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용의 전쟁’박근혜-김문수 대격돌
  • 감명국 기자·조진범 | 영남일보 정치팀장 ()
  • 승인 2010.09.1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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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대권 경쟁 구도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두 사람의 맞대결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서로 비슷한 스타일을 지닌 두 주자의 무기는 무엇이며 아킬레스건은 어떤 것인가.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하이라이트는 민주당 예비선거였다. 그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당초 강세는 힐러리 클린턴 쪽이었다. 그녀는 다른 당내 경쟁자들을 10~20%포인트 이상 멀찌감치 따돌리고 선두를 질주했다. 그녀가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가 관심사일 정도였다. 하지만 클린턴을 반대하는 민주당 세력은 경선을 클린턴 대 ‘반(反)클린턴’ 구도로 몰고 갔다. 반클린턴 진영에는 버락 오바마, 존 에드워즈, 존 케리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셋 중에 오바마의 지지율이 점점 오르면서 클린턴의 유력한 대항마로 떠오르자, 존 케리가 오바마 지지 선언을 했다. 뒤이어 존 에드워즈마저 오바마 지지 선언을 한 뒤에 후보를 사퇴했다. 결국 클린턴 대 오바마의 맞대결 구도로 가면서 분위기를 탄 오바마가 대역전에 성공했다. 이 기세로 결국 오바마는 본선에서 공화당 매케인 후보마저 간단히 꺾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난 9월8일 기자와 만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한 최측근 인사는 미국 민주당 예비선거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는 분명히 김지사를 오바마와 오버랩시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표는 클린턴과 맥이 닿을 터였다. 오바마와 클린턴의 숨막히는 경선은 당시 미국 전역을 흥분 속에 빠뜨렸다. 과연 2년 후 이 땅에서 김문수와 박근혜 사이에 그런 대결을 꿈꾸는 이 인사의 희망은 이루어질까.

확실히 분위기는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지금껏 여권의 ‘차기 대선 구도’를 말할 때 늘 ‘상수’는 박근혜 전 대표였다. ‘변수’가 항상 문제였다. 즉 ‘박근혜 대항마’들이 너무 유약했다. 처음에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섰으나,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결과적으로 변죽만 울리고 만 형국이 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계속 가능성을 보이고 있으나,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빈 공간을 지금 김문수 지사가 채우고 있다(22쪽, 24쪽 도표 참조). 여권의 차기 대권 구도가 결국 박근혜-김문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점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김지사의 대중적 지지율은 아직 박 전 대표를 크게 위협하거나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김지사가 상당한 ‘내공’이 있다”라는 한 친박계 핵심 인사의 표현처럼 김지사의 지지율은 지금 차곡차곡 기초를 다지며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히 정가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김문수 지사의 이름이 여의도 여기저기서 오르내리고 있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만난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인정한다. 지난 6월 지방선거가 분수령이었다. 그는 지방선거에서 현재 야권의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비교적 여유 있게 제쳤다.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뉴스가 되었다. 김지사 스스로도 달라진 위상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듯했다.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위해 김지사는 9월10일 오전 11시30분에 만나기로 했으나, 약속 시간에 30분 이상 늦었다. 직전에 국회에서 열린 ‘지방 행정 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안 대토론회’에 참석해서 기조연설을 했는데, 이 행사 역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지사는 “미처 예상 못했는데 박희태 국회의장, 김무성 원내대표 등이 다 나왔다. 무엇보다 기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왔더라. 행사 뒤에도 따라붙어서 따로 묻기도 하고. 전에는 안 그러더니, 언론의 변화가 제일 먼저 느껴진다”라고 웃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여권의 한 인사는 “얼마 전 한 보수 단체가 주최한 행사장에 갔는데, 행사가 끝난 후 거기 참석한 인사들이 일제히 김지사 자리에 와서 앞 다투기라도 하듯 깍듯이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달라졌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라고 전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김지사 공관을 찾는 서울 정치인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김지사의 한 최측근 인사는 “솔직히 요즘 주변에서 ‘무언가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들을 많이 듣는다. 조직이나 사무실 등을 말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도정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것도 적절한 것은 아닌 듯하다. 고민이다”라고 털어놓았다.

“김지사의 비전과 이재오 장관 조직 더해지면 상당한 파괴력”

친박계 인사들이 말하는 김지사의 강점은 ‘소탈함’과 ‘깨끗함’이다. 사람 자체가 서민적인 데다가 이권 개입이나 불법 같은 스캔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 낙마 등으로 인해 김지사의 이런 점은 더 돋보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김지사측 역시 비슷한 점을 꼽았다. “서민적 이미지, 정직함, 그리고 소신과 뚝심이다”라는 것이다. 김지사측의 한 관계자는 “TK(대구·경북) 출신이면서도 정치적 기반은 수도권에 두고 있고, 주변 참모에 호남 사람들이 더 많은 점도 장점으로 꼽힐 만하다”라고 덧붙였다. 김지사는 처가인 전남 순천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사 개인의 ‘비서실장’ 격인 허숭 경기도시공사 감사는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김지사를 많이 찾는 것은 사실이다. 오면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김지사 스타일상 자신이 먼저 나서서 막 찾고 그러지는 않는다”라고 말한다. 당내에서 김지사와 친한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김용태 의원은 “무모할 정도로 그는 (대통령에게나 어디나) 막 들이댄다. 그게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양반 스타일이 원래 그런 식이다. 당내에 비토 그룹은 없다. 반대로 충성파도, 조직도 없다. 본인이 그런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지를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는 “정치인 김문수가 대세를 타려면 시운(時運)과 조직인데, 시운은 모를 일이지만, 그는 조직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지사의 한 최측근 인사는 “김지사는 조직을 만들고 사람들을 관리하는, 그런 것을 못한다. 관심도 별로 없다. 우리들이 건의하면 ‘이봐, 요즘 지도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냐’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재오 장관은 탁월하다. 두 사람이 친하지만, 또 다르다. 김지사의 비전에 이재오의 조직이 더해지면 상당한 파괴력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라고 전망했다. 친박계측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도 바로 이런 구도이다. 이재오 장관이 스스로의 대권 꿈을 접고, 김지사를 밀어주기로 작심했을 경우이다.

김지사측의 한 관계자는 “이장관과 달리 김지사는 박 전 대표와도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우직하고 미련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 하고, 고집을 꺾지 않는 점에서는 박 전 대표와 상당히 닮은 점도 있다”라고 평가한다. 이 관계자는 “항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MB(이명박 대통령)도 김지사를 상당 부분 평가하는 측면이 있다”라며 일화 한 가지를 소개했다. 그는 “2006년 초 MB가 대권 준비를 할 때, 김지사를 먼저 찾았다.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MB가 보기에도 김지사가 사심 없이 일만 열심히 하고 부지런하고 하니까 자기 스타일에 맞았던 것이다. 그때 김지사가 진짜 고민 많이 했다. 우리 참모들이 강력히 경기도지사 출마를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당에 그냥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의 이재오와 같은 위치에 서 있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지사에게도 단점은 많이 지적된다. 투박하면서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직선적인 언행들은 늘 주변 참모들을 불안케 한다. 김지사와 친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2007년 한 재벌그룹 회장이 폭행 사건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을 때, 오직 김지사만 혼자서 이 회장을 옹호하고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니 왜 그러시느냐’고 했더니 ‘내가 경기도지사 하며 다녀보니까 콘도가 많은데 그중에서 그나마 제대로 하는 것은 그 재벌그룹에서 운영하는 콘도 하나더라. 그 콘도가 경기도 도민들 수천 명을 먹여살리는데, 다들 욕한다고 나까지 따라서 욕하지는 못하겠더라’라는 것이다. 이처럼 계산하지 않고 그냥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바로 해버리는 것이 때로는 정치인으로서 부적절하게 비칠 때도 있다”라고 밝혔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김지사에게서 가장 결정적인 핸디캡은 과거 좌파 운동권 전력이다. 한나라당의 대권 주자로 부각될수록 김지사는 이에 대해 철저한 검증에 시달릴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김지사측에서 말하는 박 전 대표의 단점 역시 ‘검증론’이다. 김지사의 한 측근은 “솔직히 박근혜 전 대표는 업무 능력 면에서 하나도 검증이 안 되었다. 뭐 검증될 만한 일을 했어야 검증을 하지 않겠나. 김무성 원내대표가 말한 대로 민주적 소양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우려도 있다. 마치 본인은 책임질 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뒤로 빠져 있기만 한 것이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그래도 박 전 대표는 여전히 말이 없다. 워낙 말이 없다 보니 추측만 무성하다. 그의 지지자들은 당연히 힘들다. 무언가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불안해한다.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도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말 큰일이다”라고 볼멘소리이다.

박 전 대표에 대한 국정원의 태도가 달라졌다?

‘박근혜 위기론’은 나름으로 근거가 있다. 지지율 추락과 함께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층인 보수층 표의 이탈을 심각하게 본다. 실제 한때 60%를 넘었던 보수층의 지지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권의 친박계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1차 관문은 전당대회에 있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아무리 1위라고 하지만,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지층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대권에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의 표를 다 합쳐도 34%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경선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이다. 위기 신호는 친박계 내부에서도 나왔다. 친박계 핵심으로 불렸던 김무성 원내대표와 진영 의원의 ‘탈박’ 선언이다. 특히 박 전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진의원의 이탈은 찝찝하다. 친박계 핵심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진의원의 이탈 조짐을 보고받고 직접 찾아가 의중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줌의 세력에 불과한 친박계가 외연을 확대하지는 못할망정 갈수록 쪼그라드는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지난 8월21일 청와대에서 이루어진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비공개 단독 회동을 ‘돌파구’로 여기는 시각도 많다.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국내외 경제 문제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의 회동 이후 국정원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예전과 달리 박 전 대표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국정원의 활동이 줄었다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 전 대표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하던 국정원의 분위기가 달라진 감이 있다. 박 전 대표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국정원과 박 전 대표측이 서로 기본적인 정보를 주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국정원과 박 전 대표측이 정보를 물물 교환한다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차기 대권 주자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박 전 대표로서도 결코 나쁠 것이 없다. 아직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가 높은 상태에서 관계 개선 노력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대권 행보는 자제하고 있지만, 결코 ‘대권 수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박 전 대표이다. 학자들의 연구 모임에 초청받아 공부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친박 인사는 “박 전 대표가 학자들과 비공개로 만나 견해를 주고받는다는 얘기는 파다하게 퍼져 있다. 최근에는 경제는 물론 취약 분야로 꼽히는 남북 문제나 외교에 대해 수업을 받는다는 소문을 들었다”라고 귀띔했다. 준비된 ‘국가 지도자’로 국민 앞에 나서겠다는 의지이다. 양측 관계자의 말처럼 서로 비슷한 스타일인 박 전 대표와 김지사, 이 두 ‘잠룡’이 때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나서기까지 장외 신경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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