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1천5백명이 뽑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 지워지지 않는 그 이름들 영웅으로 되살아오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0.10.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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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1·2위…상위 5위까지 고인들이 차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죽었다’. 한국 사회 전문가 10명 가운데 넷 이상이 이제 고인이 된 리더 다섯 명을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꼽았다. 조사 대상 42.2%가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김구 상해임시정부 주석, 김수환 전 추기경을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지목했다.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범인이 하지 못하는 업적을 이룬 이를 영웅이라고 일컫는다면, 고인 5명은 그 명칭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들이다. 다만 이미 역사적 소명을 다하고 업적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라는 과제를 남긴 이들이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 꼽힌 것은 아이러니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지혜나 재능이 뛰어나고 눈에 띄는 업적을 이룬 리더가 없다는 뜻일까. 한국 사회가 살아 있는 리더에서 우리 시대의 영웅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해 조사에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 박지성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축구 선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 3, 5위에 올랐다. 지난해 5월과 8월 각각 작고한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2위, 4위에 머물렀다. 지난 2008년 첫 조사에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와 축구 선수 박지성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상위 30위가 생존 인사로 채워졌다.

 올해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11.1%(1백67명)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노 전 대통령을 첫손에 꼽았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파워 엘리트 집단 출신이 아니다.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늦깎이로 합격해 변혁 운동가, 인권 변호사,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까지 올랐다. 자기 재능과 용기만으로 범인은 해낼 수 없는 업적을 성취한 것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2위에 머물렀던 노 전 대통령이 올해 1위에 오른 것은 자살이라는 행위 메시지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증폭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지난해 5백만명이 넘었던 조문 행렬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자서전은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전시되어 아직까지 팔리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업적이나 역사적 위상이라는 측면에서 노 전 대통령을 앞선다. 남북 화해, 노벨평화상 수상, 민주화 투쟁에서 김 전 대통령이 거둔 성취는 한국 현대사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9.5%)이 2위에 그친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아직까지 우리 시대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나 해석이 사회적 합의라는 형태로 어느 정도 정리된 것과 달리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진행 중이다. 또 노 전 대통령 측근 세력이 한국 정치의 한 축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가 이룬 정치적 업적에 대한 해석은 아직 진행 중이고, 그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정치적 과제는 ‘친노 세력’ 재등장과 함께 우리 시대의 정치 이슈로 여전히 유효하다.

ⓒ시사저널 이종현

생존 인물로는 안철수 교수가 최상위

3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9.2%)이 올랐다. 정치 노선이나 삶의 궤적이 반대편에 있는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2, 3위에 오른 것은 흥미롭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와 남북 화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거둔 것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은 경제 성장과 산업화 영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인물이 이루어낸 업적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다원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가난이냐, 성장이냐’라든지 ‘독재냐, 민주화냐’처럼 이원화된 가치 기준이 인물에 대한 평가를 지배하던 획일의 시대가 가고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을 다양한 잣대로 평가하는 다원화 사회로 한국 사회가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김구 상해임시정부 주석(6.4%)은 4위에 올랐다. 지난 2008년 첫 조사에서는 언급되지도 않다가 지난해 조사에서 16위에 올랐다. 서거 61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구 주석은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하고 있다. 상해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무장 항일 투쟁을 이끌면서 대한민국을 태평양 전쟁 승전국 지위에 오르게 한 업적은 김구 주석을 한 시대의 반짝 영웅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영원한 영웅’ 자리에 오르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5위(6.1%)에 올랐다. 그가 가진 것은 정치권력이나 위업이 아니라 도덕적 권위이다. 일생에서 보여준 희생과 나눔이라는 가치가 김추기경을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 자리하게 한 것이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14위에 그쳤으나 올해 5위까지 오른 것은 시간이 갈수록 그의 존재감이 커지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된다.  

이명박 대통령,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생존 인물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이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5.7%)이다. 6위에 오른 안교수는 20~30대 한국인에게는 멘토이자 스승이다. 의사, 교수, 컴퓨터 백신 개발자, 최고경영자라는 갖가지 직업에서 안교수가 선보인 도전 정신과 양심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유쾌한 자극이자 본받기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위에서 올해 6위로 떨어졌으나 안교수가 한국 IT산업에서 차지한 위상과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SBS 제공

2010 밴쿠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가 7위(4.9%)에 오른 것은 당연하다. 그는 세계의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랐다. 미국 뉴욕에 본부가 있는 여성스포츠재단은 지난 10월12일 김연아를 올해의 스포츠우먼 최종 후보에 올렸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인 한국에서 개인 역량과 투지로 일군 ‘세계 최고’라는 지위는 갖가지 소란과 잡음에도 불구하고 김연아를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 굳건히 자리하게 한다. 다만 2008년 1위, 지난해 6위에 이어 올해 7위로 순위는 점차 하락하는 추세이다. 김연아 선수와 함께 10위권에 든 운동선수는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박지성(3.4%)이다. 올해 조사에서 10위에 오른 박지성 선수는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10위권 안에 자리한다. 한국 축구의 미래들은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과 함께 뛰는 박선수를 지켜보면서 꿈을 키우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5위에서 밀려나 8위(4.9%)에 올랐다. 반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지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유엔 안팎에서 나오는 것이 순위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3.5%)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9위에 오른 잡스 회장은 지난해 26위에서 올해 처음 10위 안에 진입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혁신 제품을 잇달아 출시해 세계 IT 시장 판도를 뒤집은 잡스의 천재성에 매료된 것은 비단 한국인만이 아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스티브 잡스를 교주로 숭상하는 애플 마니아 집단이 생길 정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처음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대통령은 지난 두 차례 조사에서는 7위에 올랐다. 세종시 추진 좌절, 지방선거 패배 등 정치적 실패가 겹치면서 이미지가 실추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밖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2~15 위에 올랐다.  안중근 의사, 고 테레사 수녀, 고 법정 스님, 박찬호 야구 선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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