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숨통 틔웠지만 대박 신화는 끝났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9.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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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8월29일 ‘실수요 주택 거래 정상화와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 지원 방안’(이하 8·29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시장에 숨통이 트였다. 의식 불명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부동산 시장이 응급조치를 받고 희미하게 의식을 되찾았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이다. 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졌지만 회복 속도는 더디다. 수혜자가 무주택자와 1주택 소유자로 한정되어 있는 데다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끄는 강남 3구가 제외된 탓이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가 완전히 꺾여버린 상태에서 8·29 부동산 대책이 뒤늦게 나왔기 때문에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부동산이 재테크 수단으로서 매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주택은 필수재인 만큼 내 집 마련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있을 뿐 아니라 개발 호재를 등에 업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기대되는 지역이 여전히 존재한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부동산 가격이 많이 하락한 지금이 오히려 투자 적기라고 말하는 부동산 전문가도 있다. 다만 과거에는 열이면 열 모두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면, 이제는 10명 가운데 세 명만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로 변했다. 투자 가치가 있는 곳을 선별해서 투자해야만 자산 증식에 성공할 수 있다. 부동산이 자산의 전부이던 시대 역시 지나갔다. 금융 투자와 부동산 투자가 적절히 조화된 포트폴리오를 짜야 제대로 된 노후 대책이 될 수 있다. <시사저널>은 부동산 전문가 10인에게 향후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은지 물어보았다.

‘실수요자에게 도움은 되겠지만 그 여파가 부동산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8·29 부동산 대책에 대한 부동산 전문가 10인의 전반적인 평가이다. 시장 반응도 뜨뜻미지근하다. 박상언 유앤알(U&R) 대표는 “8·29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열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세가 하락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를 얼어붙게 만든 것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아니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꺾여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4·23 대책 때 정부가 8·29 대책과 같은 강력한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았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다”라고 말했다. 또 부동산 시장은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데, 혜택 범위를 실수요자로 한정한 만큼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장인석 착한부동산투자연구소 대표는 “투자 수요자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양도세 감면 혜택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은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곳을 묶어둔 채 주변 지역을 풀어줘보았자 거래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시적이고 부분적인 대책이다”라고 평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정부가 지난해 9월 DTI 규제를 강남권에서 수도권 지역으로 확대하면서 촉발되었다. 한 달 뒤 DTI 규제를 제2 금융권까지 확대하면서 자금줄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이영진 닥터아파트연구소장은 이 모든 규제가 풀어져야 거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다만, 정부가 규제 완화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전영진 예스하우스 대표는 “정부가 규제 일변도에서 완화 정책으로 가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 번의 완화 정책으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시장은 동요 현상이 심하기 때문에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움직인다. 향후 2년 동안 완화 정책들이 한두 개 더 쌓이다가 갑자기 ‘펑’ 하고 과열 조짐을 보이게 될 수 있다. 그 시점이 2012년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리미리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 서울 강남 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시사저널 유장훈

실수요 있는 곳부터 활성화 기대

아직은 미미하지만 버블세븐 지역에서 가장 먼저 활성화의 신호탄이 터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가격이 많이 떨어졌던 서울 목동과 경기도 용인, 분당 등에서 실제로 거래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고점이었을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가격이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거래에 나서는 이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고 있는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외곽 지역에서는 거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대책이 기존 주택 소유자들의 거래 활성화를 돕기 위해 나왔기 때문이다. 또 서울에서 벗어난 인천, 경기도 지역에 대형 평수 아파트 위주로 공급된 탓에 실수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승호 부동산 인사이드 대표는 “실수요자 역시 투자를 염두에 두고 집을 산다. 1인 가구 증가로 대형 평수에 대한 수요가 급감한 데다가 수도권 외곽에는 교통을 비롯한 문화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기를 꺼린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투자 가치가 없어서 이 지역의 미분양 물량을 처리하기는 어렵다. 수요 예측에 실패한 건설사가 구조조정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일본은 기업이 돈을 벌면 모두 부동산을 샀다. 그러다가 갑자기 부동산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 폭락을 맞이해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 하지만 국내는 주로 개인이 부동산을 구입하고 있는데다가 정부가 DTI 규제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와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라고 단언했다. 

소형 주택과 수익형 부동산은 꾸준히 인기

국내 집값은 평균 연봉 대비 11배에 가깝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서는 아무리 비싸도 평균 연봉 대비 6~7배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강남 땅값이 너무 높기 때문에 평균 가격이 올라간 것이지 전체 지역이 모두 비싼 것은 아니다. 전문가 10인 가운데 다섯 명은 집값이 적당하다고 보았다. 강남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는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이 가격 역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양지영 내집마련정보사 팀장은 “부동산에는 적정 가격이라는 것이 없다. 수요가 있으면 그것이 적정 가격이다. 더욱이 강남 일대는 분명히 비싸지만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혜택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대접받는다든지 프리미엄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단순히 돈으로 따져서 계산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강남 일대가 비싼 것은 맞지만 앞으로 상승 여력 또한 충분한 곳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주상복합아파트 밀집 지역. ⓒ시사저널자료

이제는 부동산 투자를 하더라도 세밀하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전문가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부동산 거래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강남, 재개발 지역, 한강변 등 일부 지역만 투자 가치가 있을 뿐 서울 외곽 지역에서 가치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인구 감소와 1인 가구 증가로 소형 주택이나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의 전망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수익형 부동산은 고평가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수익 보장이라는 말만 듣고 선뜻 투자에 나섰다가는 손해 보기 십상이다. 김부성 부동산부테크연구소 대표는 “8억원을 투자해 상가 2채를 샀다가 현재 임대료도 받지 못하고 상가를 공실로 방치해둔 고객도 있다. 매달 대출 이자만 3백50만원이 나오는 실정이다. 수익형 부동산은 세밀하게 따져보아야 하는 만큼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우스 푸어’ 되었어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방법 있다

최근 필자에게 상담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 가운데 하우스 푸어(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9월3일, 사무실에 찾아온 40대 후반의 여성은 정부가 지난해 9월 꺼내든 총부채상환비율(DTI) 금융 규제의 칼날을 맞고 투자금 1억6천만원을 모두 날릴 위기에 놓였다.

그녀는 지난해 여름 수도권 주택 시장이 점점 달아오르자 고양 D지구 중·대형 아파트 2채를 계약금 7천만원을 내고 분양받았다. 곧이어 경기도 화성 동탄 신도시의 주상복합아파트 분양권을 9천만원을 내고 계약했다.

그녀는 이미 용산에 8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4억원의 대출을 받은 상태였다. 여기에 2개를 더 분양받으면서 3억5천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이자로 매달 3백30만원이 나갔다. 최근 집값이 떨어지고 부동산 거래가 끊어지면서 분양금 가격이 마이너스 프리미엄으로 일명 ‘금깡통 분양권’(계약 당시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분양권이 거래되면서 매수자에게 오히려 돈을 더 주고 팔아야 하는 분양권)이 되고 말았다. 투자금 1억6천만원을 모두 날리는 것은 물론 대출 이자를 갚기에도 급급해 하루하루 숨통이 조여온다고 했다. 전형적인 하우스 푸어이다.

해법은 간명하다. 일단 기존 주택이 두 채 이상이어서 한 채를 전세나 월세를 주고 있다면, 전세 만기 시점에 최근 많이 오른 전세금 인상분을 현금으로 받아 대출 이자와 대출 원금 등을 상환해 현금 흐름을 좋게 해야 한다. 1주택자라면 무조건 손절매하기보다는 집을 줄여가면서라도 보유주택을 전세를 주고 대출금을 일부라도 상환해 대출 압박에서 벗어나 시장이 회복세를 보일 때까지 좀 더 버텨야 한다. 대출 이자가 부담된다고 당장 처분하게 되면 고점에서 사서 저점에 파는 전형적인 투자 악순환을 자초하는 일이 벌어지고, 하우스 푸어에서 하우스리스 푸어(집도 없는 가난뱅이)나 전세 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또 기존 주택이 신규 분양받은 깡통 분양권보다 미래 가치가 더 있는 경우에는 새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기존 주택을 헐값에 팔기보다는 차라리 신규 분양받은 깡통 분양권이나 금깡통 분양권을 손절매하는 편이 손실이 적다. 무조건 새 아파트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버리고 입주를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또한 투자 가치가 낮거나 전혀 없는 지역과 물건을 계약했다면 차라리 중도금을 치르지 말고 계약금을 포기하는 편이 더 낫다.

 

 지금이 내 집 마련 적기…어디에서 어떤 집을 사야 하나

집값이 바닥이다. 부동산 전문가 10인 가운데 다섯 명의 의견이다. 올해 추석 이후나 내년 상반기에 바닥을 찍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다수가 지금이 최저점이라는 의견이다. 특히 전세 가격은 시간이 갈수록 오르고 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내 집 마련에 나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신혼부부들이 가장 쉽게 범하는 실수가 1억5천만원에서 2억원 정도 하는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것이다. 김부성 부동산부테크연구소 소장은 “전세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전세 대출은 내 집 마련 대출 이자보다 훨씬 비싸다. 평생 전세 대출금에 허덕이면서 살아가는 ‘전세 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당장 내 집 마련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거나 서울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고집하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전영진 예스하우스 대표는 “돈에 맞춰서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외곽에 있는 아파트를 사게 되면 부동산 가격 상승 효과를 전혀 볼 수 없다. 평생 출퇴근 교통대란에 시달리며 살게 된다. 차라리 눈을 낮춰서 서울 지역에 있는 빌라나 다세대주택을 사게 되면 투자 가치 측면에서 훨씬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도 전제 조건이 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계획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장인석 착한부동산투자연구소 대표는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가면 주택 재건축 정비 사업 계획안이 나와 있다. 20~30년 중·장기 계획을 보고 기본 계획 수립 단계에 있는 지역에 미리 들어가 있으면 싼 가격에 사서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라고 귀띔했다. 개발 호재가 가장 큰 곳은 한강변이다. 아직 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은 망원동과 자양동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환승역이 있는 합정동, 당산동, 양평동도 투자 가치가 충분한 지역이다. 전문가들은 또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미아동과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송파구 문정동도 괜찮은 투자 지역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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