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 횡령 사건 경연장인가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10.2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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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금융 사고, 드러난 것만 2백76건에 5백36억원…올해 79억원 초대형 사건도 발생

 

▲ 농협중앙회 서울 본사 ⓒ시사저널 유장훈

해마다 국회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농민을 위한 조직’인 농협은 동네북 신세가 된다. 야당은 물론 여당으로부터도 ‘비리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10월8일 국회 농수산식품위원회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농협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 방만한 경영 등 여러 가지 지적이 잇따랐지만, 고객 돈을 빼돌리는 등의 ‘금융 사고’는 해마다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특히 농협 내부 직원이 돈을 횡령하는 사건은 이제 고질병이 되었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시사저널>은 2006년부터 지난 5년여 사이에 농협에서 발생한 금융 사고를 한데 모은 ‘횡령 및 금융 사고 현황’ 자료를 입수했다. 이 내부 자료에는 농협중앙회는 물론 일선 단위조합에서 일어난 금융 사고까지 모두 망라되어 있다. 그 실태는 심각했다. 고객이 믿고 맡긴 돈이 엉뚱한 곳으로 새나가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10월 초 농협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있었다. 농협중앙회 부산구포지점의 한 창구 직원이 3년6개월여에 걸쳐 무려 79억원을 횡령한 대형 사고가 터졌기 때문이다. 횡령 방식은 대담했다. 고객으로부터 다른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를 받아서 입금할 때 금액을 부풀린 것이다. 예를 들어 수표 10만원을 받고서는 100만원을 받은 것처럼 서류에 기재한 후 90만원을 챙기는 식이다. 이 직원은 이렇게 해서 하루 평균 9백30여 만원씩을 착복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금융계에 따르면, 다른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의 경우 해당 은행과 교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장부만 확인하면 당장 횡령 사실이 들통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루 이틀 정도 모르고 넘어갈 수는 있었겠지만, 3년 넘게 수십억 원이 빠져나가는데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농협은 공모자를 찾지 못했고 내부 관리 시스템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피해액은 이보다 적지만 고객 예금을 횡령하는 등 농협에서 발생한 금융 사고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하다. 지난 5년여 간 농협중앙회에서는 93건에 2백78억원, 일선 단위조합에서는 1백83건에 2백58억원에 이른다. 둘을 합하면 모두 2백76건에 5백36억원이나 된다. 이들 중 일부는 언론에 보도되어 외부에 알려졌지만, 내부 징계로 조용히 마무리된 경우도 적지 않다. 

 
공과금 유용·대출금 편취 등 유형도 다양

물론 금융 거래 비밀 보장 의무 위반 등 비교적 가벼운 사고도 있다. 하지만 고객 예금 및 시재금 횡령, 대출금 편취, 상품권 판매, 공과금 유용 등 다양한 유형의 금융 사고가 잇따랐다. 올해 들어 농협중앙회에서만 12건의 금융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관련 금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도 네 건이나 된다.

올해 일어난 대표적인 사고는 지난 3월 경기도 군포시지부에서 발생했다. 출납을 담당해 온 직원 ㅇ씨가 고객이 맡긴 1만원권 지폐 100매를 금고 안에 입금한 것처럼 전산 자료를 조작해 빼돌렸다. ㅇ씨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21차례에 걸쳐 모두 11억3천6백만원을 가로챘고, 결국 구속되었다. 이 밖에도 경기도 부천기업금융에서 9억9천만원의 대출금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또 전남 강진군청출장소에서는 5억2백만원의 공과금을 유용 및 횡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수법도 다양했다. 지난해 3월에는 수원 원천동지점에서 여신업무를 맡고 있던 ㄱ과장이 대출 서류를 위조해 32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는 대한주택공사(현 LH공사)에서 시행한 토지를 분양받아 그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신청한 것처럼 꾸몄다. 대한주택공사의 토지 건축 자금 대출 추천서와 단독 주택용지 분양계약서 등을 허위로 제출했고, 브로커를 통해 신용 상태가 좋은 이들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돈을 빼돌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인천 일신동지점에서 근무하던 ㅅ씨는 20여 개월 동안 고객의 정기 예금 및 펀드를 임의로 해지해 본인의 카드 대금으로 총 25회에 걸쳐 2억5천7백만원을 부당하게 사용했다.

상품권 판매 대금을 횡령한 경우도 있다. 전북 장수군지부에서 근무하던 ㅈ과장은 주식 투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2007년 9월부터 2008년 2월까지 5개월 간 농촌사랑상품권 판매 대금과 공무원 복지카드 포인트 대금 등 2억5천4백만원을 빼돌렸다. 서울 애오개역지점의 ㅇ과장은 주식 투자로 발생한 거액의 손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외화에 대한 내부 통제가 허술하다는 점을 이용해 2008년 3월부터 4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미화 3만7천2백 달러를 횡령했다.

이 밖에도 대구 성당지점에서 근무한 ㅇ과장은 2006년 9월부터 2008년 7월까지 고객의 실명 확인 증표와 인감이 날인된 전표 등을 확보한 후 고객의 예금과 신용보증기금 보증서 등을 담보로 무려 9억4천2백만원을 부당하게 대출받아 인터넷 게임과 신용카드 결제 대금 등으로 사용했다. 서울 강남구청역지점의 ㄱ과장도 고객이 맡겨놓은 통장과 인감으로 예금 신규 및 해지를 반복하면서 무려 13억4천8백만원의 고객 예금을 빼돌렸다.

최근 5년 동안 사고 관련 금액이 가장 큰 농협의 금융 사고는 2006년 6월에 적발된 서울 면목역지점 직원들의 횡령 사고였다.
<시사저널>이 이 사건을 특종 보도했는데 횡령 금액이 1백20억원에 달했고, 특히 정보 기관이 차명으로 관리해 오던 돈을 몰래 빼돌린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컸다. 당시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해당 직원들은 횡령한 돈을 주식 투자 등으로 대부분 날렸다.

일선 단위조합에서도 금융 사고가 빈번하다. 올해에만 24건이 발생했으며, 피해액도 15억9천100만원에 이른다. 2006년 58건에 8억5천2백만원, 2007년 32건에 87억7백만원, 2008년 25건에 22억3천만원, 2009년 44건에 1백24억6천100만원 등이다.

<시사저널>이 조사한 결과 2006년부터 현재까지 금융 사고로 해직된 직원이 농협중앙회에서만 54명이나 된다. 일선 단위조합의 경우 70여 명이 해직되었다. 정직·감봉·견책 등을 포함하면 징계를 받은 직원이 무려 4백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좀처럼 금융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결국 농협 내부의 감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농식품위 소속인 송훈석 의원(무소속)은 “농어촌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농협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고객 돈을 횡령하는 불미스러운 사고까지 빈발한데, 내부 감사를 강화하는 등 대대적인 자정 노력을 해 원래 설립 취지에 맞게 농민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해걸 의원(한나라당)도 “계속되는 지적에도 금융 사고가 끊이지 않아 농협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철저한 감독과 내부 감사 강화를 통해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국민의 예금 손실을 예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농협 관계자 "처벌·예방 시스템 갖추고 있다"

▲ 10월8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의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한편 농협중앙회는 감사실에서 내부 감사를 하고, 지역 단위 조합의 경우 조합 감사위원회에서 감사를 받는다. 정기 감사는 1~2년에 한 번 갖게 되며,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수시로 감사를 진행한다. 농협 관계자는 “각 지역 본부에도 감사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 지역 조합 감사를 하고, 도별로 교체 감사를 갖기도 한다. 금융 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감사를 강화하고 임직원 대상으로 윤리 교육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시중 은행의 경우 국정감사 대상이 아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금융 사고가 공개되지 않는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의 경우 전국에 사무소가 6천여 개에 이른다. 다른 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다 보니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고에 대한 처벌이나 예방 교육 시스템은 다른 은행보다 잘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왜 횡령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이번엔 ‘농약 가격’… ‘농심’ 울리는 농협

농협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초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농협에 과징금 45억원을 부과하자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농협이 농약 제조업체를 압박해 시중 농약 판매상들이 농약을 저가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농협이 농약 제조업체들과 일괄 구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중 농약 판매상들에게 농약을 계약 가격보다 싸게 팔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일정한 금액을 부담지우거나 농협이 판매하지 못한 재고품까지 강제 반품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농협은 국내 농약 유통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최대 수요처이다. 농약 이외에도 비료와 농자재 등을 농협중앙회에서 일괄 구매해 회원 조합을 통해 지역 농가에 팔고 있다. 이에 따라 농민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구매 방식이 오히려 농민들이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을 구매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측은 이에 대해 ‘불공정한 거래를 자율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괄 구매 계약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농협은 현재 공정위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제소를 해 놓은 상태이다. 농협 관계자는 “농약의 유통 시장은 주류나 화장품보다 더 혼란스럽다. 일부 판매상들이 고객을 유도하기 위해 덤핑 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서 농협에서 판매하지 않는 상품을 비싸게 팔아 이득을 남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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