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공권력이‘비호감’ 일색인 이유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11.2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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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법 집행 바라는 관객들의 여론 반영

요즘 한국 영화 속 공권력은 무기력하다 못해 ‘찌질’하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게 양아치 수준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현실에서 검찰과 경찰은 바르고 깨끗한 존재여야만 한다. 그러나 요즘 스크린 속 공권력은 아예 신랄한 비판의 대상으로만 전락했다. 정의감을 지닌 경찰과 검찰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최소한의 법질서를 지키거나 종국에는 정의감을 발휘했던 기존 영화 속 경찰이나 검찰의 모습과 대조된다. 문제는 그것이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페스티발>의 주인공인 경찰관 장배(신하균)는 찌질함의 절정이다. 그는 신체적 열등감 때문에 길거리의 서양인을 표적 단속한다. 입에 항상 욕을 달고 사는 그는 순찰차를 타고 과속을 일삼기도 한다. 풍기 문란을 이유로 주민을 단속하는 그는, 정작 자신의 국부 확대 수술 뒤에는 보호대를 바지 위에 걸치고 다니며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사회 객석에서 터진 한탄 섞인 반응은 요즘 경찰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드러낸다. “정말 비호감이다.”

 

▲ ⓒ (주)미디어플렉스 제공

<불량남녀>의 주인공 방극현(임창정)은 아예 신용불량 형사로 등장한다. 보증을 잘못 섰다가 빚더미 위에 앉은 것으로 묘사되지만 범인을 검거하는 중에 채권을 상환하라는 독촉 전화를 받는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경찰이 무능력하게 그려지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순항 중인 <초능력자>는 경찰의 무능력을 에둘러 그려낸다. 극 중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범인을 잡아 경찰에 넘기지만 경찰은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초능력자가 자신의 고향집을 수색하러 온 형사들의 뇌를 조종해 그들을 하수구로 투신시키는 장면에는 경찰에 대한 짙은 불신이 깔려 있다.

검찰과 경찰이 정의 구현이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잿밥에 더 눈길을 주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2백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작 <부당거래>의 경찰과 검찰은 한심한 수준을 넘어서 공분을 불러낸다. 경찰 수뇌부가 청와대 눈치를 보며 국면 전환을 위해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를 조작하려 하고 강력반장이 자신의 비위를 덮고 승진하기 위해 부당한 요청을 받아들이는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다.

폭력배 출신 건설업자에게 더러운 거래를 제의하는 형사 최철기(황정민), 스폰서로부터 뒷돈을 받으며 오직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검사 주양(류승범)의 모습은 관객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우연찮게도 한국 검찰은 ‘그랜저 검사’ 재조사 여부를 놓고 시끄럽다. 공권력이 한국 사회의 치부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스폰서로부터 거한 대접을 받는 와중에도 뒤틀린 심사를 거리낌없이 표출하며 주양이 던지는 극 중 대사. “태경 센터 한 번 까드려야(조사해야)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아시겄어~?” 물욕에 눈이 먼 검사는 시정잡배보다 더 무서운 존재이기에 공분의 대상이 된다. 최철기가 내뱉는 대사는 잿밥에 더 마음을 두는 공권력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잘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하는 일이다 믿는 거지.”

11월25일 개봉하는 <이층의 악당>은 우회적으로 공권력을 비판한다. 골동품을 훔치기 위해 연주(김혜수)의 집 이층에 세를 들게 된 창인(한석규)의 의심스러운 행적을 조사하는 순경이 이 영화에 등장한다. 다른 경찰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을 파고드는 모습에서 올바른 공권력의 행동거지를 보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주를 짝사랑한 순경이 창인의 뒷조사를 감행했던 것이다. 그가 지명수배자인 창인에게 진지하게 던지는 “두 사람 안 어울립니다”라는 말은 씁쓸한 웃음을 안긴다.

충무로가 과도하게 공권력을 비판하는 것일까.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권력에 대해 신뢰를 갖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법 집행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믿는 관객들의 불만이 스크린에 드러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 ⓒ㈜싸이더스 제공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와 궁지에 몰린 사기꾼이, 그것도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로 마주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배우 한석규와 김혜수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영화 <이층의 악당>은 사람 ‘돌아버리게’ 만드는 집주인과 ‘눈빛이 좀 안 좋은’ 세입자의 조우가 빚은, 이상하게 웃기는 이야기이다.

골동품 사기범 창인(한석규)은 20억원짜리 백자의 행방을 쫓아 한적한 동네의 이층집 앞에 도착한다. 중학생 딸과 함께 사는 과부의 집. 마침 2층 방을 임대한다는 소식에 소설가라고 위장하고 세입자로 들어가지만, 생각과 달리 상황은 여의치 않다. 뒤져야 할 1층은 사설 경비 시스템으로 철통 경비 중인 데다 남편이 죽은 후 우울과 불면에 시달리는 집주인 연주(김혜수)는 사사건건 까탈이다. 외모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딸은 가라는 학교는 안 가고 매일 ‘땡땡이’를 치고, 오지랖 넓은 이웃집 여자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더한다. 구매자의 독촉 또한 나날이 심해진다. 늘 그렇지만 인생,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데뷔작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코미디와 서스펜스, 멜로를 넘나드는 재능을 선보였던 감독 손재곤은 두 번째 영화 <이층의 악당>에서도 여전한 재기를 과시한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평온한 일상에 균열을 부른다’는 추리물의 전형적 구도를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로 비튼 영화는 이층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긴장과 웃음을 넘나든다. 적재적소에 쓰인 일상적 대사들과 잘 구축된 캐릭터, 두말하면 입 아플 배우들의 연기는 신파적 설정이나 가(피)학적 묘사 없이도 얼마든지 웃음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 중반 등장하는 지하실 장면은 술래잡기에 가까운 인물 관계의 긴장을 전면에 드러내는 포인트이자 근래 가장 처절하면서도 우스운 슬랩스틱 코미디. 좋은 배우가 좋은 캐릭터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오순경 등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조연 캐릭터와 묘하게 열린 결말은 다소 깔끔하지 못한 뒷맛을 남긴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를 해칠 정도는 아니다. 감독에게 기대를 했건, 배우에게 기대를 했건 배신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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