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지로 일어선 그들 앞에 못 넘을 장벽은 없었다
  • 신명철│인스포츠 편집위원 ()
  • 승인 2010.11.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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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를 빛낸 한국 선수들의 명승부

11월27일 폐막을 앞두고 종반의 열기를 내뿜고 있는 제16회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수영의 박태환, 유도의 김재범, 사격의 김윤미 선수 등이 명승부를 연출하며 4회 연속 종합 2위 달성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대회 중반 이후에도 남자 마라톤, 양궁, 남자 하키 등 스포츠 팬들에게 짜릿한 감동을 안겨줄 명승부가 예고되어 있다.

▲ 지난 11월17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수영 100m 개인 자유형 결승에서 우승한 박태환 선수. ⓒAP연합

개인 3관왕에 빛난 박태환의 역영에 중국도 ‘탄성’ 

 “박태환에게 중국은 없었다.” 수영 자유형 4백m의 2007년 세계선수권자이자 2008년 올림픽 챔피언인 박태환은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노 메달’로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경쟁자인 장린(중국)이 4백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 때 박태환은 전체 12위로 8명이 겨루는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연히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었다. 그러나 박태환은 올 들어 괌·호주 전지훈련에서 2년 전의 페이스를 되찾았고, 지난 8월 범태평양선수권대회 4백m에서 올 시즌 국제수영연맹(FINA) 랭킹 1위 기록(3분44초73)을 세우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 사이 박태환의 경쟁 상대는 장린에서 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11월14일 광저우 아오티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자유형 남자 2백m 결승에서 박태환은 1분44초80의 아시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때부터 박태환을 끈질기게 따라붙던 장린은 4위로 처졌고, 쑨양이 2위(1분46초25)로 들어왔다. 박태환은 출발 반응 속도가 0.67초로 가장 빨랐고 첫 50m 구간부터 경쟁자들을 앞서 나가더니 끝까지 리드를 놓치지 않으며 완벽한 레이스를 펼쳤다. 쑨양은 마지막 순간까지 박태환을 추격했으나 1백50m를 넘어서며 박태환 특유의 폭발적인 스퍼트에 밀려 오히려 거리가 더 벌어졌다.

 이어 16일 벌어진 4백m 결승에서는 3분41초53로 터치패드를 찍어 자신이 갖고 있던 올 시즌 FINA 랭킹 1위 기록을 3초20이나 앞당기는 놀라운 스피드로 또다시 중국의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장린이 지난해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아시아 최고 기록(3분41초35)에는 0.18초가 모자랐지만 로마 대회에서 장린은 지금은 착용이 금지된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전신 수영복을 입고 레이스를 펼쳤었다. 쑨양과 장린은 박태환을 뒤쫓기에 급급했다.

박태환의 레이스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3백m 구간을 넘어설 때 래프 타임은 2분46초33으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파울 비더만(독일)이 전신 수영복을 입고 세계 최고 기록(3분40초07)을 세울 때 기록한 2분47초17보다 빨랐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가 펼쳐진 것이다. 17일 펼쳐진 100m 레이스에서 후반에 보여준 박태환의 역영은 스포츠팬에게 선물한 명승부의 보너스였다. 

유도의 김재범은 이번 대회에서 ‘비운’이라는 말을 날려버렸다. 김재범은 14일 광저우 화궁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남자 81㎏급 결승에서 쇼키르 무니노프(우즈베키스탄)를 경기 종료 2분15초를 남기고 안다리걸기 한판으로 물리치고, 지난 9월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또다시 금메달의 기쁨을 안았다. 김재범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유도에서 가장 중요한 잡기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손가락을 다쳤지만, 뛰어난 기량과 체력으로 명승부를 펼친 끝에 불과 두 달 사이에 세계 무대와 아시아 무대를 휩쓸었다.    

그러나 김재범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운의 사나이’ ‘2인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힘든 선수 생활을 했다. 2004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김재범은 그해 11월 제42회 대통령배대회 73㎏급에서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를 꺾고 우승하면서 차세대 주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예전 71kg급인 이 체급은 안병근(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한국 유도의 황금 체급으로 김재범도 이원희, 왕기춘과 경쟁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10개월여 앞두고 81㎏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체급을 조정한 이후 갈비뼈 부상 등 악재가 겹치면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은메달, 지난해 로테르담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등 잇따라 정상 일보 직전에서 물러섰다. 비운을 털어낸 김재범의 마지막 목표는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이다.

▲ 지난 11월14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공기 권총 개인 10m 경기에서 우승한 김윤미 선수. ⓒ연합뉴스

임신 7개월의 ‘예비 엄마’ 김윤미는 11월14일 광저우 아오티 사격장에서 벌어진 여자 10m 공기권총 단체전에서 김병희, 이호림과 함께 출전해 1위에 오른 데 이어 같은 종목 개인 결선에서 100.3점을 쏴 본선 합계 4백84.4점으로 중국의 순치를 따돌리고 2관왕에 올랐다. 김윤미는 순치에게 2점 뒤진 채 2위로 결선에 올랐지만 7번째 발에서 순치가 9.7점을 쏠 때 10.3점을 기록해 0.3점 앞선 뒤 침착하게 경기를 마무리했다. 남자 선수도 실수를 연발하는 결선에서 김윤미가 침착하게 계속 10점대 과녁을 명중할 수 있었던 것은 뱃속의 아기 ‘오복이’(胎名)의 힘이 아니었을까.

명승부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폐막일인 27일 오후 1시15분에 출발 총성이 울리는 마라톤 남자부는 한국으로서는 금메달을 놓칠 수 없는 경기이다. 한국은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이 종목에서 4회 연속 우승했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는 1974년 테헤란 대회에 이어 마라톤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조상들이 진 전쟁에서 비롯된 경기를 치를 까닭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90년 베이징 대회 김원탁, 1994년 히로시마 대회 황영조, 1998년 방콕 대회와 2002년 부산 대회 이봉주에 이어 1958년 도쿄 대회 이창훈, 1982년 뉴델리 대회 김양곤까지 더하면 한국은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6차례나 우승했다. 한국 팀은 세계적인 수준에 뒤져 있을 때도 아시아경기대회에서만큼은 투혼을 불살랐다.

한국은 지영준(2시간8분30초)과 김영진(2시간19분54초), 일본은 사토 도모유키(2시간9분43초)와 기타오카 유키히로(2시간10분51초)가 출전해 치열한 한·일전을 펼치게 된다. 최근 한국 남자 마라톤이 다소 침체해 있지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다. 

양궁·남자 하키 등 한·중, 한·일 라이벌 대결 대회 막판까지 이어져

세계 최강 양궁은 임동현, 오진혁, 이창환, 김우진(이상 남자)과 주현정, 윤옥희, 김문정, 기보배가 남녀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홈 필드의 중국과 접전을 펼칠 전망이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한국은 중국, 타이완, 일본 등을 따돌리고 4개 세부 종목 금메달을 휩쓸었다. 한국 양궁의 빼어난 실력을 보이며 명승부가 펼쳐지기 위해서는 중국 관중의 올바른 응원이 전제 조건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박성현은 홈 관중의 소음에 흔들리며 중국의 장주안주안에게 101-106으로 졌다. 양궁 단체전은 여자가 21일, 남자가 22일 결승을 치르며 개인전은 여자가 23일, 남자가 24일 각각 결승을 벌인다. 

남자 하키는 구기 종목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 가운데 하나이다. 2002년 부산 대회와 2006년 도하 대회 결승에서 각각 인도와 중국을 4-3, 3-1로 물리치고 2연속 우승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한국이 6위로 아시아 나라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고 파키스탄이 8위, 중국이 11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 4강은 한국과 중국, 파키스탄과 인도로 좁혀질 것으로 보이고 24일 결승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도하 대회에 이어 다시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종합 순위 1위 싸움은 대회 초반 이미 끝났지만 종목별 한·중, 한·일 라이벌의 명승부는 대회 막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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