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몰이’에 좌우는 없었다
  • 유창선│시사평론가 ()
  • 승인 2010.11.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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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대선이 한국 정치에 주는 교훈 / 이념 넘어 실질적 정책 성과 보여야 국민 지지 확보 가능

 

▲ 지난 10월31일 브라질 대선에서 승리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가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AP연합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노동자당(PT)의 지우마 호세프가 승리한 것은 한국 정치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국내 언론들은 호세프의 당선에 대해 일제히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실제로 브라질에서 여성 대통령이 선출된 것은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출범한 지 1백2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호세프 자신도 당선 소감에서 “남녀 간의 기회 균등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라며 여성 대통령 탄생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당연한 일이다. 브라질에서 최초로, 그리고 중남미에서는 세 번째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성별 기회의 균형이라는 차원에서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최근 한 인기 드라마와 관련해 ‘여성 대통령’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태이기 때문에, 호세프의 당선은 이래저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호세프의 당선이라는 브라질 대선 결과를 단지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차원에서만 해석한다면 이는 일면적이고 표피적인 분석에 그칠 수밖에 없다. 호세프가 여성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브라질 유권자들의 지지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정치적 배경에 대한 분석이다.

그런데 호세프의 당선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미묘하게 엇갈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수적인 색채의 언론에서는 룰라 현 대통령의 탈(脫)이념적 실용 정책이 경제 성장과 사회 통합을 이루어 호세프가 그 후광으로 당선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반면에 진보적인 색채의 언론에서는 호세프가 갖고 있는 좌파적 경제 정책에 관심을 쏟으며 룰라-호세프로 이어지는 좌파 노동자당의 재집권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강조점의 차이는 각자가 갖고 있는 이념적·정치적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의 견해만을 채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두 개의 해석에 강조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한 쪽을 배척할 필요 없이 각자가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룰라 대통령 인기 고공 비행의 비결

▲ 국내 언론들은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을 1면 톱 또는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시사저널 윤성호

먼저 호세프의 당선이 룰라 대통령의 영향력에 힘 입은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사회민주당의 조제 세하에게 더블스코어 차이로 뒤지고 있던 호세프가 대역전에 성공한 것은 룰라의 지원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선거 기간 내내 호세프는 자신이 룰라 정부의 계승자임을 강조했고, 룰라는 호세프를 ‘국모(國母)’라고까지 칭하며 지원 유세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런 점에서 “룰라 대통령은 우리를 보살펴주었다. 호세프도 그럴 것이라고 룰라가 말했다”라던 한 브라질 노동자의 말은 그들의 선택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졌는가를 잘 전해준다.

실제로 룰라 대통령은 퇴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금까지도 지지율 70~80%를 유지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룰라 대통령이 지난 8년간 펴온 경제 정책의 성공에 기인한 것이다. 룰라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5%가량을 기록했고, 특히 올해에는 7%에 가까운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1인당 소득은 23%나 증가했다. 이러한 결과는 그 이전 사회민주당의 집권 시기와 비교할 때 뚜렷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룰라 대통령의 강력한 분배 정책과 사회보장 정책도 성과를 거두어 최저 임금은 65%나 상승했다. 과거의 임금 상승률에 비해 세 배나 높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물가와 연동된 최저 임금제를 도입한 성과였다. 가난한 가정의 자녀가 학교에 출석하고 공공 면역 체계에 동참하도록 보조금을 지원하는 ‘볼사 파밀리아’ 정책의 확대도 룰라 대통령의 성취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가 하면 빈곤층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는 정책도 수십만 명이 혜택을 받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실용적인 경제 정책을 통해 투자를 촉진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분배 정책을 통해 빈곤을 퇴치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성과를 동시에 거둔 것이다.

외신들은 호세프의 당선에 대해 ‘룰라 대통령이 8년 동안 뚝심 있게 펼쳐 온 빈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의 승리이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호세프의 당선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브라질 유권자들은 룰라의 계승자이자 후계자인 호세프를 선택한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여성’ 대통령 호세프 이전에 룰라의 경제 정책을 계승하는 호세프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권이 브라질의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서 우선 살펴야 할 것은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은, 그리하여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가능하게 한 집권 노동자당의 정책이 어떻게 가능했느냐 하는 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집권한 8년, 그리고 그에 이은 호세프의 집권은 한국의 진보·보수 정치 세력 모두에게 성찰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좌파 정당인 집권 노동자당의 성공적 국정 운영이다. 브라질은 세계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국가부도설이 나돌던 지극히 취약한 국가였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을 거치면서 브라질은 경제 성장과 분배 구조의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장 경제의 틀을 고수하면서도 강력한 분배 정책을 밀어붙인 룰라의 일관된 경제 정책은 브라질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 정치의 경우 진보적 정부의 재임 시절 “좌측 깜빡이 켜고 우측으로 간다”라는 소리를 진보 내부로부터 들을 정도로 정책의 혼선과 비일관성의 문제가 드러났고, 결과적으로 성장과 분배 어느 하나도 제대로 성취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룰라 정부의 좌파적 국정 운영이 성공한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좌파 정당의 집권은 혼란이라는 생각에 ‘일침’

룰라 정부의 성공과 호세프의 집권은 한국의 보수 정치 세력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한국의 보수 정치 세력은 좌파 집권은 곧 혼란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를 구사한다. 그러나 이번 브라질의 대선 결과를 놓고 보면, 브라질 국민은 오히려 좌파 정당인 집권 노동자당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집권당의 교체가 가져올 정치·경제적 불안을 피하고 경제적 성과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노동자당을 지지했다는 것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좌파 정당의 집권을 통해서도 경제적 성장과 안정된 국정 운영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흔히 좌파 정당의 집권은 곧 성장의 종료 내지는 혼란이라는 등식이 사실과 다름을 말해주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나라마다의 특수한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념적 이분법이 아니라 실사구시적인 정책을 펴나가는 자세임을 보여주고 있다. 

호세프의 당선에 따른 브라질 노동자당의 재집권은 좌우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브라질 정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좌파 정당의 집권을 통해서도 경제 성장은 가능하며, 경제 정책에는 좌파의 것과 우파의 것이 따로 있지 않음을 브라질의 정치가 입증해주고 있다. 결국 이념이 아닌 실질적인 정책의 성과를 갖고 국민의 지지를 얻어나가며, 국민들 또한 국정 운영의 실질적인 성과를 갖고 정당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브라질의 대선 결과는 한국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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