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차별 판치는 사회의 ‘한국형 디알로’ 죽이기
  •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심리학의 힘p' 저자 ()
  • 승인 2010.10.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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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인 좌절 겪게 되면 ‘무기력 학습’ 따라 서서히 심리적 죽음에 이르러

아프리카 기니에서 미국의 뉴욕으로 이민 온 23살의 청년 아마도우 디알로(Amadou Diallo)는 좌판에서 비디오테이프·장갑·양말 같은 것을 팔았고, 남는 시간에는 대학에 입학하는 데 필요한 고등학교 학점을 따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자기가 살던 아파트로 가고 있던 디알로가 근처에서 잠복 근무 중이던 뉴욕경찰국(NYPD) 소속 경찰관 네 명의 눈에 띈 것은 1999년 2월4일의 일이었다. 경찰은 디알로의 인상 착의가 그 지역에서 약 1년 전에 벌어졌던 연쇄 강간 사건의 범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던 디알로에게 멈추라고 외쳤다. 경찰의 소리를 들은 디알로는 신분증이 들어 있는 자신의 지갑을 꺼내기 위해 재킷으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디알로의 삶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네 명의 경찰관들은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바로 디알로에게 총을 발사했다. 모두 41발을 퍼부었고, 그중에서 19발은 디알로의 몸에 박혀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검은색 피부의 청년을 그 자리에서 주검으로 만들어버렸다. 디알로는 당시 총기를 휴대하고 있지도 않았고, 과거에 범죄를 저질렀던 전력도 없었다. 단지 재킷에서 사각형의 검은색 지갑을 꺼내려고 했을 뿐이었다. 

‘아마도우 디알로’ 사건은 상대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이나 편견이 어떤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인종 간 갈등이나 경찰의 총기 사용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사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honeypapa@naver.com

취업 희망자에게 능력 보여줄 기회조차 주지 않아

“저…, 저한테는 질문 안 하셨는데요.”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면접을 보러 간 한세진(정유미)이, 면접관이 자기를 건너뛰고 다음 지원자에게 질문을 했을 때 어리둥절해하면서 했던 질문이다. 한세진의 이력서를 훑어본 면접관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다른 사람들 하고 나서 시간 남으면 그때 물어볼게요. 됐죠?”라고 답한다. 하지만 한세진에게는 결국 아무런 질문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면접에서 탈락하고 만다. 다음 회사 면접에서는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를 춤추면서 노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면접관들은 그녀의 어색한 춤과 노래에 비웃음으로 답했다. 면접에서 한세진에게는 업무와 관련된 질문 자체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노력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 한세진은 청춘을 다 바쳐 키워왔던 모든 꿈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간다.

한세진은 대학 4년간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았고, 토익 점수는 상위 3% 안에 들고, 석사학위와 관련 분야 자격증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유능한 청년이었다. 그녀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믿음을 가진 청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과 이력서에 새겨진 출신 대학이 서울 이외의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면접관들은 그녀의 희망에 차별의 총을 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마도우 디알로’ 사건과 같은 일들은 이런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력서에 나와 있는 성별이나 대학의 지역적 위치와 같은 몇 가지 단서만을 가지고 지원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몇 년간 밤을 새워가며 취업을 준비했던 지원자들을, 이미 내정된 사람을 뽑기 위해서 들러리로 만들어 좌절시켜버리기도 한다.

‘한국형 디알로’와 ‘미국형 디알로’는 각각의 사회가 실천하고 있는 편견과 차별의 치명적인 피해자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미국형 디알로’가 즉각 물리적인 죽음에 이르렀던 반면, ‘한국형 디알로’들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좌절 때문에 서서히 심리적인 죽음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의 학습된 무기력에 대한 연구는 한국형 디알로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인 죽음의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 있는 개 한 마리를 생각해보자. 이 우리는 한가운데를 칸막이로 막아서 둘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쉽게 우리의 한쪽 면에서 다른 쪽 면으로 뛰어넘어 갈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이 우리의 가장 큰 특징은 바닥에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가 원하면 두 면 중에 한쪽 면에 강한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만약 한쪽 면에서 평화를 즐기고 있던 개에게 강한 전기 충격을 주면, 놀란 개는 바로 칸막이를 뛰어넘어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문제는 개가 칸막이를 뛰어넘을 수 없도록 줄로 묶어놓을 때 발생한다. 줄에 묶인 상태에서 전기 충격을 주면, 처음에는 줄 때문에 칸막이를 뛰어넘을 수 없음에도 칸막이를 뛰어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칸막이를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칸막이를 넘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삶을 자신의 뜻과 노력에 따라 통제할 수 없어 우울증에 빠지기도

비극은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장애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헛수고라는 것이 명백해지면, 더 이상 전기 충격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하고 전기 충격을 담담히 견디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배를 깔고 엎드린 채로 전기 충격이 주어질 때마다 가끔 움찔거릴 뿐 일어서려고 하지도 않는다.

만약 이때 줄을 풀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놀라운 것은, 이제는 줄이 풀려서 마음만 먹으면 칸막이를 뛰어넘어 전기 충격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탈출할 수 있음에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좌절을 통해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 것이다. 셀리그만에 따르면 사람들의 경우에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뜻과 노력에 따라서 통제할 수 없다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되면,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우울증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청년 자살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는 심리적 증상이다. 우리 사회가 ‘한국형 디알로’들을 겨냥해서 쏜 편견과 차별은 이들을 일차적으로 좌절과 무기력이라는 심리적 죽음에 이르게 하고, 종국에는 스스로 물리적 죽음을 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청년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대책들은 다수가 개인의 우울증을 치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물론 이미 무기력을 학습한 청춘들을 우울의 방에서 꺼내, 다시 세상에 뛰어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가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편견과 차별이 지속적으로 청춘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 자살의 문제를 치료받아야 할 개인의 정신적 문제만으로 국한하는 것은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춘들을 우울의 방으로 몰아넣고 있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제거하기 위한 사회적·심리적 작업 없이는 청년 자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결국에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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