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 ‘삼바 경제’와 춤을…
  • 브라질·박일근│한국일보 산업부 차장 ()
  • 승인 2010.10.1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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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 전세계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끌 나라는 어디일까? 그 답은 브라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이 오는 2014년 브라질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6년 후에는 어디일까? 또 브라질이다. 2016년에 브라질 제2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다. 이미 브라질은 전세계 자금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것이 남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브라질 국채와 주식 시장에 외국인이 투자한 금액은 무려 3백80억 달러나 된다. 지난 9월 브라질 국영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기업공개(IPO)에는 7백억 달러(약 80조원)가 모였다.

▲ 브라질 상파울루 시내 중심가. ⓒ 박일근


경제도 안정적이다. 브라질은 1분기에 9.0%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호황이다. 2분기도 8.8%에 달했다. 브라질 정부는 올해 성장률이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브라질이 2014년에는 국민총생산(GDP) 기준 세계 5대 강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미 브라질 자동차 시장은 세계 4위(판매량 기준)를 달성했다.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헬기를 타고 백화점 옥상에 내린 뒤 쇼핑을 하는 ‘신 부유층’도 생겨나고 있다. 최고급 요트와 고가의 만년필, 럭셔리 스포츠카 등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 기업끼리 1, 2위 다투는 사례 늘어나

이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브라질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들은 어디일까? LG전자와 삼성전자, 현대차 등 한국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외국 전자업체들을 압도하며 브라질의 가전 및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을 장악했다. LG전자는 지난해 브라질에서 PDP TV(시장 점유율 70.8%), 모니터(33.0%), LCD TV(31.4%), 브라운관 TV(26.3%), 오디오(23.9%), 홈시어터(26.5%) 등에서 모두 정상을 지켰다. 삼성전자도 뒤지지 않는다. 브라질에서 삼성전자 휴대전화 단말기의 시장 점유율은 2008년 12%에서 지난해에는 20.0%로 올라 3위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는 34.7%까지 치솟으며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LG전자 각 제품군의 시장 점유율을 바짝 뒤쫓거나 추월하며 우리 기업끼리 1, 2위를 다투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브라질 상파울루의 강남으로 불리는 모룸비 지역의 쇼핑센터 등을 둘러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입점한 가전 유통 전문 업체 ‘패스트’ ‘프낙’ ‘폰토프리오’ 등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의 제품이 매장의 전면과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제품들은 찾기도 힘들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브라질에서 강한 것은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브라질에서 ‘엘리제’(LG의 브라질식 발음)로 불리며 국민 브랜드로 성공한 LG전자의 경우 1999년과 2002년 브라질이 각각 금융 위기와 환율 파동 사태로 어려울 때 철수하지 않은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당시 시장의 수요가 30% 이상 줄어들자 대부분의 외국 기업은 브라질 사업을 접거나 대폭 축소했다. 그러나 LG는 브라질의 성장성을 믿고 시장을 지켰다.

현지화한 제품들을 내놓은 것도 주효했다. 축구에 열광하는 브라질 소비자의 특성에 맞추어 경기를 자동 녹화해서 원하는 때 볼 수 있게 한 LG전자의 타임머신 TV는 대박을 터뜨렸다. 삼성전자도 브라질의 경제 성장 수준에 맞춘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신 중산층도 부담되지 않을 가격대의 고급 휴대전화 단말기인 ‘스타폰’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시장에서 물건이 팔리는 속도로 물건을 공급하는 ‘신 공급망 관리’는 숨은 경쟁력이다. 시장의 변화를 사실상 실시간 감지해 이를 공급망 및 판매망과 연결시켜 관리하는 것이 요체이다. 이렇게 되면 재고가 사라져 거래선의 만족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의 브라질 시장 점유율은 1분기 48%로 상승했다. LCD 모니터도 지난해 브라질 시장 점유율 41%를, 프린터 복합기는 38%를 기록했다.

▲ 상파울루 쇼핑 중심지인 모룸비의 삼성전자 전시장. ⓒ박일근종현

브라질 고속철 사업에 현대중공업 등 참여

흥미로운 것은 LG전자나 삼성전자 제품의 가격이 국내보다 두 배 이상 높은데도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는 데 있다. 현대·기아차도 마찬가지다. 높은 관세율에 따라 한국보다 50% 이상 비싸게 팔아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판다. 브라질에서는 무려 80개월 할부로 차를 사는 일이 일반화해 있다. 그만큼 브라질 신 중산층의 소비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실제로 브라질에서는 1주일 단위로 급여를 주는데, 금요일에 주급을 받으면 그 돈을 다 쓸 때까지는 아예 출근을 안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악착같이 돈을 벌기보다는 인생을 낙천적으로 즐기기를 선호하는 성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업으로서는 정말 매력적인 고객인 셈이다. 브라질 국민의 평균 나이가 28세라는 점도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이다. 이들이 경제 성장에 따라 소비를 늘리면 시장은 더 폭발할 수밖에 없다. 삼성과 LG가 비행기로 27시간이나 걸리는 지구 반대편에 생산 공장 등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삼성과 LG 외에 현대차, SK에너지, 동국제강, 효성 등도 브라질 시장을 공략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상파울루 북서쪽의 피라시카바 시에 6억 달러를 투자해 연산 10만대 규모의 생산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SK에너지는 브라질 BM-C-8·30·32 광구의 지분을 20~40% 확보해, 원유 및 가스 탐사를 하고 있다. 동국제강도 포르탈레자에 연산 6백만t 규모의 고로 제철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는 나미사 철광석 광산의 지분 40%를 인수했다. 효성은 브라질 남부에 연산 1만t 규모의 스판덱스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백억 달러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브라질 고속철 사업에 철도시설공단, 철도공사, 현대로템, 현대중공업이 참여해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 브라질 국영 에너지 회사인 페트로브라스가 심해 유전 개발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28척의 드릴십 입찰(2백20억~2백80억 달러)에도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이 도전장을 낸 상태이다. 유두영 삼성전자 중남미 총괄은 “브라질은 앞으로 10여 년간 1492년 크리스토퍼 콜롬부스가 신대륙(아메리카)을 발견한 뒤 처음으로 최대 경제 호황기를 맞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KOTRA 관계자도 “‘남반구의 중국’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이 이제 우리 기업들에게 무한한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라며 “지리적으로는 다소 멀고 위험 요인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상쇄할 매력도 큰 만큼 이제 브라질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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