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 움켜쥔 한국 기업들
  • 상하이·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0.09.27 17: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굴삭기로 거침없이 뚫고, 초코파이로 녹이고…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은 이제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지난 2008년 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금융 위기 탓에 미국 경제는 아직까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미국 소비자들이 빚까지 내면서 써대는 바람에 세계 경제가 호황을 구가했다. 그런데 이제 세계 경제계는 미국 소비자가 지갑을 닫으면서 생긴 소비력의 공백을 중국 소비자가 채우기를 기대하고 있다. 해마다 두 자리에 육박하는 경제 성장률로 중국의 국민 소득과 위안화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숱한 난관 속에서도 13억명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을 뚫고 들어가 중국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있다. CJ오쇼핑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찾아볼 수 없던 홈쇼핑 사업 모델을 도입해 대박 신화를 만들어간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미국 캐터필라나 일본 고마쓰 같은 세계 최고 업체들을 물리치고 우위를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은 중국에서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르거나 1위를 넘보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의 활약상을 현지 취재했다. 시장에 진입할 때 겪어야 했던 난관과 성공 가도에 오르게 한 ‘진실의 순간’도 들었다. 아울러 중국 대륙을 누비는 현지 직원들을 만나 그들이 채택한 시장 진입과 경쟁 우위 전략은 무엇인지도 알아보았다.

ⓒDICC

중국 산둥 반도 끝자락에 있는 옌타이 시는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착륙 신호등이 켜질 정도로 가깝다. 명나라 시절 타국인들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세웠던 봉화대에서 비롯된 옌타이 시는 20년 전만 해도 작은 항구에 불과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옌타이에 법인 세 개와 공장 네 개를 세웠다. 중국 대륙을 개척할 전진기지를 옌타이에 구축한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굴삭기는 중국 대륙 곳곳에 팔려나가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세계 최고 건설 중장비업체인 일본 고마쓰와 경쟁하며 중국 내수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산하 두산공정기계(DICC)는 지난해 옌타이 공장에서 굴삭기 29기종 1만7천5백대와 지게차 41기종 7천대를 생산했다. 주력 제품은 굴삭기이다. 굴삭기는 땅을 파거나 깎을 때 사용되는 건설기계로 흔히 ‘포크레인’이라 불린다. 대당 가격이 1억원 안팎인 고가 제품이다. 중국 굴삭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4만8천대였던 시장 규모가 올해 9만5천대로 커졌다. 장윤조 두산인프라코어 건설기계 영업총괄 상무는 “당초 올해 건설기계 시장이 10~20%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94%나 커졌다. 이에 따라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판매 목표를 1만6천5백대에서 2만3천대로 상향 조정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세계 금융 위기로 촉발된 경기 침체에 대응하고자 4조 위안을 푼 것이 건설 장비 수요 폭발로 이어졌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3월부터 하루 24시간 생산 체제에 돌입했다. 정해익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공장을 설립한 이후 처음으로 하루 24시간 생산 체제에 돌입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밀려드는 주문량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 중국의 한 할인점에 오리온 초코파이 제품이 진열되어 고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오리온 중국

두산인프라코어가 중국에 일찍 진출한 고마쓰나 캐터필라를 제친 것은 기적에 가깝다. 시장 진입도 늦은 데다 브랜드 인지도나 품질 경쟁력에서 고마쓰나 캐터필라보다 뒤져 있었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시장 선두로 치고 나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할부 판매 전략이다. 고마쓰나 캐터필라는 자금력이 취약한 개인 고객에게 현금 판매를 고집했다. 이에 두산인프라코어는 1998년 중국 최초로 굴삭기 할부 판매를 도입했다. 고객 90% 이상이 자금력이 취약한 ‘개미군단’으로, 이들은 앞다투어 두산인프라코어 굴삭기를 할부로 구입했다. 이 덕분에 두산인프라코어 시장점유율은 13.8%에서 22.6%로 껑충 뛰었다.

할부 판매로 확보한 고객은 경쟁사보다 앞선 사후 관리 서비스(AS)로 관리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반경 1백50㎞ 지역은 해당 AS센터가 24시간 안에 커버한다’는 SAN150 전략을 채택했다. 앞으로는 24시간에서 1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속한 AS 체계는 고객만족도를 높였다. 지난 7년 동안 두산인프라코어가 고객만족도 1위 업체에 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지난 2003년 한 해 1만대를 생산·판매했던 것이 올해 3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8만대를 넘어섰다.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다 보니 성장통을 겪고 있다. 생산과 판매에서 질적으로 혁신이 필요한 시기에 이르렀다. 장윤조 상무는 “한 해 20대 정도 굴삭기를 팔던 전국 대리점들이 한 해 1천대를 파는 업체로 커졌다. 이제 현장 교육을 강화하고 조직을 재정비해 덩치에 걸맞은 생산·판매 체제를 갖추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조직 혁신을 통해 2014년 중국 굴삭기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휠로더 시장에서 톱5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중국 내 블루오션 찾아내 시장 창출하기도 

두산인프라코어가 기존 시장에서 진입해 시장 선점 업체를 추월한 것과 달리 CJ오쇼핑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찾아볼 수 없던 사업 모델과 시장을 창출했다. CJ오쇼핑은 지난 2004년 중국 제2의 미디어그룹 상하이미디어그룹과 합작해 둥팡CJ를 설립하며 홈쇼핑 채널을 열었다. 둥팡CJ는 지난 2월 상하이 4백50만 가구와 인근 우씨 1백20만 가구를 상대로 24시간 홈쇼핑 방송을 송출했다. 난징 1백80만 가구에는 하루 23시간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둥팡CJ 시청 가구 수는 8백만에 이른다. 개국 당시 상하이에서 하루 다섯 시간 방송했다. 2007년 저장 성 내 가흥·항주·상숙 같은 도시로 방송 지역을 확대하다 2008년 상하이 방송 시간을 13시간으로 늘렸다. 푸젠 성에서는 하루 3시간 방송을 시작했다. 김흥수 둥팡CJ 대표이사는 “2년 이상 철저하게 시장조사를 벌인 끝에 중국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높고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상하이 시장부터 진입한 것이 주효했다”라고 말했다.

흑자 전환은 예상보다 빨랐다. 지난 2006년 손익분기점을 돌파했고, 2007년에 매출액이 1천억원을 넘었다. 연평균 성장률이 78%에 이르렀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4천2백억원과 순이익 1백80억원을 거두었다. 지난 4월 24시간 채널 개설과 창업 6주년을 맞아 실시한 프로모션 기간에는 하루 매출 4백억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상하이 백화점 역대 최대 매출은 하루 2백10억원에 불과하다. 둥팡CJ는 지난 2008년 매출 기준으로 아콘 사에 이어 2위였으나 올해에는 중국 시장 1위 홈쇼핑업체로 올라섰다. “둥팡CJ의 활약에 힙입어 천천CJ와 인도 스타CJ가 아울러 성장하면서 CJ오쇼핑은 2013년에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한다. 김홍수 대표이사는 “등팡CJ는 2013년 아시아 최대 홈쇼핑 업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 매출이 50억위안에 근접하고 성장률도 유지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방송 범위를 늘리면 목표 달성이 가능하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 둥팡CJ는 지난 2월 중국 상하이에서 24시간 홈쇼핑 방송에 들어갔다. ⓒ둥팡 CJ

시장 진입 초기에는 물류 체계나 지불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아 사업을 확장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둥팡CJ는 전국 차원의 배송망을 구축하고 결제 시스템을 다양하게 갖추면서 성장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최근 사업이 지역이나 소득 계층 별로 확장하면서 둥팡CJ에게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지역이나 소득계층마다 격차가 심해 상하이와 다른 차별화 전략이 필요해졌다. 김흥수 대표이사는 “고객 수가 늘어나면서 지역이나 소득 계층 별로 찾는 상품이 다양해지고 있다. 품질이나 가격 측면에서 상품을 다양하게 갖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 소비자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업체는 제과업체 오리온이다. 오리온은 가장 성공한 중국 진출 사례로 손꼽힌다. 오리온은 지난 1997년 중국에 생산 시설을 설립했다. 당시 30억원이었던 한 해 매출이 올해 5천5백억원까지 늘어나면서 국내 매출액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조만간 국내 매출보다 중국 매출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3~4년 안에 중국에서 매출 1조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강기명 오리온 중국지사 총감은 “선택과 집중 전략이 주효했다”라고 말했다. 오리온은 제품이나 지역을 좁혀서 중국 시장에 진입했다. 초코파이 제품만 가지고 베이징 시장부터 공략했다. 초코파이가 베이징 시장에서 인기를 얻자 차츰 남쪽으로 시장을 확대해 상하이나 광쩌우에 진출했다.

현지화로 ‘또 하나의 내수시장’ 만들어 

초코파이가 시장점유율 85%를 차지하자 비스킷 제품인 하오뚜어(고래밥)를 출시했다. 하오뚜어는 중국 비스킷 시장 1위에 오르면서 6~7개 ‘짝퉁’ 브랜드까지 나왔다. 지난 2006년에는 베이징에 스낵 공장까지 완공하면서 스낵 시장에도 진입했다. 지난해 스낵 제품 매출만 6백억원이 넘었다. 지난해 말 광쩌우 공장까지 생산 시설을 확장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오리온에게도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현지 생산 시설을 갖추지 못했던 시기에 초코파이 제품에 곰팡이가 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다. 장마를 거치면서 중국 남부 지역 항구에 보관하던 초코파이 제품에 곰팡이가 생긴 것이다. 강기명 총감은 “당시 중국 딜러들이 (오리온이) 곰팡이가 생긴 제품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오리온은 초코파이 제품을 전량 회수해 소각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리온 경영진은 중국 현지 생산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현지 생산 시설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오리온에게 중국 시장은 또 하나의 내수 시장이다. 인구 13억명의 입은 오리온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오리온은 3년 안에 중국 매출 1조원을 기록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오리온은 실적 못지않게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 애쓴다. 강기명 총감은 “오리온은 중국 최대 종합식품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에서 최대이면, 세계 최대이다. 중국 시장에서 거둔 성공에 힘입어 글로벌 식품회사로 성장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중국 소비자의 가전과 자동차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정부도 민간 소비를 장려하고 있다. 올해 재정 지출 규모는 지난해보다 11.4% 늘어난 8조4천5백30억 위안으로 편성했다. 경기를 부양하고 내수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중국 정부는 소비 활성화 조처로 가전하향(家電下鄕)과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가전하향은 농촌 주민이 가전제품을 구입하면 정부가 보조하는 정책이다. 이구환신은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교체 구입하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가처분 소득이 늘고 정부까지 나서 농촌 주민이나 도시 임금노동자에게 돈을 주어가면서 가전제품과 자동차 구입을 독려하는 데 힘입어 중국 소비 시장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은 “소매 판매가 수년 동안 평균 17~18%씩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2015년에는 일본을, 2020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소비 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