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맞닥뜨린 젊음, 누굴 탓하는 게 좋을까
  • 전우영 | 충남대 심리학 교수 / 심리학의 힘P 저자 ()
  • 승인 2010.09.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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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을 통해 본 청년 실업자들의 태도

“그래도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혀.  거 테레비에서 보니까 그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응?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아유, 새끼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김광식 감독의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삼류 깡패 동철(박중훈)이 라면 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직도 취직 못한 ‘옆집 여자’ 세진(정유미)에게 건넨 말이다. 과연 세진이 취직을 못한 이유는 세진이 못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부가 잘못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이나 행동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찾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귀인(歸因)’이라고 한다. 원인을 어디로 돌릴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사람들이 귀인을 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능력이나 노력과 같은 개인의 내적 요인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고(내부 귀인), 다른 하나는 상황이나 환경 등과 같은 개인 외부의 요인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외부 귀인).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이 나쁜 이유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패를 내부 귀인하는 것이지만, 시험 문제가 나빴기 때문에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출제자라는 외부 요인에 자신의 실패를 귀인하는 것이다.

ⓒ honeypapa@naver.com

■ 국가나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다른 ‘귀인’ 방식

귀인에 대한 심리학 연구들에서 발견된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바로 <내 깡패 같은 애인>에 나오는 동철이의 주장처럼 귀인 방식이 국가나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부정적 사건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개인 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동철이의 말처럼, 취직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 또는 노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반해 서양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실패를 자기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삶이 곤경에 처하게 된 이유가 정부 정책의 실패나 세계 경기의 불황과 같은 상황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실패를 어떻게 귀인하느냐는 행복을 포함한 개인의 감정과 태도 그리고 이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귀인을 하는 것이 좋을까?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차례로 격파하고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를 만들었을 때, 이탈리아와 스페인 팀은 편파 판정 때문에 자신들이 억울하게 졌다고 집요하게 주장했다. 자신들의 실패를 자신들의 실력이나 노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심판의 편파 판정이라는 외적 요인에 귀인한 것이다. 심판의 편파 판정이라는 자신들이 통제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요인에 패배를 귀인하면 실패에 대한 책임감을 쉽게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심판 때문에 졌다고 귀인하는 것은 자신들의 실력이나 노력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외부 귀인은 패배 때문에 상처받은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자존감을 지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자기 발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지속적으로 편파 판정의 문제를 이슈화하던 이들에게 이렇게 한마디 했다. “지게 되면 집에 가야 한다. 집에 가서 거울을 보고 오늘 우리가 왜 결정적인 찬스를 골로 연결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히딩크의 발언은 편파판정의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어떤 귀인 양식이 개인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심판의 판정이라는 변화시키기 어렵고 변화에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외부 상황보다는 골 결정력이라는 개인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고 통제 가능한 자신의 내부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을 더 강하게 단련하는 사람이 다음 게임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실패의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자신을 단련하고 발전시키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귀인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선수들을 지도했던 외국인 지도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한국 선수들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삶의 태도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귀인 양식은 늘 우리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일까?

■ ‘내적 귀인’ 유도하는 문화가 몰아부친 청년 자살

얼마 전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1만5천4백13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하루 평균으로 따지면 약 42명이 자살로 사망한 것이다. 1999년 7천56명이던 것에 비하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고, 작년 1만2천8백58명에 비해서도 19.9%나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표준 인구 기준으로 환산한 자살 사망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8.4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낮았던 그리스(2.6명)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2003년 이후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 사망률 부분에서 계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20대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40.7%였고, 30대의 경우에도 28.7%로 가장 많은 사망 원인을 자살이 차지했다. 이들의 자살 동기는 염세나 비관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무엇이 20~30대의 청년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것일까?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세진은 능력과 노력 면에서 모자랄 것이 없음에도 그녀에게는 면접을 제대로 볼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취업 원서를 낸다는 것은 한 번 더 좌절을 맛보기로 결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지 않고 매번 반복되기만 한다. 이런 경우에 실패를 외부 상황이 아닌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과 같은 내적 요인에 귀인하는 것은 당사자의 자존감을 고갈시켜버리고 수치심을 증가시킨다. 수치심은 자살 시도를 증가시키는 주요 감정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세진이 처한 것과 같은 상황에서 실패에 대한 내부 귀인은 자기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파괴의 안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 자살에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할 것임에 분명하지만, 청년들로 하여금 실패를 개인의 무능과 노력 부족에 스스로 내적 귀인 하도록 유도하는 우리 문화도 청년 자살의 급증에 크게 기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처럼 개인의 노력이 너무나도 쉽게 좌절되는 시절에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삼류 깡패 동철의 귀인 방식이 삶의 끈을 놓지 않는 힘을 줄 수도 있다. 배우 박중훈의 목소리로 들어야 제 맛이지만 대사는 이렇다. “야, 너도 너 욕하고 그러지 마. 취직 안 된다고. 응?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어. 힘내 X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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