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이번엔 ‘관치’ 올까 ‘끙끙’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0.10.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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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분 당사자 세 사람 동반 퇴직 전망 우세해…불법 규모 크게 드러날 경우 사외 인사 영입할 수도

신한금융지주는 지금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 최고 은행이라는 자부심은 아침 햇살을 받은 이슬처럼 증발했다. 실적과 효율을 자랑하던 신한지주의 리더십은 실종되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7일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중징계 방침을 통보했다. 금융 기관 임원이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3~5년간 금융 기관의 임원을 할 수 없다. 라응찬 회장은 앞으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배임 수재 혐의로 직무정지 상태이다. 하지만 신사장의 업무를 대행할 임시 사장은 재일교포 주주들의 반대로 뽑지 못하고 있다.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선배(신사장)를 고발한 탓에 주주나 조직 내에서 신망을 잃었다. 재일교포 주주들은 이백순 행장을 상대로 직무정지 소송을 제기했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라응찬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려 한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2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신한 사태에 권력형 배후가 있지 않은가라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라회장을 이번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라회장 증인 채택을 반대하고 있어 라회장이 국정감사 증인석에 앉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더욱이 라회장은 국정감사 기간 동안 홍콩 투자자를 만난다는 이유로 외국에 장기 체류할 계획이다.

정치권은 신한 사태의 불똥이 정치권까지 튈 것을 걱정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 내역 또는 사용처가 불거지거나 라회장 연임 과정에서 정치권 비호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가능한 한 빨리 수습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견이 여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수습 절차 첫 단계 작업은 새 최고 경영진 인선이다. 금감원 조사나 검찰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내분 사태에 책임이 있는 라응찬 회장,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이 동반 퇴직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여권 내부에서는 신한지주 차기 최고 경영진 인사에 개입하려는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사내외 금융 전문가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새 경영진이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자 늘 그렇듯이 주식시장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신한지주 주가는 강하게 반등해 사태 발생 이전 가격을 회복했다. 

▲ 신한금융지주 차기 최고경영자로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오른쪽)과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왼쪽)이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

내부에선 이휴원 신한투자금융 사장 거론

신한지주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는 인사는 이휴원 신한투자금융 사장(57)이다. 이사장은 그룹 서열 4위이다.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경영 실적이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이사장은 신한은행 창립 주역으로 29년 근속했다. 지난해 2월 신한금융투자 사장에 취임해 그룹 내 자산 관리와 IB(투자은행) 영역을 키우고 있다. 이사장은 지난 2008년 IB담당 부행장을 맡고 있을 당시 무위험 자산이면서도 고수익 상품으로 분류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나 신용부도스와프(CDS)를 팔지 않았다. 세계 금융 위기 주범인 금융 파생상품에 손을 대지 않아 신한은행은 세계 금융 위기라는 직격탄에서 피할 수 있었다.

경력이나 실적 면에서 최고경영자로서 손색이 없으나 그가 차기 최고경영자로 떠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온 동지상고를 졸업했다는 점이다. 이사장이 1971년 졸업했으니 이대통령의 11년 후배이다. 고향도 이대통령과 같은 포항이다. 그러다 보니 이사장은 정권 실세 모임으로 알려진 영포회(영일·포항 지역 출신 모임)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은 신한지주 관계자는 “은행 내부에서는 외부 인사가 낙하산으로 떨어지기보다는 신한은행 창립 주역이고 경영 능력이 입증된 이휴원 사장을 차기 최고경영자로 반기는 분위기이다”라고 말했다. 

이휴원 사장에게 도전장을 내밀 만한 사내 인사로는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60)이 눈에 띈다. 경영 실적이나 위상이라는 측면에서 이재우 사장은 이휴원 사장에게 뒤지지 않는다. 이사장은 1982년 신한은행 개설 준비위원 자격으로 신한은행 창업을 주도했다.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일선 영업점에서부터 본사 부행장까지 요직을 두루 거친 전형적인 ‘신한맨’이다. 부실 카드사였던 LG카드를 인수해 지난해 순이익 8천5백68억원을 거둔 우량 업체로 탈바꿈시킨 이가 이재우 사장이다. 신한카드는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 5천억원을 돌파했다. 다만, 이재우 사장은 군산상고 출신으로 지역 연고나 지원 세력이라는 측면에서 이휴원 사장에게 뒤진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이휴원 사장의 지역 내지 학교 연고가 정치권에서 관치 금융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이재우 사장은 아무 연고가 없어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사외 인사 가운데 차기 최고경영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57)이다. 이철휘 전 사장은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고 지난 9월 초 출국해 일본 도쿄 근처 대학교 초빙교수 자격으로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

이철휘 전 사장은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이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소되자 지난 9월 초 돌연 금융위원회에 사표를 제출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이사장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에서 금융 석사학위를 받았다. 재무부 재직 시절 일본 대장성에 파견 근무했고, 주일 대사관 참사관을 지낸 적이 있어 일본통으로 알려졌다. 신한지주 재일교포 주주들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한다. 이 전 사장은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매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지난 10월7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한지주 CEO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데, 짜증이 나고 곤란하다. 당분간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만 전념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차기 경영진이 사내에서 선임될지 아니면 밖에서 영입될지는 금감원 조사와 검찰 수사 결과에 달려 있다. 기존 경영진은 신한지주를 탄탄한 은행 영업망과 독보적인 신용카드 사업 부문을 갖춘 국내 최고 금융 기관으로 키웠다.

여권 일각, 이번 기회에 ‘금융 장악’ 노린다?

이러한 신한지주의 내재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경영 안정성이나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사내 인사가 차기 최고경영자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금감원 조사나 검찰 수사 결과 신한은행이 저지른 불법 행위의 규모나 범위가 광범위하거나 불법 행위를 방지할 사내 감시 시스템이 부실하다고 밝혀지면, 사외 인사 영입이 유력해진다. 청와대나 기획재정부 일각에서는 이 기회를 활용해 KB금융지주에 이어 신한금융지주까지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신한지주 임직원들은 권력이 개입해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하나금융지주가 신한지주와 비슷한 내분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김승유 하나지주 회장(67)은 지난 1997년 하나은행장에 올라 2005년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거쳐 지금까지 13년 동안 집권하고 있다. 김승유 회장은 1943년생이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보다 다섯 살 어리다. 라회장을 제외하면 금융 기관 최고경영자 가운데 최고령이다. 최근 신한지주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내분 탓에 리더십 와해 사태까지 발생하자 하나지주 승계 과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주주 구성이나 최고경영자 후보군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지주는 신한지주와 비슷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지주 최대 주주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앤젤리카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로 하나지주 지분 9.62%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싱가포르 국유 펀드를 운영하는 테마섹홀딩스의 손자 회사이다. 테마섹은 금융·부동산·통신·에너지 분야에 장기 투자하고 시세 차익을 목표로 하는 순수 투자회사이기 때문에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 

▲ 김종열 하나금융지주 사장 ⓒ뉴시스

각각 8.66%와 8.19%를 보유한 GS데자쿠나 국민연금도 순수 투자 목적으로 하나지주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 1990년대 일개 시중 은행에 불과했던 하나은행을 국내 ‘빅4’ 금융지주사로 키운 전문 경영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김승유 회장과 함께 하나지주 이사회를 이끄는 상임이사는 김종열 하나지주 사장, 김정태 하나은행장, 석일현 감사위원이다. ‘넘버 2’를 다투는 이는 김종열 사장과 김정태 행장이다. 김종열 사장은 경영전략본부, 리스크관리본부, 경제연구소담당 부행장 같은 핵심 요직을 거쳐 지난 2005년 3대 하나은행장에 올랐다. 김정태 행장은 가계고객사업본부장과 지주 부사장을 거쳐 당시 하나대투증권 사장을 맡았다. 김종열 사장이 지난 2008년 하나지주 사장으로 승진하자 김정태 행장이 후임 하나은행장에 올랐다.

▲ 김정태 하나은행장 ⓒ연합뉴스

김사장과 김행장이 동갑내기인 데다가 회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탁월한 경영 실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다. 이 두 사람이 포스트 김승유 자리를 두고 다툼이라도 벌이게 되면 신한 사태의 하나지주 버전인 ‘하나 사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하나지주가 내부 단속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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