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와 젊은 검사의‘거침없이 하이킥’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10.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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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물>의 인기 분석 / 특권층에 대한 불신과 분노 반영

 

▲ SBS 드라마

SBS 드라마 <대물>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4회 만에 안정적인 20%대의 시청률을 구축했는데, 시청자들이 보내는 환호는 시청률 수치 그 이상이다. 이렇게 뜨거운 지지를 받는 드라마를 보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다. <대물> 열기로 인해 무려 1년 가까이 독주하던 KBS 수목드라마의 아성이 무너졌다.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도망자>가 <대물>에 눌려 기조차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에 한국인은 왜 <대물>에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대물>이 한국인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지금 특권층의 반칙·편법에 환멸에 가까운 불신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죄송합니다’ 청문회와 그에 대한 네티즌의 냉소는 바로 그런 불신과 분노를 상징하는 풍경이었다.

한국인은 최상류층들 간의 ‘짬짜미’를 의심하고, 그것을 밝혀내지 못하는 언론과 검찰에 분노한다. ‘떡검’이라는 단어는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언론과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불신, 기자에 대한 냉소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타블로 사태도 그렇다. 대다수 언론은 이것을 ‘정신병적 악플러들의 난동’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각은, 악플은 언제나 있었는데 왜 유독 타블로 관련 악플에 수많은 네티즌이 호응했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타블로에 대한 악플이 사회적 사태로까지 커진 이유는 사람들이 여기서 특권층 편법의 구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부유층이 자식을 외국에 보내 외국 국적과 해외 명문 학벌을 취득하게 한 다음, 한국에서 병역 등 한국인으로서의 의무는 다 하지 않으면서 누릴 것은 다 누리도록 하는 것에 대한 기왕의 분노가 타블로에게 투영된 것이 사태가 그렇게 커진 이유였다. 특권층은 자기들끼리 싸고돌면서 진실조차도 감춘다고 믿기 때문에, 언론이 사실을 보도해도 쉽게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불신과 분노가 가득한 사회. <대물>은 그런 사회를 쳤다.

추악한 한국 사회의 ‘속사정’도 까발려 ‘눈길’

특권의 반대말은 평등이다. 모두가 똑같은 시민으로서 법 앞에 평등하게 서고, 균등한 기회와 책임을 공유하는 사회. 우리 사회가 그렇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물>은 그것에 대한 분노를 터뜨려준다. 극 중에서 최고위층 권력자의 혐의를 잡은 말단 검사 권상우는 이렇게 포효한다. “지가 거물이래 봤자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한데.”

그는 그 권력자를 마치 일반인을 대하듯 심문한다. 최고 권력자들이 모이는 클럽을 그는 “여기가 뭔데? 술집 같은데?”라며 가볍게 무시한다. 현실에서는 없다고 생각되는 ‘원칙과 상식’을 온몸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시청자는 통쾌할 수밖에 없다. 극 중에서 선배 검사는 권상우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그가 대한민국 검찰의 위신을 살렸다며. 이것이 바로 서민의 마음이다.

<대물>이 그려주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추악하기 그지없다. 비리를 척결해야 할 전 대검 중수부장이 비리 정치인의 변호사로 일한다. 검찰 간부들은 비리 정치인의 수족 노릇을 한다. 여당에서 혁신을 주장하는 젊은 정치인은 기실 재벌과 결탁하고 있다. 극 중에서는 그 정치인이 하는 일이 ‘재벌의 돈을 지켜주고 불려주는 것’이라고 묘사되고 있다. 언론의 역할을 해야 할 방송은 광고 수입 때문에 자본의 눈치만을 본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회, 그렇게 권력과 금력과 언론과 검찰이 철옹성처럼 똘똘 뭉친 사회에서 서민은 철저히 소외된다.

여기에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아줌마’ 고현정이 나타난다. 그는 대통령에게, 방송 간부에게, 정치인에게, 검찰에게 호통친다. 서민의 고통을 보라고. 국민의 아픔을 헤아리라고. 고현정이 농민들과 함께 모기 지옥에 있을 때, 정치인과 재벌은 헬리콥터를 타고 위에서 그들을 굽어본다. <대물>은 고현정의 입을 빌어 그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구도이다.

한국인은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고 방치해왔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대물>은 이런 불만도 대변해준다. <대물> 열풍을 점화한 고현정의 바로 이 대사. “왜 구해주지 못했습니까! 우리는 대체 누굴 믿고 살아야 합니까!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나왔다.

한 아줌마와 젊은 검사가 기득권 구조를 흔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판타지이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지만 드라마에서만이라도 서민의 울화를 터뜨려주는 판타지. 그래서 서민들이 <대물>을 뜨겁게 사랑하게 된 것이다.

<대물> 작가가 교체되었다고 해서 외압 논란이 일었다. 아무리 제작사측이 PD와의 불화 때문이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뒤늦게 PD가 오히려 작가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 비판적인 대사를 집어넣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이번에는 PD 교체설이 나왔다. 그러자 사람들은 또 외압설을 제기하고 있다. 제작사측이 절대 아니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불신이다. 이런 불신이 클수록 <대물>처럼 그것을 뻥뻥 터뜨려주는 이야기가 인기를 끌게 된다.

<대물>은 서민의 답답함을 통쾌하게 풀어낸 이야기에 상업적 폭발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강력한 정치적 대사들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 PD의 전략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현재의 작가·PD 교체 논란을 딛고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서민의 울화를 풀어준다면 <대물>은 2010년 드라마계의 ‘대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현정과 권상우, ‘판타지 영웅’ 되고 ‘인생 역전’까지

고현정은 <대물> 열풍의 일등공신이다. 만약 다른 여배우가 했어도 ‘우린 대체 누굴 믿고 살아야 합니까!’라는 대사에 그처럼 절절한 힘이 실릴 수 있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고현정이라서 가능했다. 그녀는 발군의 연기력과 카리스마로 <대물>에 힘을 불어넣었다.

고현정은 또, 주부들에게 주목도가 높기 때문에 초반부터 안정된 시청률을 올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수혜자이기도 하다. <대물>을 통해 그녀의 위상은 최고조로 치솟고 있다.

또 하나, <대물>의 가장 큰 수혜자는 권상우라고 할 수 있다. 권상우는 네티즌에게 비호감의 대상이었다. 연기력도 인정받지 못했었다. 게다가 얼마 전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하차 압력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그는 <대물>을 통해 이 모든 악재를 날려버리고 있다. 서민의 속을 풀어주는 판타지 영웅 역할로 연기력도 인정받고 호감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물>은 그의 연기 인생에 중대한 전기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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