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서구 지성의 맥을 잇다
  • 이춘삼│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1.29 18: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독일 대학 유학생

 

▲ 뮌헨 대학|하이델베르크 대학 ⓒ뉴스뱅크이미지

“우리의 근대 학문은 일본을 통해 들여온 독일 학문에 기초를 두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주류가 미국 쪽으로 급격히 옮겨가 이전 같지는 않지만, 철학·법학·의학을 중심으로 한 학계라든가 예술계에서 독일 유학생들이 갖는 의미는 여전히 부인할 수 없다 하겠다. 개개인에 따라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겠으나 학문적 전통이랄까 학풍으로 볼 때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이 성숙하고 안정감이 있는 것 같다. 독일 유학파들은 조용하면서도 학술적으로 철저하고 균형 감각이나 중량감, 사물을 넓게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1975~7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하고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최종고 교수(서울대 법대)가 느끼는 소감이다. 그는 현재 프라이부르크 대학 한국 동창회장직을 맡고 있다.

독일에 다녀온 유학생들을 유기적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ADeKo)’라는 모임이 있다. 여기 등재된 회원 수는 약 6천명. 전체 유학생 숫자는 2만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학들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프라이부르크 대학만 해도 알브레히트 대공(大公)이 1457년에 세운 학교로서 5백53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 독일 최고(最古)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1386년에 설립되었다. 1500년까지 독일 내에 세워진 대학은 10개이며 하이델베르크, 쾰른, 에어푸르트 대학이 1300년대에 설립되었다. 그 뒤를 이어 라이프찌히, 로스톡, 잉골슈타트, 트리어, 마인츠, 튀빙겐 대학이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더불어 1400년대에 세워졌다.

황태자가 맥주집 웨이트리스 캐티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은 소설 <황태자의 첫사랑(원제 <알트 하이델베르크>)>이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싹텄다. 신학·법학·의학·철학에 대한 연구가 깊은 이 대학은 오늘날에 와서 현대언어학 등을 포함해 12개 단과대학과 3개 대학원을 보유하는 학교로 성장했다. 19세기 독일의 대표적 실증주의 법학자 게오르그 옐리네크와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여기서 학문을 연마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역시 초기에 신학·법학·의학·철학 네 학과로 출발했는데, 설립자는 중세 군주의 시각에서 행정 관리 양성을 위한 법학과 가톨릭 교회를 위한 신학에 관심을 쏟았다. 1880년대에 이르러 학과가 세분화되고 대학병원과 자연과학 연구소들이 독립 단지로 들어 서며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1900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이 여학생 등록을 받으면서 독일 최초로 여대생이 탄생했다. 프라이부르크는 포도주로도 잘 알려진 도시인데, 이 대학도 자체 포도원에서 훌륭한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어 학생들이 포도주 한 잔 때문에 엄한 처벌을 받았던 중세 기숙사와는 격세지감이 있다.

이 두 학교를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이 학교가 뮌헨 대학 등과 함께 입학 허가를 받기가 비교적 어려운 학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어느 특정 대학이 명문이라는 개념은 희박하다. 대학교 자체로 등급을 매기기보다는 전공 학과와 유능한 교수에 따라 우열이 갈린다. 따라서 학생들이 하고 싶은 공부와 교수를 찾아서 움직인다. 예를 들어 정치학이나 의학이라면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법학이나 의학은 프라이부르크 대학을 선택하는 식이다. 아헨, 슈투트가르트, 칼스루에 대학은 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문에 속하며, 경영학에서는 만하임 대학이 최근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강신호 회장, 프라이부르크 대학 ‘명예 세너터’로

법학이나 의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대학이라도 공학이나 이학 쪽의 강좌를 개설하고 있지 않아 세계 대학 랭킹에서 뒤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학 평가에는 모든 요소를 감안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학도들은 뮌헨 대학이나 아헨 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동창이며 이 학교 명예 세너터(Senator)인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은 동창회를 위한 물심양면의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을 뿐 아니라 한·독 간 우호 증진에도 많은 공헌을 해왔다. 그가 프라이부르크에서 공부를 시작한 것은 1956년이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직후 가친을 도와 동아제약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계를 주문하러 갔던 길에 먼저 가 있던 대학 선배 이문호 전 서울대 의대 교수(대한의학회장 역임, 작고)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마침 하일마이어라는 혈액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부터 지도를 받아 2년 만에 내과학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동아제약과 라미화장품 회장,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고향인 경북 상주의 상주고 재단 이사장, 서울대 동창회-유엔한국협회-한국제약협회-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등 수많은 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펼쳤다. 29-30대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고, 2006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 명예 세너터(Senator)로 추대되었다. 83세의 고령인 지금도 매일 사무실에 출근할 만큼 건강을 지키고 있는 강회장은 동아제약의 히트 상품인 박카스와 오란씨, 최근 개발한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 등의 이름을 직접 지은 아이디어맨으로도 통한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출신들은 이 도시를 문자 그대로 ‘자유성(自由城)’이라고 부르기를 즐긴다. 슈바르츠발트에 자리 잡은 이 도시가 그만큼 고색 창연하고 고즈넉해 사람의 심성을 차분히 가라앉혀 준다는 뜻이다. 이 대학 학생들은 이곳에서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볕을 즐기며 학문을 논한다.

 

 

현 동창회장직을 맡고 있는 최종고 교수는 서울대 법대에서 주류인 실무법학을 마다하고 법사상사를 가르친 국내 유일의 교수이다.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전기학회는 올해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가졌다. 전공을 위주로 활발한 저술 활동과 시화(詩畵)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최교수가 회갑을 맞아 그동안 펴낸 책을 쌓아 놓으니 자신의 키와 얼추 비슷하더라고 한다.

차후 역사의 평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기천 전 서울대 총장(서울대 법대 형법 교수, 작고)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봇물 같은 시위가 격랑처럼 분출하던 1971년 프라이부르크에 소재한 막스플랑크 형법연구소를 다녀왔다. 사후 제자들을 중심으로 기념사업회와 기념사업출판재단이 설립해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막스플랑크 재단이 운영하는 세계적 수준의 형법연구소와 의학연구소가 있다. 국내 현직 검사들이 매년 이 형법연구소를 방문해 연구할 기회를 가지는데, 같은 시기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적을 두고 학위 공부를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 최경원 전 법무부장관, 박순용 전 검찰총장, 김진환 전 서울지검장(형사정책연구원 원장), 조규정 전 광주지검장, 조승식 전 인천지검장, 박한철 전 서울 동부지검장 같은 사람들이 이 경우에 속한다. 이들은 독검회(獨檢會)라는 모임을 갖고 친목을 다진다.

소신 이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아 ‘영원한 수사 검사’로 불렸던 심재륜 변호사와 조폭들로부터 ‘해방 이후 최고의 악질 검사’라는 지탄(?)을 받았던 조승식 변호사는 스승과 수제자의 관계였다. ‘사제(師弟)’가 손발을 맞춰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환, 영도파 두목 천달남, 국내 3대 폭력 조직의 대부로 통하던 이육래 등을 단죄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김현철씨 수사 당시 아들을 구속시킨 검사 앞에서 대통령도 부르르 떨더라는 일화를 가지고 있는 심 전 변호사와 죄를 지은 죽마고우의 전화를 받고 안심시킨 후에 검찰청으로 불러들여 구속시켰다는 조 전 변호사의 활약상은 우리 검찰사의 전범(典範)으로 남기에 충분하다.

마르부르그 대학도 법조인들이 자주 찾는 학교이다. 김황식 국무총리(전 대법관), 손지열 변호사(전 대법관), 황우여 의원(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이 학교를 찾아 공부를 했다.

 

 

이기수·김선욱 등 대학 총장들 다수

함부르크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김민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은 강단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는 일 외에도 국립교향악단, 바로크합주단, 베를린방송교향악단, KBS교향악단 등 국내외 오케스트라 활동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을 역임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그는 독일 바이로이트 바그너 음악제에 한국인 연주자로서는 최초로 20년 넘게 참가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 축제는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가 1876년 바이로이트에 축제 극장을 짓고 자신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선보인 이래 100년 넘게 해마다 7~8월 한 달간 오페라 공연을 해 오고 있는 세계적 음악제이다. 그는 1977년 함부르크 북독일방송교향악단 단원 시절 인연을 맺어 매년 여름휴가를 가족과 지내지 못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이 일을 계속해냈다.

 

 

거개의 독일 유학파들은 국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학자들이다. 가장 많은 서울대 법대 교수들이 유학한 대학이 프라이부르크 대학이고, 2위가 하버드 법대이다.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튀빙겐 대학 법학 박사 출신이다. ADeKo 회장을 지냈다. 모교인 고려대에서 법학을 강의했고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2008년 2월부터 제17대 총장으로 재임 중이다. 이총장은 호방한 인상처럼 인맥이 넓고 마음 씀씀이가 후해 따르는 교수와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지막 강의 시간에는 “언제 어디서라도 이기수 교수라면 해결해줄 것이다 싶으면 연락하라”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후배들은 그에게 ‘당산대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총장의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모두 고려대 동문인 ‘고대 가족’이다. 서울대를 나온 아내까지 고대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이수하게 했다고 한다.

지난 8월에 제14대 총장으로 취임해 2014년까지 이화여대를 이끌어나갈 김선욱 총장은,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독일 콘스탄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해 오며 2005년부터 2년간 법제처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한국공법학회 부회장,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장,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장을 역임했다. 꼼꼼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완벽주의자라는 평을 듣는다.

독일 빌레펠트 대학 사회학 박사인 이각범 한국미래연구원 원장 겸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은 항상 가방을 두 개 들고 다닌다. 하나는 손에 들고 또 하나는 어께에 메는 소형 가방이다. 그의 성실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동국대와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강의를 했고, 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한국정보통신대 경영학부 교수와 정보사회학회 회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상기 직책에서 정보화 정책과 국가 전략을 연구하며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경영과학과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