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 색깔 빼내기’ 본격 나섰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11.0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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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 부회장, 취임과 동시에 권희원·박종석 부사장 중용…R&D 출신 우대가 인사 ‘핵심 코드’

 

▲ 권희원 LG전자 MC사업본부장ⓒLG전자 제공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연말 조직 개편과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으로 내부가 어수선하다. 빨리 정리되었으면 한다.” 기자가 최근에 만난 LG전자 내부 직원의 말이다. 그는 “구본준 부회장이 실적 부진의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회사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조직 개편 과정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도 있다”라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전초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LG전자는 지난 10월1일 권희원 부사장과 박종석 부사장을 각각 HE(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장과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 사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두 사업본부는 LG전자의 핵심 부서이면서도, 최근 실적이 좋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구본준 부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두 곳의 수장을 과감히 교체했다. 이에 따른 후속 인사가 조만간 단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조직이 술렁이고 있다. 회사 안팎에서는 남용 부회장 재직 시절 영입되었던 외부 인사들이 1순위로 거론된다. LG전자 출신의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남부회장은 조직 혁신 차원에서 외국인 경영진을 대거 영입했다. 이들과의 계약이 연말을 전후로 만료된다는 점에서 변화가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내부 승진자 대폭 늘릴 가능성

LG전자 내부에서는 그동안 외국인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본사 최고 경영진 여덟 명 가운데 여섯 명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LG전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도 마케팅 비용을 꾸준히 올렸다. 지난 2008년에는 세계 3대 스포츠 대회 중 하나인 F1을 공식 후원하면서 브랜드 상승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CMO(최고마케팅책임자)로 영입된 더모트 보든(Dermot Boden) 부사장의 역할이 컸다. HP 출신인 디디에 쉐네보(Didier Chenneveau) 부사장을 CSCO(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에 임명하면서 재고 회전율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내부 승진을 통해 임원에 오르기 때문에 충성심이 있다. 제조업체 특성상 충성심이 필요하다. LG전자는 외국인이 수장을 차지하다 보니 직원들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라고 지적했다. 직원 사기 진작 차원에서 내부 승진자를 대폭 늘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구부회장이 남용 전 부회장의 ‘색깔 빼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앞의 관계자는 “남 전 부회장은 주요 사업 전략을 맥킨지 등 외부 컨설팅업체에 맡겼다. 구본준 부회장 취임 이후에는 담당 사업 부서에서 대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LG전자측은 이번 본부장 인사가 ‘내부 승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세천 LG전자 홍보팀 부장은 “내부적으로 핵심 전략은 공유한 상태이다. 기존 전략을 유지하면서 강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본부장이 필요했다”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남용 전 부회장의 연속 선상에서 인사가 진행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는 이어 “이번 인사의 핵심은 4분기 영업이익 개선이 아니다. 수익 구조의 근본적 개선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과거 외국인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해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다고 경영에서 배제한다는 식의 판단은 이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남용식 경영’ 탈피와 대규모 인사 개편설이 여전히 회사 안팎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본부장에 오른 두 인사는 엔지니어 출신이다. 지난 1980년대 초 사원으로 출발해서 부사장에 오를 때까지 R&D(연구·개발) 업무를 주로 했다. 추진력도 뛰어나다는 평가이다. 권희원 부사장은 경쟁사인 소니를 제치고 LCD TV 시장 2위 달성을 이룬 주인공이다. 박종석 부사장 역시 PDP TV 경쟁의 핵심 인물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남용 부회장은 개발보다 마케팅에 치중해왔다. LG전자의 매출은 해마다 10% 안팎으로 올랐지만, R&D 투자는 3년간 동결되었다. 삼성전자가 매년 매출의 8~9%를 R&D에 투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까지도 스마트폰 사업을 위한 별도 조직도 없었다면 말 다한 것 아니냐. (구본준 부회장이) 현장에 정통한 엔지니어 출신 인사들을 통해 정면으로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계열사 간 전략적 협업’에 주안점

▲ 박종석 LG전자 HE사업본부장 ⓒLG전자 제공

구본준 부회장이 R&D 출신 인사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또 있다. LG전자의 경우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나 LG이노텍과의 유기적 관계가 중요하다. 이들 계열사와 협업 체계를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따라 매출이나 시장점유율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 3사는 그동안 적지 않게 삐걱거렸다. 김운호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한때 LG전자와 LG필립스LCD(LG디스플레이 전신)는 서로 다른 PDP와 LCD를 주력으로 밀면서 시장 주도권을 내준 적이 있다. 자사 수익 우선주의가 빚어낸 구조적인 문제였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에도 LG전자는 LG이노텍의 LED 공급 부족으로 제품 출하에 어려움을 겪었다. 구본준 부회장은 계열사 간 전략적 협업 부족 문제를 타개할 인물로 R&D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구본준호의 ‘젊은 피’들은 표류하는 LG전자를 정상화시킬 수 있을까.

LG전자가 적자의 늪에 빠져들었다. 올해 3분기 영업손실액은 1천8백52억원으로 2007년 이후 처음이다. 스마트폰 시장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휴대전화 사업에서만 3천3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분기에는 1천억원 수준이던 적자가 3천억원대로 늘어났다. 스마트폰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투자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4분기 역시 적자가 예상된다. LG전자의 수장을 맡은 구본준 부회장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구부회장이 꺼내들 비장의 카드는 없다. 다만 ‘0’에서 시작하기 위해 재고를 털어내는 작업부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김갑호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재고를 갖고 있으면 내년이 더 어려워진다. 가격을 대폭 내려서라도 재고를 털어내려고 할 것이다. 4분기 적자는 5천억원 수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4분기 적자 폭이 크면 클수록 흑자로 전환하는 시기는 빨라질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구부회장이 과실을 빨리 따먹을 수 있다고 판단한 사업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이다. LCD 등 장치 산업 경영을 잘했던 자신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승부를 걸 것으로 보인다. 구부회장은 이미 수차례 LG디스플레이를 찾아 OLED 개발과 투자 상황을 점검했다.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의 협조도 약속받았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과 비교했을 때 아몰레드 기술 수준이 많이 뒤처져 있다. 게다가 8세대 아몰레드를 개발하려면 투자비가 4조원이나 든다. 성장통이 있을 것이다.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투자만 하고 손 털고 나올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성장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이승혁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태양광과 LED 조명 사업을 시작했다. LG전자 전체 매출에서 1% 정도를 차지한다. 이 비중을 대폭 높여 성장 동력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오너 일가라서 눈치 안 보고 장기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관건은 휴대전화 단말기 사업이다. 보급형 스마트폰으로 출시한 옵티머스 Q와 Z 모두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나온 옵티머스원 역시 반응이 좋지 않다. 곧 출시하는 옵티머스7은 윈도7을 탑재한다고 하지만, 이미 안드로이드와 애플에 적응한 소비자들을 빼내오기가 쉽지 않다. 스마트폰 풀라인업이 갖추어지는 내년 상반기의 소비자 반응에 따라 LG전자의 회생 여부가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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