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디스크 삭제 대표, “어디서 왔나 물으니 대답 안 해”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11.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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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증거 담긴 하드디스크 삭제한 S사·D사 업체 대표 단독 인터뷰

 

▲ 지난 11월17일 기자와 만나 민간인 사찰 배후에 윗선 개입 의혹을 해소시킬 결정적인 증거인 ‘공직윤리지원관실 하드디스크’를 삭제한 정황을 말하고 있는 S업체 대표 박 아무개씨(사진 속 뒷모습). ⓒ시사저널 윤성호

 불과 1분 남짓한 시간과 현금 6만원에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장진수 주무관이 하드디스크 4개(공직윤리지원관실 진경락 기획총괄과장·이기영 감사관·원충연 사무관·권중기 경정의 내부망)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데 걸린 시간과 비용이다. 하드디스크의 내용물을 지우는 장비인 ‘디가우저’가 하드디스크 1개를 삭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에서 15초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업을 한 수원의 S사가 디가우저 사용료로 장주무관에게서 받은 비용은 1개당 1만5천원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은 지금까지도 정국을 뒤흔들고 있지만, 핵심적인 증거가 사라지는 것은 이렇듯 한순간이었다. 검찰의 늑장 대응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발 빠른 대응이 만들어낸 초유의 증거 인멸 작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시사저널>은 하드디스크 삭제 작업을 직접 수행한 S사 박 아무개 대표를 11월17일 만났다. 또 다른 관련 업체인 서울 D사 김 아무개 대표와도 다음 날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의 증언을 통해 지난 7월7일 벌어진 증거 인멸의 상황이 확연히 드러났다.

박대표가 장주무관으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은 것은 7월7일 점심 때쯤이었다. 디가우저 작업을 의뢰하는 내용이었다. 대개의 경우 기업 단위로 대량으로 삭제해달라는 의뢰가 많기 때문에 업체측에서 직접 장비를 가지고 출장을 가지만, 장주무관은 자신이 직접 하드디스크를 들고 업체를 방문하겠다고 했다. 소량 고객이었기 때문에 박대표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장비가 이동할 경우 별도의 출장비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장주무관이 S사를 방문한 것은 이날 오후 5~6시 무렵이다. 외부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박대표가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보니 장주무관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주무관은 가지고 온 하드디스크 4개를 꺼내 디가우저 작업을 요청했다. 작업에는 S사에서 제작한 디가우저 SD-100을 사용했다. 디가우저는 강한 자기장을 이용해 하드디스크를 고철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기계이다. 소프트웨어인 이레이저를 사용하면 복구할 여지가 조금 남아 있지만, 폐기 작업에 이용되는 디가우저 작업을 한 이후에는 복구가 전혀 불가능하다. 박대표는 “이레이저 작업은 하드디스크 하나 지우는 데 1시간 이상 걸린다.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저에 집어넣고 핸들이나 버튼으로 조작하면 10초가 조금 넘게 걸린다. 그래서 하드디스크를 대량으로 폐기할 때에는 주로 디가우저가 이용된다. 현존하는 정보 삭제 중 가장 완벽하고 빠른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박대표는 장주무관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100~2백개 이상 대규모로 작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계약을 맺고 작업하지만 이 일은 소량이었기 때문에 계약을 맺지는 않았다. 장주무관은 박대표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현금 결제를 원한다는 말만 한 채 6만원을 내밀었다. 박대표는 “어디서 온 것인지 대답을 하지 않아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짧은 머리를 한 것으로 봐서 군 쪽 보안이나 정보를 맡고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디가우저 작업을 하는 데 5분 정도 걸렸고, 장주무관이 사무실에 머물렀던 시간을 모두 합해도 10분이 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원래 장주무관이 처음 연락을 취한 곳은 수원의 S사가 아니라 서울에 있는 D사였다. D사는 데이터 복구와 삭제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D사는 직접 디가우저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관련 작업은 협력사인 S사에 의뢰해 처리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D사의 김 아무개 대표는 장주무관의 전화를 받고 평소와 다름없이 바로 S사 박대표에게 연락을 했다. 장주무관은 김대표로부터 박대표의 휴대전화 번호를 전달받고 문제의 대포폰을 이용해 전화를 걸었다. 김대표는 “사무실로 전화가 와서 상대방 번호를 알지는 못했다. 당일 처리를 원해서 S사로 바로 연결해주었다. 보통은 주로 우리 쪽에서 출장을 가는데 직접 방문하기를 원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데이터 삭제를 원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디가우저를 꼭 집어서 완전 폐기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으로 똑똑히 기억한다”라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 시작 두 달 반 지나 연락” 

▲ ‘공직자 윤리지원관실 하드디스크’를 삭제한 S업체에서 박 아무개 대표가 하드디스크를 삭제했던 그 기계를 이용해 당시의 작업 절차를 시연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데이터 삭제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가장 먼저 제기되었던 의문인 국무총리실과 삭제 업체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박대표와 김대표는 모두 강하게 부인했다. 박대표는 “국무총리실에 들어가 있다는 디가우저는 우리 제품이 아니다. 그 전까지 작업을 한 적도 없다. 검찰 수사를 받기 전까지 우리가 그 작업을 했다는 사실조차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검찰 수사도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과 우리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되었지만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김대표는 “(장주무관이)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우리 쪽의 번호를 안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포털 사이트에 ‘데이터 삭제’와 ‘디가우저’를 입력하면 D사의 이름이 나온다.  

<시사저널>은 이석현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서울중앙지검 수사2과가 의뢰해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관실이 작성한 13쪽짜리 분석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실 정영운 주무관의 내부망 하드디스크에 USB를 이용해 이레이저 프로그램 ‘East-Tec Eraser 2010’이 설치된 것은 7월7일 11시58분이다. 정씨의 하드디스크는 이레이저로 손상된 4대(김기현씨 외부망, 정영운 주무관 내부망, 김충곤 팀장 내·외부망) 중에서 일부 내용을 복구한 유일한 것이다. ‘민정수석 보고용’ 폴더에 들어 있던 ‘다음(동자꽃).hwp’ 파일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정씨의 내부망 디스크이다. 정씨 컴퓨터에 이레이저 프로그램이 설치된 시점은 장주무관이 D사에 처음 연락을 취한 시점과 일치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하드디스크 폐기 작업이 동시에 조직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데이터 삭제를 실시한 하드디스크 8대  가운데 디가우저를 사용한 4대가 어떻게 선택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자료가 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하다.

검찰의 늑장 대응은 박대표와 김대표의 증언에서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박대표가 검찰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은 것은 추석이 지난 9월27일이다. 신건 민주당 의원이 공직윤리지원관실 사찰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이 6월21일이고 검찰이 국무총리실을 압수수색한 것이 7월9일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 늦은 시점이다. 수사를 시작하고 두 달 반 만에 연락한 것이다.

박대표는 “장주무관이 찾아오고 한참이 지난 후였기 때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검찰에서) 왜 그렇게 늦게 연락을 했는지는 나도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대표는 장주무관의 인상착의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지만 하드디스크를 담은 가방에 대한 묘사 등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드디스크 삭제로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발표한 검찰이 직접 하드디스크를 삭제한 사람에게 수사 시작 두 달 반 만에 처음 연락을 했다는 점에서 부실 수사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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