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병 걸려도 여성은 ‘남’다르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10.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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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 많아…‘예민해서’ 나타나는 증상 등 감안, 치료 달리해

김지훈씨(가명·43)는 2개월 전 목과 가슴 통증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위식도역류질환(GERD)이었고, 처방받은 치료제로 증상이 완화되었다. 주부 최민희씨(가명·48)도 비슷한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식도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통증은 잦아들지 않았다. 식도의 산도(pH) 검사를 받고서야 위식도역류질환을 발견했다.

남성 김씨와 여성 최씨는 모두 위식도역류질환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남녀 성별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이다. 식도와 위 사이에는 조임근(하부 식도 괄약근)이 있어서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드물지만 식사 후 위산이 역류한다. 침에는 위산을 중화시키는 중탄산이 있으므로 침을 삼키거나 식도의 연동 운동으로 위산은 다시 위로 내려간다. 그러나 조임근이 약해서 느슨해지면 위산이 역류해 위식도역류질환을 일으킨다. 대개 가슴 쓰림과 위산이 역류하는 증세를 느낀다.

이런 증세로 병원을 찾으면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내시경을 통해 식도에 염증이 생겼는지 확인하는 검사이다. 역류한 위산이 식도 부위에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 흔히 말하는 역류성 식도염(미란성 역류질환)이다.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의 10% 내외로 흔하며, 이 가운데 80%는 남성이다. 그러므로 남성은 내시경 검사를 통해 이 질환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여성에게서 심장질환 증상은 남성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사진은 한 여성이 운동 부하 검사로 심혈관질환 여부를 진단하는 모습. ⓒ시사저널 전영기

 
증상 비슷한데 다른 질병으로 판정 나기도

여성은 조금 다르다. 내시경으로 식도 부위를 들여다보아도 염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적은 양의 위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염증이 생기기 전부터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식도에 염증은 없지만 위산이 역류하는 병을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이라고 한다. 내시경 검사로 염증이 발견되지 않으니 신경성이라거나 다른 질환일 수 있다는 애매한 진단이 나온다.

정혜경 이대목동병원 성인지의학센터 소화기내과 교수는 “같은 병이라도 남성과 다른 증상을 보이는 것이 여성이다. 특별한 증상 같지도 않은 두통·현기증·가슴 통증·불면증·관절통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 신체화 증상(somatization)이라고 하는데 흔히 ‘예민해서’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그래서 여성은 뚜렷이 어디가 아프거나 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병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런 남녀 차이를 간과하면 정확하게 진단을 하는 것이 어렵다. 치료도 남녀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위식도역류질환을 치료할 경우, 남성은 염증 치료에 무게를 두어야 하므로 약을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 여성은 통증을 없애는 약을, 남성과 달리 단기간 복용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전혀 다른 질병으로 판정 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비뇨기계에 이상이 생기면 소변을 봐도 찜찜할 때가 있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개운하지 않은 경우이다. 또 소변이 자주 마렵거나 아랫배·불두덩 부위에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증상을 나타내는 질병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남성에게서는 전립선비대증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전립선비대증은 전립선이 커져서 방광 하부에 있는 소변이 나오는 통로를 막아 소변의 흐름이 감소한다.

여성에게서는 과민성 방광증후군이 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과민성 방광증후군은 방광의 감각 신경이 예민해져 소변이 자주 마렵고 참을 수 없는 요의를 느끼거나 소변을 흘리는 등의 증상을 말한다. 소변을 보는 일에 이상이 생기는 증상은 같지만, 그 원인은 남녀에 따라 다른 병이며 당연히 치료도 다르다.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성인지의학센터 비뇨기과 교수는 “소변을 쉽게 보지 못하거나 너무 자주 보는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자. 같은 증상이니까 동일한 약을 쓰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남성은 치료약이 잘 들어 증세가 호전되지만, 여성은 오히려 소변을 더 못 볼 수 있다. 남녀 특성에 따라 진료하지 않았다고 해서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더라도, 병을 방치하거나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여성에게 나타나는 뇌졸중 후유증 증상은 남성과 달리 둔하게 나타난다. 뇌졸중 후유증이 아닌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이를 소홀하게 여겨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을 키울 수도 있다”라며 성별 특성에 기반을 둔 진료를 강조했다.

성적 특성 연구하는 ‘성인지 의학’도 있어

▲ 한 여성 환자가 위식도역류질환을 확인하기 위해 식도 운동 검사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 전영기

진단이 정확해야 치료 시기를 명확하게 잡을 수 있다. 정확한 진단은 남녀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단이 부정확하고 치료 시기도 놓칠 수 있다. 호미로 막을 병을 가래로 막는 일이 생길 수 있는 셈이다. 심장질환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가슴에 통증이 생기는 이유는 심장질환·위장질환 등 다양하지만 남성이 흉통을 호소하며 병원 응급실을 찾으면 십중팔구는 심장질환 여부를 확인한다. 심근경색 등의 심장질환으로 돌연사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같은 심장질환이라도 여성에게서는 증상이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흉통도 흉통이지만 소화불량 증세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여성은 심장질환에 걸리는 비율이 남성보다 낮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심장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은 동맥경화증을 유발하는 나쁜 콜레스테롤과 좋은 콜레스테롤의 분비를 조절해 동맥경화증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폐경이 되면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면서 동맥경화와 같은 심장질환에 걸리기 쉬운 몸 상태가 된다. 이런 특성을 배제하는 경우가 있다. 여성 환자 자신은 물론 의사조차도 심장질환보다는 단순한 소화불량에 무게를 두고 검사하기도 한다.
 
성적 특성을 고려하는 의학을 통틀어 성인지 의학(gender specific medicine)이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학회까지 조직해 성별 차이에 따른 진료 지침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화의료원이 성인지의학센터를 설립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일부 대형 병원에는 여성 클리닉이 있지만 남녀 특성보다는 여성 질환을 중심으로 진료하는 곳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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