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젊은 임원’들 잠 깨어 온다
  • 이은지 기자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11.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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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시작한 ‘바람’, 각 기업에 확산…연말 정기인사에서 30~40대 임원 대거 등장 전망

 

ⓒ시사저널 이종현

재계에 ‘젊은 인사’ 바람이 거세다. 기폭제가 된 것은 삼성그룹이다. 이건희 회장이 연일 ‘젊은 조직’을 언급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사장 승진을 기정사실화했다. “리더는 젊어야 한다”라는 이회장의 말은 삼성을 넘어 재계의 세대교체를 가속화하는 추진체가 될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연말 정기인사에서 30~40대 젊은 임원들이 대거 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은 CJ제일제당을 제외한 국내 100대 기업 임원 6천4백1명을 전수 조사해 30~40대 임원을 추려냈다. 30~40대 임원으로 파악된 1천7백43명에 대해서는 최종 학력, 담당 업무 등으로 분류해 특징을 꼽아보았다(도표 참조). 100대 기업은 매출액 기준이며 금융권은 제외했다.

100대 기업 전체 임원 가운데 40대는 1천7백16명(26.8%)으로 적지 않다. 30대는 27명(0.4%)으로 1%도 되지 않는다. 30대 임원 절반가량이 오너 집안 출신이다(64쪽 상자 기사 참조). 100대 기업 가운데 임원진에서 30~40대 비중이 가장 높은 기업은 SK텔레콤이다. 전체 임원 1백3명 가운데 65명(63%)이 40대 임원이다. 하지만 30대 임원은 한 명도 없다. 그 뒤를 금호산업이 이었다. 경영 정상화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젊음과 열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젊은 임원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 금호산업 관계자의 말이다. 금호건설은 건설업계 최초로 ‘건설은 패션이다’라는 독창적인 광고 콘셉트를 잡아 젊고 차별화된 이미지를 전하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그 밖에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LG CNS, 삼성전자 등 IT업종에서 젊은 임원들의 비중이 높았다.

IT·패션 관련 기업에 젊은 임원 비중 높아

트렌드를 선도하는 패션 업종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일모직은 63명 가운데 32명(50.8%)이 40대 임원이다. 제일모직 양희준 홍보과장은 “미드(미국 드라마)가 일부 마니아층에서 유행하던 2007년도에 ‘석호필’을 빈폴진 모델로 영입했다. 당시 ‘석호필’을 모델로 제안한 마케팅팀에서도 큰 기대를 안 했었는데 젊은 임원이 많은 덕에 받아들여졌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30~40대 임원의 출신 학교를 분석해보니 해외파가 2백15명(15.6%)으로 가장 많았다. 출신 학교 정보를 공개한 1천3백7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해외파 상당수는 미국 하버드 대학을 비롯해 해외 명문대에서 MBA이나 로스쿨 과정을 밟은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서울대가 1백84명(13.3%)으로 뒤를 이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와 카이스트를 제외하면 한양대 출신이 77명(5.5%)으로 가장 많았고, 지방대 중에서는 경북대 출신이 40명(2.9%)에 달했다.

젊은 임원들에게 주어진 임무로는 무엇이 가장 많을까? 고객들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마케팅(영업 포함) 담당 업무가 13.5%(2백37명)로 가장 많았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파악하고 고객들과 원활하게 소통해야 하는 마케팅 분야에 젊은 임원이 많다. 마케팅 업무처럼 트렌드를 반영하는 업무에는 젊은 임원이 적합하다”라고 설명했다. 그 다음으로는 경영전략기획이 7.9%(1백38명)였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자세가 필요한 자리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음으로는 해외법인 담당이 많았다. 쾌속 승진에는 사법고시를 합격한 법률 전문가들도 빠지지 않았다.

젊은 임원은 대개 소통에 능하다. 고객과의 소통뿐만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젊은 임원들은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대모비스 경영혁신실 윤치환 이사(37)는 “2007년에 현대모비스로 왔을 때 직원들과 회식 자리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같이 어울렸다. 그때 지금껏 그렇게 직원과 어울린 임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직원들과 마음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어려움도 적지 않다. 연륜에서 오는 권위를 가질 수 없는 데다가 직원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동료 임원들 가운데 젊은 편이어서 모임 자리나 부탁 등을 거절할 수 없어 개인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고충이라면 고충이다.

글로벌 시장의 환경에 맞춰 조직 재편

해마다 30~40대 임원의 비중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이다. 삼성에서 예고된 인사 태풍이 이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배경에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글로벌 수준으로 격상된 것도 한몫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대기업의 상당수는 해외 시장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의 환경에 맞는 조직으로 빠르게 재편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시점이라는 해석이다. 윤치환 이사는 “현대모비스가 2020년에 글로벌 톱5 자동차 부품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 문화가 보완되어야 한다. 지금 ‘도전과 실행’의 고유한 기존 조직 문화에 ‘신뢰와 혁신’의 조직 문화가 더해질 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이 보완될 때, 양적으로나 질적인 부분 모두에서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젊은 조직으로 변화하는 추세에 아랑곳하지 않는 기업도 있다. 100대 기업 가운데 9곳은 30~40대 임원이 한 명도 없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현대건설, E1,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한화건설, 대한해운, 대한유화가 그곳으로 과거 공기업이었거나 건설·조선 관련 기업들이다.

 


▲ 삼성SDS 임원 전문가 과정 ⓒ삼성 SDS
30대 임원 27명 가운데 14명이 오너 집안 출신이다. 20대 임원인 대한전선 설윤석 부사장(29)을 포함하면 총 15명이다.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너 집안 경영인 대부분이 해외파 출신으로 경영대학원(MBA)이나 로스쿨을 졸업한 이들이 많다. 자랄 때부터 오너 경영인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아왔음을 짐작케 한다. 이들의 담당 업무를 보면 전략기획이 압도적으로 많다. 15명 가운데 일곱 명이 경영 전략 또는 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 회사 경영 상태를 파악함과 동시에 조직의 변화를 최전선에서 이끌어내기 위한 인사 배치이다.

오로지 능력으로 30대 임원에 오른 이들은 총 12명이다. 효성이 네 명으로 가장 많고, LG전자가 세 명으로 뒤를 이었다. 효성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 30대 임원 두 명을 추가로 영입하면서 30대 임원 숫자가 많아졌다. 책임 경영 체제이기 때문에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는 인재로 뽑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30대 임원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최연소 임원은 1973년생인 OCI 김홍욱 상무보(37)이다. 지난해에는 1972년생인 현대모비스 윤치환 이사가 최연소였다. 1년 만에 최연소 임원의 나이가 한 살 더 어려졌다. S-OIL 이언주 상무는 30대 임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이상무는 S-OIL 임원진 가운데서도 유일한 여성이다. 학력이 공개된 여덟 명 가운데 다섯 명은 서울대를 졸업했고, 세 명은 해외 명문대 MBA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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