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휩쓰는‘서민 공감’ 코드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11.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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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슈퍼스타K> <남자의 자격>이 사랑받은 이유

최근에 SBS <웃찾사>마저도 폐지되면서 한국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 하나만 남았다. MBC에서는 <개그야>가 이미 폐지된 바 있다. 사람들이 버라이어티나 집단 토크쇼의 생생한 재미에 빠져들면서 대본에 의한 코미디에는 흥미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개그콘서트>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서민 공감의 힘이다. 단지 감각적인 웃음만을 주려 한 타사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과 <개그콘서트>가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오로지 <개그콘서트>에만 서민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

▲ KBS ⓒKBS 제공

이런 식의 공감을 추구하는 것은 <개그콘서트>의 전통이다.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보자. 이 코너는 선후배 간 위계질서의 부조리를 풍자하고, 뻔뻔하고 무책임한 1인자와 2인자의 모습을 질타한 것이었다. 빽도 없고 끈도 없는 후배들은 1인자에게 치이고 2인자에게 치이며 궂은일만 도맡아 한다.

‘남보원’은 여자친구와 데이트 한 번 하는 데도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며 공포를 느껴야 하는 서민 남성들의 심정을 대변한 내용이었다.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대사로 1등이 되지 못한 전체 서민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이렇게 서민과 약자의 심정을 대변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대신에, 상위층 인사들로부터는 불편한 시선을 받는다. 그래서 <개그콘서트>에는 종종 외압설이 터져나온다. 시청자들은 <개그콘서트>가 좀 더 시원한 풍자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모종의 압력이 있다고 의심한다.

그럴 정도로 이 프로그램은 서민과 약자에게 공감을 주고, 뜨거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바로 이것이 코미디 프로그램 전체가 위축되는데도 <개그콘서트>만 홀로 잘나가게 하는 힘이었다.

‘루저의 아우성’에 함께 웃고 울고…

▲ M·net ⓒ시사저널 윤성호

최근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슈퍼스타K>에도 서민과 약자가 공감할 만한 코드가 등장한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 대상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기획사라든가 기존 연예 산업 시스템에게 거부당했던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그 사람들이 거부당한 이유는 대체로 외모가 떨어지거나, 주류에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는 데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인으로 변신해가는 것이 <슈퍼스타K>의 내용이다.

요즘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한다. 사회에서 성공하기 힘든 거대한 ‘루저 세대’라는 뜻이다. <슈퍼스타K>의 도전자는 마치 이 루저 세대의 표상 같다. 시청자들은 그들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이 성공하면 함께 감동하고, 실패할 때는 탄식하며 몰입한다.

이번 <슈퍼스타K>에서 처음으로 대중이 열정적으로 몰입한 김보경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녀가 떨어졌을 때 수많은 시청자가 슬퍼하고 분노했다. 마치 자신이 당한 일처럼. 그는 불우한 가정 환경이라는 좋지 않은 조건 속에서 꿈을 향해 악전고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눈물을 흘리자 대중은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장재인과 김지수의 경우도 그렇다. 장재인은 요즘 걸그룹이나 손담비 같은 주류 가수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김지수도 외모에서 많이 불리한 면을 보였다. 약자였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도전에 시청자는 격하게 공감하며 몰입했다.

<슈퍼스타K> 마지막에 이번 시즌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우승으로 대미를 장식한 허각도 그렇다. 그야말로 88만원 세대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그에게는 내세울 것이 거의 없었다. <슈퍼스타K> 중반부 당시 그는 답답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자신감이 전혀 없었고, 의기소침했으며, ‘미국에서 온 미남’인 존박에게 눌리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그랬던 그가 <슈퍼스타K> 종반을 향하면서 변신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갖추고 무대에서 당당해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이 거의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그는 샤우팅 창법을 선보였다. 처음 등장했을 때 의기소침했던 것에서 너무나 달라진 변화였다.

말하자면 ‘루저의 성장기’였던 것인데, 여기에 수많은 청춘이 공감했다. 허각을 보며 감동과 희망을 느꼈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나왔다. 보통 이런 류의 프로그램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대개 나이 어린 여성들이다. 그러나 이번 <슈퍼스타K>에는 성인 남성까지 대거 투표에 참여했다. 그만큼 허각에게 공감하고 몰입했다는 얘기이다.

이것이 <슈퍼스타K>가 기적적인 성공을 이룩하고 사회적으로까지 파장을 일으킨 이유이다. 단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차례차례 나와 노래만 하고 들어가는 오디션이었다면 절대로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단지 웃기기만 하려고 했던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그랬던 것처럼 외면받았을 것이다. <슈퍼스타K>는 노래만 한 것이 아니라 서민과 약자들이 공감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코드를 넣어서 성공했다.

출연자들, 연예인 딱지 떼고 ‘인간적인 느낌’으로 승부

이번 여름을 거치며 <남자의 자격>은 예능계 블루칩이 되었다. 또 안티 없는 프로그램으로도 자리매김했다. 주말 예능계는 총성 없는 전쟁터이다. 경쟁이 극히 심하다. <남자의 자격>처럼 자극성이 약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여기에도 서민과 약자의 공감이 있다. <꽃다발>이나 <영웅호걸>은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을 내세운다. 하지만 화려하기만 할 뿐 공감할 만한 인간적인 느낌이 없다. <뜨거운 형제들>도 감각적인 웃음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지만, 그 이상의 결정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남자의 자격>은 웃음기도 약하고 출연진의 스타성도 여타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강한 편이 아니었지만, 인간적인 느낌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남자의 자격> 출연진은 모두 평범한 서민의 모습을 표상한다. 그들이 도전하면서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 내용이다. 시청자들은 화려한 스타들의 예능쇼보다, 이런 보통 사람의 이야기에 더 몰입했다.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부터 약자나 서민의 공감 코드가 예능계 대세였다. 최근 들어 그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현실 세상에서 인간적인 느낌이 사라지고 마음 둘 데가 없을수록, 더욱 TV 속에서라도 공감할 만한 인간적인 그 무엇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이 흐름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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