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화산’ 된 동아시아 영토 분쟁
  • 조홍래│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1.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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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통령이 쿠릴 열도 방문하자 일본 정부 “도발” 발끈…중·일 간 센카쿠 열도 갈등도 악화

역사는 필연과 우연의 소용돌이 속에서 움직인다. 11월1일이 바로 그런 날이다. 이날 캄차카 반도 남단의 쿠릴 열도에서 동북아 지정학 판도에 심대한 파장을 몰고 올 사건이 터졌다.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 열도 남단의 네 개 도서 가운데 하나인 구나시리(國後)를 갑자기 방문했다. 이 지역은 캄차카 반도의 최남단에서 일본 최북단의 홋카이도(北海島) 사이에 펼쳐진 쿠릴 열도의 한 부분이다. 일본에서 북방 영토라고 불리는 이 네 개 도서는 겨우 2만명의 러시아인이 거주하는 불모지이지만 풍부한 어족자원과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량이 확인되면서 요충지가 되었다. 메드베데프는 이곳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 생활 수준을 크게 향상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한 가정을 방문한 자리에서 주민들이 이곳에 계속 거주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섬을 둘러싼 분쟁에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영유권 문제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했다.

▲ 11월1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쿠릴 열도 남단의 구나시리 섬을 둘러보고 있다. ⓒAP연합

일본 반발에 러시아 외무장관 “우리 영토”

얼핏 들으면 러시아 대통령이 자국 영토의 한 곳을 찾아 투자 계획을 밝히는 통상적인 발언을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발언 속에는 쿠릴 열도의 기구한 역사와 굴곡만큼이나 복잡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이 반환을 요구하는 이 섬들은 분명히 러시아 영토이며, 따라서 이를 반환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 9월 러시아 지도자의 방문 계획을 전해 듣고 “그러한 방문은 양국 관계를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던 일본은 메드베데프의 발언에 즉각 반박했다.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외무장관은 메드베데프가 쿠릴 열도에 간 것은 일본 국민의 감정에 상처를 준 도발이라고 규정하고 주일 러시아 대사를 불러 항의 의사를 전했다.

옛 소련군은 1945년 네 개 섬을 점령한 후 일본인 거주민들을 추방하고 본국에서 정착민들을 데려왔다. 그 후 1956년에 양국은 수교 협상을 통해 관계를 회복했다. 당시 러시아는 평화조약의 일환으로 네 개 도서 가운데 두 개 섬의 반환을 제의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모든 섬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그 이후 영토 분쟁은 미결로 남아 있다. 러시아는 1945년 얄타 회담에 의거해 러시아 영토라는 입장이고, 일본은 1855년 일·러 조약에 따라 일본 영토에 귀속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 조약, 포츠담 선언 등을 거치면서 영유권 문제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메드베데프의 방문에 대한 일본의 반발에 러시아는 “수용할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네 개 도서가  ‘우리의 영토이다’라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모스크바 주재 일본 대사를 불러 러시아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라브로프는 이 문제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은 명백하고 단호하다고 확인했다.

이미 9월부터 중국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釣漁島)를 놓고 갈등을 빚어온  일본은 의외의 복병을 만난 꼴이 되었다. 당시 일본은 센카쿠 인근에서 일본 함정과 충돌한 중국 어선의 선장을 체포했다. 중국은 이 사건을 영토 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대적인 반일 시위를 벌이는 한편 다각적인 대일 압력을 가했다. 메드베데프는 그의 정치적 후견자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에 비해 온건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영토 문제에서는 단호한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이 노선에 따라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남오세티야 지역 영유권 문제로 그루지야와 전쟁까지 치렀다. 메드베데프의 행동은 두 가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제스처이다. 둘째, 러시아가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계속 존속하려는 의사를 천명한 것이다. 즉, 러시아 동부의 국경 분쟁에서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쿠릴 열도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는 1990년대 열도에 주둔한 병력을 감축하고 다수의 주민들이 섬을 떠나면서 다소 약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석유와 가스 매장량 및 아시아 시장의 수송로로써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극동 지역은 러시아 경제에 필수적인 요인으로 등장했다. 러시아 과학원의 영토 문제 전문가 엘게나 몰로다코바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경제 여건의 변화로 쿠릴 열도 문제는 전략적 차원으로 승격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영토 문제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의 어조에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묻어 있었다.    

동북아의 세 열강 중국·일본·러시아가 영토 분쟁의 격랑 속으로 빠져든 첫 조짐은 지난 6월에 나타났다. 당시 남중국해의 난사(南沙)와 시사(西沙) 군도를 둘러싸고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이 갈등을 빚을 때만 해도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례 행사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9월에 일어난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충돌로 일본과 중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미국·EU, 대체로 일본 편들며 중·러 ‘견제’

▲ 11월1일 일본인들이 러시아 대통령의 쿠릴 열도 방문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2분기 GDP(국내총생산)에서 일본을 제쳐 G2가 된 중국은 경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강압적 수준의 힘을 과시했다. 중국 전역에서 격렬한 관제 반일 시위를 조직하고 중국을 여행 중인 일본인들을 석연찮은 이유로 체포했다. 일본에 대한 다양한 수출 규제도 병행했다. 일본은 기절초풍했다. 상궤를 벗어난 중국의 대응에 눌려 한 발짝 물러섰다. 당초의 기소 방침을 바꿔 중국인 선장도 석방했다. 사실상 중국에 항복한 모습이었다. 이것으로 긴장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10월에 들어 미국이 이 분쟁에 개입하면서 국면은 다시 악화되었다. 하노이에서 개최된 아세안안보포럼(ARF)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 조약 적용 대상인 점을 들어 미·일·중 3자 회담을 주선하겠다고 제의했으나 베이징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말은 중재이지만 속셈은 일본 편을 든 것이어서 중국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힐러리의 개입은 G2로 우쭐대는 중국을 ‘견제’하려 했다는 해석을 낳았다. 바로 이 순간에 메드베데프가 분쟁 지역을 방문함으로써 사태는 예측할 수 없는 차원으로 악화되었다.  

 네 개 섬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의 입장은 극명하게 대조된다. 러시아 국민들은 대부분 영유권 분쟁에서 양보하는 데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과거 역사의 곡절에도 불구하고 섬들을 지키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 입장은 2000년에 들어오면서 더 강경해졌다. 이 해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의 89%는 반환에 반대했다. 이는 1994년에 실시한 여론조사 때의 76%보다 높은 것이다. 일본은 민관 합작으로 도서 반환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8년에 1백7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

동북아 영토 분쟁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대체로 일본 편을 들고 중국과 러시아는 일정 수준의 공조 노선을 유지한다. 동북아의 영유권 분쟁은 그동안 ‘휴화산’ 상태를 유지했으나 쿠릴 열도 문제로 인해 돌연 ‘활화산’ 상태로 변했다. 어쩌면 21세기 최대의 외교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경기 불황, 기후 변화, 자원 전쟁까지 겹치는 바람에 무력 충돌의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다. 이 문제의 귀결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독도와 북핵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6자회담의 당사국들이 싸우는 형국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내에서도 이를 계기로 위기의식이 높아가면서 군사대국화 노선이 힘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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