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용도 변경이 불구멍 열었다
  • 송진영│국제신문 기자 ()
  • 승인 2010.10.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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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화재, 외벽 마감재·해풍·통로식 구조가 불 키워…‘대형’ 건물에 ‘꼬마’ 소방 장비도 문제

지난 10월1일 화재가 발생한 부산 해운대구 우1동 마린시티(옛 수영만 매립지) 내 ‘우신골든스위트’는 지하 4층, 지상 38층짜리 동관과 서관 2개동으로 구성된 주거용 오피스텔(2백2실)이다. 2002년 분양에 들어가 2006년 7월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다. 황금색 외벽 마감재 때문에 ‘골든스위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처음 불이 난 곳은 이 건물 4층 미화원 탈의실이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중앙 계단 환풍 통로와 외벽을 타고 빠르게 번졌다. 외벽 패널을 타고 가면서 덩치를 키운 불길은 2개동을 연결하는 통로를 태운 뒤 곧바로 옥상으로 번져 스카이라운지와 펜트하우스를 전소시켰다. 4층에서 38층까지 불이 번지는 데 고작 10~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4층에서 연기가 치솟았고 소방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지 얼마 안 되어 옥상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미화원 탈의실 내의 전기적 문제로 인해 불이 났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초 목격자인 환경미화원이 미화원 탈의실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과 연기가 났다고 진술했으며, 탐문 수사를 통해 탈의실에 각종 전기 배선이 꽂혀 있었다는, 다른 사람의 진술도 확보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기적 요인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밀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인을 밝힐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10월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과 합동으로 발화 지점인 4층 배관실에서 정밀 감식 작업을 벌였다.

발화 지점인 4층은 배관실(피트층)로 건축법상 비워져 있어야 하는 공간이지만, 재활용품 집하장 및 미화원 탈의실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은 4층의 이같은 시설이 불법 무단 건축물인 것으로 가닥을 잡고 건축법 위반 여부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불이 난 4층 탈의실에는 선풍기 등 여러 가닥의 전선이 콘센트에 꽂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배관실에 사무용이나 주거용 공간을 두는 것은 건축물의 불법 용도 변경에 해당한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이후 골든스위트의 한 미화원으로부터 ‘탈의실 내부에는 옷장과 선풍기 한 대 그리고 폐지가 쌓여 있었다’라는 진술을 받았다. 현재 4층 자체가 불로 소실되어 미화원 등 관계자들의 진술 외에는 탈의실 구조 등 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 감식을 통해 탈의실 및 재활용품 집하장의 규모와 탈의실의 구조 등을 밝혀낸 다음에 건축법 위반 여부를 집중 수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부산 우신골든스위트 4층에서 합동 감식반이 남자 미화원 탈의실 주변에서 감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 점검에서 불량 판정받고도 조치 안 해

불이 난 건물은 또 지난해 말 실시된 소방 시설 종합 정밀 점검에서 ▷소화 설비 17건 ▷경보 설비 5건 ▷피난 설비 2건 ▷소화 활동 설비(승강기) 5건 등 모두 29건이 불량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이 건물 내 건축물에 대한 관할 구청의 감독 여부와 점검 이후 소방 당국의 후속 조치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관할 해운대구청은 “화재가 난 건물은 자체 점검 대상으로, 구청에서 이곳에 어떤 시설이 있었는지는 파악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 건물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알루미늄 판넬 안에는 보온재인 유리섬유를 부착하기 위한 접착제가 0.5㎜의 두께로 발라져 있었다. 소방 당국은 이 부분이 연소되면서 순식간에 불이 번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외벽에 고유한 색깔을 나타내기 위해 칠해진 특수 페인트도 불길이 확산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방 당국의 한 관계자는 “외벽에 인화성 물질이 있었고, 바람까지 불어 불길이 건물 최상층으로 급속히 번진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말했다.

▲ 우신골든스위트의 최상층으로 옮겨붙는 불을 끄려고 소방 헬기가 물을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다 소방 호스의 수압이 약해 100m가 넘는 이 건물 옥상까지 물을 끌어올리기가 힘들었고 계속되는 해풍도 불을 확산시켰다. 특히 이 건물은 쌍둥이 빌딩 형태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약 3m의 통로가 있는데, 해풍이 이를 지나면서 풍속이 빨라지고 상승 기류가 생겨난다. 결국 동백섬 바로 앞에 위치한 지리적 위치에다 불에 타기 쉬운 외벽 마감재와 강한 해풍, 건물 구조 3박자가 합쳐지면서 불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사정은 이렇지만 초고층 건물 입주자는 화재 발생 때 건물 밖으로 대피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 단전 조치로 승강기 이용이 전면 통제되는 데다 승강기 이동로가 불길과 화기(火氣)의 통로가 될 수 있어 위험천만이다. 이 때문에 스프링클러 등을 이용한 초기 진화에 실패할 경우 구조 작업 자체가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실제 이번 화재 때도 소방관들이 38층까지 걸어올라가 한 층씩 구조 작업을 벌이거나 진화에 나서야만 했다. 이번 화재 진압 과정에서도 드러났듯 고가 사다리차는 15층 이상 고층 건물의 화재 진화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특히 무인 용수 탑차, 고가 사다리차, 굴절 사다리차 등 부산시 소방본부가 보유하고 있는 고층 건물 화재 대비용 소방 장비가 총출동하는 등 부산 소방 당국의 역량이 총동원되었지만, 고가 사다리차는 최대한 들어올렸는데도 14~15층 이상의 불길을 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최상층에서 난 불은 소방 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높아지는 주거 시설 층수를 소방 장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부산시 소방본부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고층 건물 화재 진압 전담대’를 편성하고 이번 화재가 발생한 피트층을 비롯해 주차장 등 건물 내부에서 쓰레기를 분리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피트층과 주차장 등 건물 내부에 재활용품을 쌓아두는 것과 고층 아파트 발코니에 쓰레기 등 불에 타는 물건을 두는 행위도 금지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피트층을 소방 시설로 활용하고, 고층 건물 상층부와의 통신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지상 30층 이상에 무선통신 보조 장비를 설치하는 일을 추진할 예정이다.

정윤덕 부산시 소방본부 홍보팀장은 “이번 화재 진압 과정에서 고층·폐쇄 공간에 대한 진화와 인명 구조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실무적인 부분에서 건물 외장 재료를 불연 재료로 사용하는 등의 법 개정 문제까지 다양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불 난 오피스텔 지은 우신종합건설은 어떤 회사?

우신골든스위트를 시공·분양한 우신종합건설(주)은 부산 동구 범일2동에 본사를 둔 중견 건설사이다. 1968년 건설업 등록 면허를 받았고, 2010년 시공 능력 평가액이 3백55억원으로 부산에서 26위(전국 4백67위)를 기록했다.

우신종합건설은 2002년 7월 3.3㎡당 8백만~1천100만원 수준에서 우신골든스위트의 첫 분양을 했다가 분양 실적이 저조하자 2004년 5월 재분양을 하기도 했다. 우신종합건설의 강신택 회장이 펜트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오피스텔은 ▷2백18.97㎡(66평) 66실 ▷2백31.406㎡(70평) 66실 ▷2백63.46㎡(80평) 66실과 펜트하우스로 구성되어 있다.

매매가는 층과 방향에 따라 8억5천만~13억5천만원에서 거래된다. 부산 지역 최고급 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1층은 상가이고 2~3층은 헬스장·수영장·연회실을 갖춘 주민 편의시설이다. 5층부터 바닥 난방이 허용된 오피스텔이어서 사무용보다 주거용으로 분양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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