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 후견’이 김정은 운명 가른다
  • 이승열│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0.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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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후계 체제 핵심으로 ‘좌영호·우룡해’ 급부상…‘혈통 후견’ 장성택과도 깊은 인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 김정은이 9월28일 당대표자대회에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됨으로써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북한의 후계 체제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이미 그 하루 전인 9월27일 고모인 김경희, 총참모장 리영호 등과 함께 북한군 대장이라는 군사 칭호까지 받음으로써 김정일 이후 선군 시대를 이끌어갈 후계자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김정은의 후계자 등극과 함께 ‘김정은 시대’를 이끌어나갈 북한의 엘리트 그룹도 그 면모를 드러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김정은과 리영호가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권력의 중심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노동당과 군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을 수 있는 곳으로 향후 군 지휘와 군사 정책을 총괄하는 기능 이외에, 김정은의 후계 체제에 필수적인 조직 체계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후계 체제 구축만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김위원장이 맡고 있는 국방위원회의 위세를 점차 능가할 것이다.  

▲ 지난 10월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대경축야회에 참석한 김정일·김정은(맨 왼쪽) 부자. 가운데가 리영호 총참모장이다. ⓒ연합뉴스


정권과 운명 같이하는 혁명 가계 출신

둘째는 김정은 시대의 측근 엘리트로서 군부의 리영호와 당의 최룡해가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리영호는 북한군의 군령을 책임지는 총참모장으로서 9월27일 김정은이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받은 날 인민군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했다. 그리고 당대표자대회에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되었다. 리영호가 군부 원로인 김영춘과 오극렬을 제치고 군부에서 60대의 젊은 실세로 등장한 것이다. 황북도당 책임비서인 최룡해는 9월27일 김정은과 같은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받았으며, 당대표자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비서국 비서, 당 중앙군사위 위원에 각각 임명되었다. 지방에서 단번에 중앙 무대로 화려하게 도약한 것이다. 이처럼 리영호와 최룡해가 이른바 ‘좌영호·우룡해’로 불릴 만큼 김정은 후계 체제를 비상시킬 수 있는 군부와 당의 양 날개로 결정되면서, 국내에서도 이들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리영호와 최룡해의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는 혁명 가계 출신이라는 점이다. 리영호의 부모인 리봉수와 김영숙은 모두 빨치산 출신으로 김일성과 김일성의 부인인 김정숙과 함께 빨치산 활동을 했다. 이후 리봉수는 김일성 체제의 핵심 인물로서 만경대혁명학원 원장, 인민군당위원회 검열위원장, 당 중앙검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체제 보위 세력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최룡해의 아버지인 최현 또한 빨치산 출신으로, 김일성보다 빨치산에 먼저 투신한 인물이면서 김일성의 절친한 동료였다. 최현은 이후 김일성 유일 체제 구축과 김정일 후계 체제를 구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그 공으로 체제 보위의 핵심인 인민무력부장을 지냈다. 최룡해는 최현의 둘째아들로서 리영호와 함께 혁명 가계 출신의 핵심 세력이다. 

리영호에게 빨치산 집안 출신이라는 배경은 체제 보위의 핵심 인물로 성장하는 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2007년 혁명수도 평양을 지키는 평양방어사령관(상장)에 임명되었고, 2009년에는 북한군의 군령을 총지휘하는 총참모장(대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1년7개월 만에 대장에서 차수로 초고속으로 진급했다. 현재 북한군 차수 10여 명 가운데 리영호는 60대로서 가장 젊은 세대이며, 리을설·오극렬·김영춘 등 1970~80년대 인물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리영호는 50~60대 신군부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최룡해 또한 빨치산 집안 출신이라는 점 말고도, 만경대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으로 김정일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1980년 노동당 청년전위조직인 사로청의 해외교양지도국장이라는 주요 보직을 맡으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1986년 사로청 위원장을 거쳐 최고인민회의 제8, 9기 대의원을 역임했다. 1989년에는 임수경 방북으로 유명한 제13차 평양세계학생축전 준비위원장으로 총책임을 맡았다. 1996년 사로청 제1부부장으로서 김정일 후계 체제를 선두에 서서 보좌한 최측근이었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막대한 외화를 착복하고 연회를 즐기다가 1998년 청년동맹 비리 혐의로 군 보위사령부의 표적이 되어 숙청되었다. 그러나 그의 출신 배경과 김정일의 특별한 배려로 2003년 노동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복권되어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로 있다가 이번 당대표자대회에서 김정은 체제 수호의 핵심 인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리영호와 최룡해의 급부상은 장성택·김경희 부부의 부상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김경희와 장성택이 김정은 체제를 수호하는 만경대와 백두의 혈통을 지키는 ‘혈통 후견’이라면, 리영호와 최룡해는 선군 시대 김정은의 선군 리더십을 수호하는 ‘선군 후견’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혈통 후견과 선군 후견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만경대와 백두의 혈통을 잇는 김정은의 정통성이며, 이 정통성의 핵심이 바로 핏줄인 것이다.

▲ 10월9일 새로 건설된 국립 연극극장 현지 지도에 나선 김정은(가운데). 이날 행사에는 최룡해(원 안)도 수행했다. ⓒ연합뉴스


‘선군 후견’ 세력, ‘혈통 후견’ 세력의 하위 구조

이번 당대표자대회에서 나타난 엘리트 구조의 또 다른 특징이 ‘혈통 후견’ 세력과 ‘선군 후견’ 세력과의 관계이다. 김정은 후계 체제의 양 날개인 리영호와 최룡해는 모두 혈통 후견인 장성택과 김경희의 하위 구조로 볼 수 있다. 이번 당대표자대회에서 장성택과 김경희는 혈통 세력의 핵심으로서 김경희는 김정은과 함께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았으며, 정치국 위원·당 경공업부장에 임명되었다. 장성택 또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체제 보위를 맡은 당 행정부장에 재임명되었다. 기존의 국방위 부위원장직과 함께 북한의 모든 권력 기구에 조직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장성택이 유일하게 맡지 않은 직책이 당 비서인데, 이 자리에는 장성택의 바로 밑인 문경덕 당 행정부부장이 당 비서로 들어갔다. 2004년 장성택 좌천의 계기가 되었던 박정순 당시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다시 정치국 후보위원 겸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했고, 박도춘과 박명철 등이 당 비서와 중앙위원에 다수 포진함으로써 혈통 후견인으로서 장성택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다.

김정은 체제의 두 축인 리영호와 최룡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장성택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리영호는 장성택과 만경대혁명학원 동문으로 장성택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최룡해 또한 그동안 장성택의 오른팔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당대표자대회에서 나타난 김정일의 의중은 ‘혈통 후견’의 핵심인 장성택과 김경희를 중심으로 ‘선군 후견’의 핵심인 리영호와 최룡해 등이 김정은 후계 체제를 안정적으로 보위해 김일성-김정일의 혁명 전통을 지켜내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운명은 김정일의 사후, 김정은 체제의 보위 세력인 장성택·김경희 부부와 그의 측근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는 북한 권력 체계에서 처음으로 권력 엘리트들이 수령과 후계자를 잇는 권력 이양의 결정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김정은 후계 체제의 미래가 불안정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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