고, 이를 번역해 미국과의 합작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템플 스테이>의 제작사 JK필름의 한지선 마케팅실장은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와 국내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협의 중이다. 제작비가 100억원을 훌쩍 넘는 3D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대중성과 완성도를 두루 겸비한 봉준호 감독의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는 시나리오 탈고 단계에 있다. 장 마르크 로셰트와 자크 로브가 지은 동명의 프랑스 만화가 원작으로 핵전쟁 뒤 기차에 목숨을 의지해 살아가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봉감독이 <괴물> 제작 이전부터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던 영화이다. 봉감독은 “대사의 60% 정도가 영어 대사라서 올가을 영어권 작가와 2차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영화 촬영은 빨라야 내년 6~7월에 시작하며 2012년은 되어야 개봉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봉감독은 “미국·일본·프랑스 영화사 등과 공동 투자, 공동 제작 등 다양한 제작 방식을 모색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CG로 암울한 미래 사회를 그려낼 <설국열차>의 추정 제작비는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인 3백억원가량이다.

▲ 박찬욱 감독 ⓒ 올댓시네마 제공

해외 투자 끌어들이는 등 제작 추진 방식도 다양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은 장동건·손예진 주연의 <마이웨이>로 충무로 복귀를 노리고 있다.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소련군과 독일군을 거쳐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 미군 포로가 되는 한 조선 남자의 기구한 인생 유전을 담는다. 영화계에 따르면 10월 크랭크인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실제 언제 촬영을 개시할지, 언제 개봉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 등과의 합작도 추진 중이다.

박찬욱 감독은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스릴러 소설 <액스(The Ax)>를 스크린으로 옮기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액스>는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한 남성이 재취업을 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연쇄적으로 죽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스 출신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가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로 만들어 화제가 되었던 소설이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프랑스 영화사가 제작 주체가 되어 미국과의 합작 등 다양한 제작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국내에서 차기작을 만들고 있는 감독들도 있다. 미국 진출설이 나돌던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은 충무로에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기상천외한 내용을 그린 코미디 <미스터 고>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며, 촬영과 개봉 등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잡혀 있지 않다.

1천만 관객 신화를 일군 강우석·이준익 감독은 내년 설 연휴를 겨냥해 신작을 촬영하고 있다.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두 감독이 맞대결을 펼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강감독은 정재영·유선 주연의 <글러브>로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후 20여 년 만에 휴먼 드라마에 도전한다. 사고뭉치 프로야구 선수가 자숙을 위해 농아 야구부를 지도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이감독은 <황산벌>의 속편에 해당하는 <평양성>을 찍고 있다. 백제군 병사 거시기(이문식)가 백제가 망한 뒤 신라군에 차출되어 고구려 공략에 나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당대 국제 질서에 포갠다. 이감독은 “백제가 망한 지 8년 뒤 고구려가 멸망했는데 2003년 <황산벌> 개봉 이후 8년 만에 <평양성>을 개봉하려 했다. 고구려의 내분 등 당대의 정치를 코믹하게 풀어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8백만 관객을 모은 <과속 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은 칠공주파 출신의 40대 전업주부들이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는 영화 <써니>를 최근 크랭크인했다. 남보라·민효린 등이 캐스팅되었다. <타짜>와 <전우치>의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가제)이라는 제목의 범죄물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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