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의혹의 사나이’ 보호막 걷혀지는가
  • 감명국·김지영 기자 ()
  • 승인 2010.10.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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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올해 안에 검찰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내년, 내후년 국정 운영을 위해서도 두 사람을 털고 가야 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고, 한상률측 대리인이 검찰 고위직을 만난 정황이 포착되었다. 당초 수사에 미온적이었던 검찰 쪽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다.  

ⓒ시사저널 유장훈

집권 3년차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역대 정권마다 집권 전반기에는 국정 운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다가, 3년차에 접어들면서부터 서서히 그 후유증이 드러나면서 권력 내부에서 대형 게이트가 터져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레임덕을 초래하는 빌미가 되어왔다. 따라서 ‘사실상 정권의 임기는 5년이 아니라 2~3년이다’라는 말도 나온다.

학습 효과 탓에 이명박 정부도 이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에게 집권 3년차 증후군이니 조기 레임덕이니 하는 것은 없다. 두고 보라”라고 자신하는 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역설적으로 지금 이 문제에 상당히 예민해하고 있는 내부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집권 1년차인 2008년에 너무 많이 혼이 나서 그 후부터는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할 것만 남았다”라고 덧붙였다. 화근이 될 만한 것은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지난 8월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해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자 청와대에서 서둘러 임명을 철회한 것이나, 9월 유명환 외교부장관의 딸 특혜 논란이 일자 정부가 직접 감사에 나서며 전격적으로 사표를 수리한 것도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신속한 조치였다. 집권 3년차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청와대 주변에서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처리’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주목된다. 한 전 청장은 현 정부 집권 초반 국세청장을 지냈고, 천회장은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이 갖는 폭발력의 파장은 상당하다. 현재 한 전 청장은 민주당에 의해 수뢰 및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된 상태이다. 그는 지난해 3월 미국으로 떠난 뒤 지금까지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끊은 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천회장은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임천공업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의 핵심 관계자로 부각되고 있다(30쪽 기사 참조). 그 역시 현재 한 달 가까이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 청와대의 관계자는 “한상률 전 청장이나 천신일 회장이나 문제가 밝혀진다면 당연히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 ‘공정 사회’ 기조로 내년, 내후년까지 계속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털고 갈 것은 털고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정감사가 끝난 뒤 올 연말 안에 이들 두 사람이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 2008년 5월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세무서장 초청 만찬에서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드러나는 ‘한상률 귀국 임박’ 정황들

한 전 청장이 1년6개월이 넘게 사실상 잠적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데에는 현 정부와의 교감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의혹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천회장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세금 포탈 혐의로 현재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상태이지만, 뇌물 수수 혐의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대통령 친구’ 특혜 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임천공업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자 “이번은 그냥 넘기기 힘들 것 같다”라는 목소리가 여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자칫 이 둘을 껴안고 가려 하다가 집권 후반기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청와대의 위기감이 위에서 언급한 관계자의 말 속에서 전달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상률 전 청장의 귀국이 임박했다는 정황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여러 사정 당국 관계자들을 통해 포착되고 있다. 검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사정 기관의 한 간부는 지난 8월 말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검찰의 7월 인사가 끝난 직후인 지난 8월 초 한 전 청장의 대리인이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한 간부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한 전 청장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면담 내용’을 묻자 “더 이상은 말하기 곤란하다”라며 앞으로 지켜보면 안다는 식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한 전 청장의 대리인이 검찰측을 접촉했다는 정황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되었다. 지난 9월 초 세무 당국의 한 핵심 관계자는 “당시 한 전 청장의 대리인은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급 인사에게 ‘한 전 청장이 미국 생활을 무척 힘들어 하고 있으며, 체류 비용도 거의 없다. 그래서 3개월에서 6개월 안에 입국할 계획을 갖고 있다’라는 입국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이 검찰 인사는 ‘가급적 빨리 귀국해서 조사를 받는 편이 낫다’라며 귀국을 재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세청 수뇌부에서도 한 전 청장측과 검찰이 접촉했던 정황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말 국세청의 한 간부는 “이현동 국세청장 등 극소수 간부들은 한 전 청장측 대리인이 지난 8월 검찰 인사를 만나 귀국 시기 등에 대해 상의했다는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한 전 청장과 가까운 국세청의 또 다른 인사는 기자에게 되레 “한 전 청장이 언제쯤 귀국하는 것이 낫겠느냐”라고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이는 국세청에서도 한 전 청장의 귀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감 이후 천신일 회장도 귀국할 듯

‘한상률 귀국’이 비상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승진 인사 청탁을 위해 그림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아직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직결된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첫 단추를 끼운 국세청의 수장이었다는 점이 더 폭발력을 가진다. 그가 청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 7월부터 국세청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인’이었던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회사들에 대한 강도 높은 ‘특별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박회장이 2백억원대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적발한 국세청이, 같은 해 11월 박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시작되었다.

한 전 청장 재임 시절 국세청 안팎에서는 “한청장이 지나칠 정도로 현 정권의 눈치를 본다”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노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한 전 청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재신임을 받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강하게 벌였던 것도 자신의 자리 보전을 위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고가의 그림을 상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태에서 2008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의 동서 등과 골프 회동을 가졌던 사실을
<시사저널>이 특종 보도하면서 지난해 1월 청장직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그는 지난해 3월15일 느닷없이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 뉴욕 주립대학의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간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출국 시점이 공교롭게도 검찰이 박연차 게이트를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직전이어서 그의 출국을 놓고 “여권 핵심부의 ‘명령’에 따른 ‘기획 출국’이 아니냐”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전 청장은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과도 앙숙 관계에 있다(32쪽 기사 참조). 안 전 국장의 입은 현 정부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을 만큼의 ‘뇌관’이다. 그런 탓에 한 전 청장의 귀국은 자칫 이명박 정부의 후반기에 또 한 차례 소용돌이를 몰고 올 수도 있을 전망이다.

입국하면 한 전 청장은 검찰 조사부터 받아야 한다. 민주당이 지난해 6월 한상률·전군표 전 국세청장을 수뢰 및 직권 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한 전 청장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특정 기업(태광실업)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를 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국세청 차장이던 시절에 자신의 인사 청탁을 위해 직속 상관이었던 전군표 전 청장에게 값비싼 그림을 상납했다는 이른바 ‘그림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고발당한 상태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확 바뀐 검찰의 분위기이다. 최근 검찰 주변에서는 부쩍 한상률이라는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등 무언가 심상찮은 움직임이 느껴진다. 실제 지난 8월 초 한 전 청장 대리인과 서울중앙지검 간부가 만난 자리에서도 한 전 청장에 대한 수사 방향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세무 당국 관계자는 “당시 검찰 간부는 ‘한 전 청장이 입국하면 검찰 조사가 불가피하다. 나머지 조사는 모두 마무리되었으며, 한 전 청장 조사만 남아 있다’라고 했다. 이에 한 전 청장 대리인은 ‘한 전 청장이 그렇게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고 항변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5월28일 조찬 간담회에 앞서 천신일 회장 등 수행 경제인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윗선, 한상률 자료 챙겨라 지시했다”

최근에는 검찰이 ‘한상률 귀국’에 대비해 수시로 공항 출입국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9월 말부터 대검에서도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자료를 챙기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난 추석 직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무슨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위’(대검 간부)에서 아래 직원에게 ‘한상률 자료를 챙겨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막상 ‘한상률 대리인’과 면담한 것으로 지목된 서울중앙지검의 고위직 인사는 9월30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런 적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쪽(한 전 청장) 사람이 검찰과 접촉했다 해도 (한 전 청장 고발 사건) 담당 검사가 만나면 될 일이지, 굳이 내가 직접 나서서 그쪽을 만날 필요는 없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권력형 비리 수사에 대해 확연히 달라진 검찰의 분위기는 천신일 회장 관련 수사에서 더욱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지난 7월6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유임 로비 사건과 관련해 6월15일 검찰에서 관련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작성했다가 폐기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작성까지 한 영장을 왜 청구하지 않았는지 검찰은 그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다”라고 검찰을 상대로 공개 질의를 했다. 당시 강의원은 기자를 만나 “검찰 고위층 누군가로부터 실무진이 ‘영장을 청구하지 말아달라’는 외압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당시 검찰은 별다른 움직임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8월부터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이 사건 수사에 상당한 속도를 내고 있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천회장이 생각 없이 편하게 살아왔다”라고 말했다.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문제가 될 사안이 많이 있다는 뉘앙스였다.

이번 사건을 초기 단계부터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던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10월7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검찰이 처음부터 수사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검 수뇌부 한 인사가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청와대에 수사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안다. 검찰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왔고, 결국 서울중앙지검 주도하에 수사를 강행했다는 내부 제보를 받았다. 청와대가 최근 천회장 문제를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라고 뒤늦게 언급하고 나선 것도, 결국 검찰을 무조건 막기만 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권력의 속성에 그 누구보다 민감한 검찰의 움직임은 단연 ‘태풍의 눈’이다. 역대 정권의 집권 3년차 증후군도, 조기 레임덕도 그 진원지는 모두 검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현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는 한상률 전 청장과 천신일 회장을 바라보는 검찰의 시선이 최근 확연하게 차가워진 것은 이미 뭔가를 감지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추정을 낳고 있다. 검찰의 행보가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부쩍 서둘러진 것도 그렇다. “화근의 싹을 서둘러 자르겠다”라는 것이 청와대의 의도이지만, 그 의도대로 깔끔하게 잘려질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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