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큰 증인들 키우는 국정감사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11.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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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사무처 자료 입수·분석/불출석자 가운데 13%만 고발 조치돼 증인들 ‘제멋대로’

 

▲ 10월7일 열린 국회 법사위의 국정감사에서 이인규 전 윤리지원관과 이영호 전 비서관이 출석하지 않아 자리가 비어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정감사 무용론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증인 불출석’ 문제가 무용론의 핵심이다.
<시사저널>이 국회 사무처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국감 기간 동안 불출석한 증인은 61건이다. 이 가운데 10월18일까지 12건의 동행명령장이 발부되었으나, 그중 출석에 응한 것은 단 세 건에 불과하다. 국회의 동행명령장도 큰 효용이 없는 셈이다.

여론이 좋지 않자 여야 모두 모든 불출석 증인에 대해 고발 조치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21일 국회 법사위원회는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고발하기로 했다. 앞으로 불출석 증인들에 대한 고발 조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증인들의 국감 기피 행태를 당장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해마다 국감 기간마다 불출석 증인에 대한 처벌 문제가 불거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마는 경우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고발 조치에 따른 처벌 수위가 낮아 당사자인 증인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작은 것도 요인 중 하나이다.

국회 사무처에서 입수한 자료를 분석해보면, 지난 1999년부터 2009년까지 3만2천6백57권의 증인 신청 건수 중 불출석이 7백58건이다. 다수가 국회 증언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증인이다.

불출석 증인들 가운데 국회로부터 고발 조치된 사례는 99건으로 13%에 불과하다. 17대 국회 들어 2004년 10건, 2005년과 2006년 각각 15건이 고발 조치되었지만 마지막 회기인 2007년 두 건을 시작으로 18대 국회 들어서는 2008년에 여섯 건, 2009년에는 다섯 건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동행명령장 발부는 국회가 증인 출석을 강제하기 위한 강도 높은 조치이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동행명령장이 발부된 것은 총 30건이다. 이는 전체 불출석 증인 중에서 4%에 불과한 수치이다. 그나마 동행명령장이 발부되었다고 해서 모두 출석하는 것도 아니다. 30건 가운데 출석으로 이어진 경우는 절반에 채 못 미치는 14건에 불과하다. 특히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은 불출석 증인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동행명령장이 발부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올해 들어 동행명령장이 늘어났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벌금 2백만~3백만원 내는 게 더 낫다”

이처럼 증인들이 국회를 우습게 여기고 불출석을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국회가 검찰에 고발을 한다고 해도 처벌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지난 17대 국회 기간 중 국회가 검찰에 고발한 42명 중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2007년 국감에서 불출석한 김정민 전 국민은행 부행장은 역대 최고액인 7백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으나, 2006년 론스타 외환은행 불법 매각 관련 증인이었던 이헌재 전 부총리와 2007년 국감 증인이었던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등 대다수는 2백만~3백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약식 기소나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증인들이 불출석으로 얻는 이익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는 처벌이다. 실제 법적 제제 조항 자체는 엄격한 편이다.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은 증인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1만 달러 이하의 벌금 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미국이나 10만 엔 이하의 벌금 또는 1년 이하의 금고에 처하는 일본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엄격한 적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0년 국정감사 평가를 진행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고계현 정책실장은 “불출석 사유에 대한 요건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는 등 제도적으로 허점이 있다. 고발을 결의하는 과정이 복잡해 고발 건수가 적은 것도 문제이다. 고발을 결의하더라도 정당 간 의견이 나뉘는 경우가 많아 검찰에서도 적극적으로 처벌에 나서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즉, 여야 간 정파적 이해 관계 탓에 불출석 증인들에 대해 일치된 제재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증인들이 그 덕을 톡톡히 본다는 것이다. 국회 스스로 증인들의 국감 기피 현상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월4일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제를 다룬 정무위 국정감사장은 증인들이 국감을 바라보는 시선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여야 합의로 신청된 증인이 아홉 명이었지만, 이인규 전 지원관을 비롯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국정감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했다. 쟁점이 되는 사안,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한 국정감사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김없이 주요 증인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동행명령장을 집행하려는 국회 직원조차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특채 비리와 관련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 신한 사태의 당사자인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권력형 인사 비리 의혹을 받은 어윤대 KB 금융지주 회장, 청와대 MBC 인사 개입 의혹을 받은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이 국회의 요구에 불응했다.

이들이 내세운 불참 사유는 국회의 무기력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10월4일 정무위 국감에 불출석한 증인들은 종손으로서 선영 참배(송유철 전 총리실 조사심의관), 풍수지리 수강(전경옥 전 조사심의관), 건강검진(구본영 전 조사심의관), 공직 사임 후 생계 유지, 다각도로 해외 진출 모색(이영호 전 비서관)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단골 메뉴는 해외 출장 및 체류이다. 올해도 유명환 전 장관, 라응찬 회장,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이승한 삼성테스코 회장 등이 해외로 나갔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국정감사 기간에 맞추어 해외 출장을 잡는 것이 통례이다. 증인 입장에서 실익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훈련이 안 된 일반 증인이 국회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고발 조치로 벌금형을 받을 수 있지만 증인으로 나가 잃을 것에 비하면 약소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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