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인재’ 자존심을 세우다
  • 이춘삼│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1.0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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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 인맥 지도 | 경북대 vs 영남대

 

▲ 경북대학교 ⓒ경북대 제공

‘대구·경북(TK)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교’ 하면 경북대, ‘경북대’ 하면 의과대학이 떠오른다. 경북대 연혁을 일별해 보면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북대학교는 지역의 수재들이 앞다투어 몸담은 대구사범(1926년 설립)과 대구의대(1932년 설립), 대구농대(1944년 설립)를 모체로 하여 1951년 국립 종합대학으로 발족한 이 지역 최고의 고등 교육 기관이다. 출범 당시에는 흡수 통합된 기존의 사범대, 의과대, 농과대를 중심으로 문리대, 법정대를 신설해 5개 단과대학 규모로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현재는 10개 대학원, 13개 대학, 11개 학부, 80개 학과로 몸집이 불어났다. 경북대에는 여러 연구소와 부속 기관이 있으며, 훌륭한 의료진을 갖춘 의대 부속병원과 보건진료소는 지역민들의 질병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지역에 1967년 12월16일 또 하나의 명문 사학이 새로이 등장했다. 영남대학교가 그것이다. 대구대(1947년 설립)와 청구대(1950년 설립)를 합병해 탄생한 영남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짧은 시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영남이 배출한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 이념을 법인과 학교의 교육 정신으로 삼아…’ ‘박정희씨를 우리 법인과 학교의 최고 지도자, 교주로 모시고 그 지도에 따를 것을 결의…’라는 대목이 들어 있는 합병 결의문에서 알 수 있듯이 박 전 대통령과 영남대의 관계는 각별한 것이었다.

경북대 의대 출신 약진 두드러져

두 대학은 시대 상황에 따른 부침을 겪으면서도 지역 사회, 나아가 국가의 동량을 길러내기에 모자람이 없는 기능을 수행해왔다. 편의상 이번 호에서는 경북대 출신들의 면면을 알아 보도록 하고, 영남대 출신 인물들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경북대 의대가 우세했던 이유는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이 앞다투어 진학했던 데 있다. 법학이나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공자는 사회에 진출할 때 인맥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는 편이라서 서울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의학 전공자는 상대적으로 그런 측면이 약하기 때문에 굳이 서울행을 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으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연유로 경북대 의대는 전통적으로 전국 어느 의과대학에도 뒤지지 않는 명성을 유지해왔다. 매스컴과 집필을 통해 대중에 친숙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요즘은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휴양 시설인 힐리언스 선(仙)마을의 촌장을 맡아 방문객들을 맞는다. 그는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이라는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의 전신)을 18년 동안 맡아 운영했고 말년에 이 병원 명예이사장으로 있다가 은퇴한 조운해 박사는,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맏사위이다. 이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부인이다. 이들이 모두 경북대 의대 출신이다.

이들 말고도 경북대 의대를 나온 많은 의료인이 폭넓게 도규계(刀圭界)에 포진해 있다. 김법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원장, 김성구 순천향대 서울병원장, 김오룡 영남대병원장, 김용진 영남대 영천병원장, 민병우 파티마병원 의무원장, 박대팔 대구보훈병원장, 박시균 성누가병원 이사장, 배상도 마산삼성병원장, 손수상 계명대 동산의료원장, 유형우 파티마여성병원장, 장태수 마산 연세병원장, 조영래 경북대병원장 등 병원장급 자리에 여러 명이 있다.

큰 그림자 남긴 정계 거물 김윤환 전 의원

동문 중에는 김선호 동인교육재단 이사장, 전재규 대신대 총장, 함인석 경북대 총장처럼 학사 행정의 정점(頂点)에서 학교를 이끌어가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다 최근 의대 교수 두 사람이 잇달아 큰 상을 수상해 더욱 고무된 바 있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장을 맡고 있는 김인산 교수와 폐암 치료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박재용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김교수가 받은 ‘분쉬 의학상’과 박교수가 받은 ‘화의자 의학상’은 각각 기초와 임상 분야에서 의학 발전에 기여한 연구 업적을 쌓은 의학자에게 주어지는,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경북대 출신 정치인으로 본명보다 ‘허주(虛舟)’라는 아호로 더 자주 불렸던 고 김윤환 의원이 있다. 25년간의 정치 역정을 헤쳐나가면서 그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3대 정권에 걸쳐 권력의 중심에 머물렀고,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해내는 탁월한 정치력으로 2대에 걸쳐 킹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숱한 일화를 남겼다. 언론인 생활을 접고 정계에 발을 디딘 후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집권 여당 사무총장 두 차례, 원내총무 두 차례, 정무장관 세 차례, 여당대표 두 차례를 지내는 등 화려한 정치 인생을 살았다.

현 18대 국회에서는 김성조·송영선·이철우 의원이 경북대 출신으로 여의도에 진출해 있다. 도의원 경험을 발판으로 국회 진출에 성공해 3선을 기록한 김성조 의원은 16대 총선 당시 구미 선거구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TK 세력의 대부 김윤환 후보를 무너뜨리고 처음 여의도 무대를 밟았다. 비례대표로 2선을 기록한 송영선 의원은 최초의 여성 국방안보 전문가이다. 경북대 재학 시절 여학생회장을 했고,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국방정책실장과 안보정책실장을 지냈다. 이철우 의원은 18대 국회 전반에 초선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정보위원회에 소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간사까지 맡았다. 18대 국회 유일의 국정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1985년 공채로 국정원에 들어가 20년간 근무한 정보통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군수 선거에서 무소속의 김문오 후보가 박대표의 지지를 받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이변에 속한다.

관계(官界)에서는 지난 10월 있었던 차관급 인사에서 동문 4명이 기용되어 눈길을 끌었다. 류성걸 기획재정부 2차관, 김재수 농수산식품부 1차관, 최원영 보건복지부 차관, 김희국 국토해양부 2차관이 그 주인공이다. 이 중 류성걸·김재수·김희국 차관은 경북고-경북대 동문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대구농대의 후예답게 농업 분야에서도 뛰어난 인물이 다수 배출되었다.

‘옥수수 박사(Dr. Corn)’로 유명한 김순권 경북대 석좌교수. 젊은 시절 국내 대표 품종인 ‘수원 19호’를 개발한 김교수는 열사의 땅 아프리카에서 17년 동안 수퍼 옥수수를 보급해 기근 퇴치에 기여했다. 최근에는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과 저개발 국가를 위해 애를 많이 썼다. “40여 년 동안 옥수수에 미쳐 지냈다”라는 평을 듣는 그는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교잡 실험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간의 노력으로 녹조근정훈장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나라 안팎에서 굵직한 상을 30여 차례 받았다. 김교수는 아프리카 중서부 4억 인구의 식량난 해결에 기여한 공로 등으로 노벨 평화상과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다섯 차례나 추천되기도 했다.

동문 언론인회, ‘자랑스러운 언론인상’ 시상

백세주를 비롯해 한국 민속주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배상면주가의 배회장은 80대 중반의 고령에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농사짓는 사람이 제대로 된 술을 만들 수 있게 하려면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배회장 슬하의 3남매도 모두 주류 산업에 뛰어들어 그야말로 양조 일가를 이루었다. 장남 배중호 사장은 국순당을, 차남인 배영호 사장은 배상면주가를, 딸 배혜정씨는 배혜정누룩도가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법조계의 고위직 인사로는 구욱서 서울고등법원장과 김창종 대구고법 수석부장판사가 있다. 구원장은 서울고법 부장판사-서울남부지법원장-대전고법원장을 거쳤다. 여성 군 법무관으로 대령 계급장을 단 이은수 육군 고등검찰부 부장도 경북대 출신이다. 1990년 9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한 그는 사단 법무참모, 육군종합행정학교 교관, 육본 법무감실 송무과장을 거쳐 2005년 군에서 처음으로 여성 군사법원장(중령)으로 진급했다. 이어 2작전사령부 법무참모(대령)가 되었고, 지난해 말 현재의 육군 고등검찰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북대 언론인회(경언회·회장 강동균 MBC 국장)가 지난해 말 창립 1주년을 맞아 ‘자랑스러운 경북대 언론인상’ 시상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도성진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편집위원실장, 백영철 세계일보 논설실장, 이응진 KBS 드라마 제작국장, 이진숙 MBC 국제부장이 상을 받았다. 뒤에 MBC 홍보국장 겸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긴 이진숙 기자는 이라크 전 당시 바그다드 현지에서 마이크를 잡아 유명해졌다. 김정길 대구예술대 총장은 대구매일신문에 입사해 기자, 부장, 편집국장, 사업국장, 부사장을 두루 거친 후 대학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밖에도 경북대 동문들은 지역의 신문, 방송사 구석구석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인 중에는 삼성의 고향이 대구라는 연고로 많은 동문이 삼성 쪽에 포진해 있다. 김순택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부회장)은 졸업도 채 하기 전에 제일합섬에 입사해 비서실에서만 18년을 근무한 정통 삼성맨이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업지원팀장(사장) 역시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래 경영지원그룹장, 북미지원팀 이사, 경영지원팀장, 그룹 전략기획실 임원을 거친 삼성맨이다. 신상흥 구주총괄 부사장, 김영환 무선개발3팀장, 김운섭 정보통신총괄 사업부장이 삼성전자에서 밥을 먹은 식구들이다. 김순화 현대모비스 부사장은 경북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이래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33년간 조립기술실장, 차체기술실장, 시트공장장, 앨라바마공장장으로 일한 엔지니어이다. 그 밖에 LG·LS 쪽에도 동문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경북대 출신 문화예술계 인사로는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낸 이창동 영화감독과 문화부 차관에 이르기까지 문공부에서 잔뼈가 굵은 허만일 화산문화기획 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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