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러시아인 ‘오감’ 사로잡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10.1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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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현대차·오리온·한국야쿠르트·롯데호텔 등 한국 기업들, 수출 넘어 현지 진출까지 ‘순항’

러시아에 ‘경제 한류’ 바람이 거세다. 러시아인들은 다소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한국 제품을 이용한다. 한국 담배를 즐기고, 한국 라면을 먹고, 한국 자동차를 타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과거 한국에서 일본산 제품을 사용하면 부러움을 샀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전자제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반을 넘어서면서 담배, 과자, 라면 등 식품은 물론 자동차, 백화점, 호텔 등 중·상류층을 겨냥한 특화된 분야에도 진출하고 있다. 수출로는 현지 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러시아에 공장을 짓는 대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가 해마다 10%씩 고속 성장하고 있는 데다가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만큼 투자하기에는 제격인 나라로 급부상하고 있다.

▲ 지난 10월8일 러시아 깔루가 주에서 열린 KT&G 러시아 공장 준공 기념 행사장을 러시아인들이 둘러보고 있다. ⓒ KT&G


러시아에서는 특히 여성들이 초슬림 담배인 ‘에쎄’를 즐겨 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길고 가느다란 여성의 손에 들린 초슬림 담배는 세련미를 더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KT&G가 처음으로 러시아에 진출하던 2002년만 해도 초슬림 담배를 찾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KT&G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여성 흡연자가 늘어나는 러시아의 변화에 주목했다. 이미 레귤러 고타르 시장은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틈새시장으로 초슬림 시장을 공략했고, KT&G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KT&G는 지난 10월8일 모스크바 인근 깔루가 주 보롭스크 지역에 담배 공장을 준공하면서 생산량 증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영진 KT&G 사장은 “3년 내 에쎄 브랜드를 초슬림 시장에서 1위로 만들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 초슬림 시장에서 브랜드 1위는 JTI사의 Glamour(글래머)로, 에쎄보다 연간 판매량이 1.7배 정도 많다. KT&G는 현지 공장 준공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다.

▲ 지난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 들어선 현대차 브랜드숍에서 러시아인들이 전시된 차들을 살펴보고 있다. ⓒ 현대차

‘물리지 않는’ 라면·초코파이의 인기

라면의 인기 역시 대단하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타보면 열차 여행객들 가운데 한국야쿠르트의 ‘도시락’ 라면을 먹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한국에서 대전역을 가면 ‘가락우동’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러시아인도 열차에서 도시락을 먹는 것이 열차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으로 인식되고 있다. 도시락이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는 사각 모양의 용기가 큰 몫을 했다. 사각형 용기가 안전성이 뛰어나다 보니 여행객이나 상인들이 바구니에 넣고 다니면서 출출할 때마다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고 남은 용기는 반찬 그릇이나 화분 등으로 재활용했다. 도시락이 수출되던 1986년 당시 러시아는 제조 산업이 발전하지 못해 용기가 귀했다. 저렴한 가격에 배를 채우고 이 용기를 재활용할 수 있어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이에 힘입어 한국야쿠르트는 2005년 모스크바 인근에 위치한 라메스코예시에 라면 공장을 준공했다. 그러고도 판매량을 감당할 수 없어 최근 리잔 지역에 제2 공장을 건설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CIS 지역총괄 안성범 과장은 “베트남에서 운영하던 라면 공장이 판매 부진으로 문을 닫자 한국야쿠르트가 곧장 이 공장을 사들여 제2 공장을 열었다. 러시아에서 도시락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야쿠르트는 라면 외에도 감자퓨레, 까샤(귀리죽), 불리온(스프)을 판매할 때에도 ‘도시락’이라는 브랜드를 넣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이승기 홍보 담당 직원은 “러시아에서는 한국야쿠르트 사명을 쓰지 않는다. ‘도시락’이 고급 브랜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도시락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도시락이 종합 식품 브랜드로 자리 잡도록 생산 제품을 다양화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초코파이 공장도 러시아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오리온이 2006년과 2008년에 러시아 현지에 초코파이 공장을 세운 데 이어 롯데제과도 지난 9월13일, 러시아 깔루가 주에 생산 공장을 세웠다. 지난해 오리온과 롯데제과가 초코파이 판매로 올린 매출액만 5백50억원에 달한다. 러시아 과자 시장은 약 12조원으로 초코파이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중소기업의 현지 진출, 정부가 적극 도와야

러시아 시장을 차지하려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의 경쟁 또한 치열하다.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를 가보면 전세계의 다양한 차종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대다수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현지에 진출해 있다. 이에 질세라 현대차가 지난 9월2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 생산 공장을 세웠다. 현지 생산을 할 경우 30%에 달하는 수입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할부 금융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현대차는 이런 이점을 최대한 살려 내년 1월부터 양산되는 ‘쏠라리스’로 소형차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푸틴 총리의 시승 행사를 통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거두었다. 이한기 현대자동차 홍보담당 직원은 “러시아 시장에서 현대차가 2004년부터 7년 연속 판매 선두권에 위치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IX35를 시작으로 브랜드 고급화 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롯데호텔은 서비스업으로 러시아에 진출했다. 지난 9월13일, 다국적 기업이 밀집해 있는 뉴알바트 거리에 롯데호텔모스크바가 들어섰다. 러시아인들은 ‘에따 러시아(이게 러시아야!)’를 툭툭 내뱉을 정도로 불친절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러시아인들에게 한국의 정을 내세운 친절 서비스로 고객 몰이를 한다는 계획이다. 개관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아 괄목할 만한 성과는 아직 없다. 하지만 2007년 개관 이후 적자에 허덕이던 롯데백화점 매출이 롯데호텔로 인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를 사로잡는 비결은 무엇일까. 국가브랜드위원회 김대희 수석전문위원은 한국 기업의 성실성과 친절함에서 인기 비결을 찾았다. 김위원은 “러시아 사람들은 다른 나라를 평가할 때 무엇보다도 그 나라 사람들의 인상을 본다. 일본이 기술력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것과 다르다.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친절하게 서비스하는 것을 좋게 평가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 제품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러시아에서는 회사가 진출할 때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많고 허가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도 많다. 현대차가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준비한 서류만 트럭 3대분이 넘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은 이런 부담을 떠안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럴 만한 여력이 없다. 안성범 코트라 CIS 지역총괄 과장은 “대기업들은 러시아에 진출하기 위해 모든 채비를 갖추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한 업체도 러시아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현실적인 투자가 이루어져 중소기업의 러시아 시장 진출을 적극 도울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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