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최후의 보루’학교가 무너지고 있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11.2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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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은숙

전교조에 비공개로 접수된 교권 상담 일지에 비친 교사들은 스트레스와 고민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반면, 학생들은 ‘학생 인권을 지켜달라’며 분노하고, 학생과 교사의 갈등에 학부모가 개입해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교정 안을 들여다보았다.

학교가 위기에 놓여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의 문제는 ‘학생 폭력’과 ‘따돌림’(왕따), ‘성적 비관 자살’ 등으로 대변되었다. 그런데 요즘 학교는 ‘사회 범죄의 축소판’이 되고 있다.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사들은 각종 비리에 몸살을 앓고 있다. 교사에 의한 학생 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교단에서는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폭행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스승과 제자 간 ‘금단’의 관계도 무너졌다. 교사와 학생이 공공연하게 이성 교제를 하고, 학교 밖에서 성관계를 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학교 안에서는 성추행과 성폭행 등 각종 성범죄가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다. 경기도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이 ‘체벌 전면 금지’ 조치를 취하자 교사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학생들은 경기도의 ‘학생 인권 조례’가 다른 시·도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학생과 교사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학교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 2007년 4월14일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아수나로 등 청소년 단체 소속 학생들이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라는 집회를 열고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의 최후 보루인 ‘학교’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도대체 지금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최근 2년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에 비공개로 접수된 교권 상담일지를 입수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에서는 교권 상담 사례를 제공받았다. 여기에는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실제 몇몇 교사들은 기자에게 담장 안 학교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에 따른 스트레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총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교권 침해 사례 2백37건 가운데 학생·학부모의 폭언, 폭행, 협박, 무고성 민원, 담임 교체 요구 등이 절반에 가까운 1백8건(45.6%)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는 학생과 교사의 갈등에 학부모가 개입하면서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는 일이 많았다.

지난 11월10일 전교조 교권 상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는 자신을 대구에 있는 한 중학교의 교사라고 밝히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평소 학습 태도가 불량한 여학생이 수업 교재를 가져오지 않자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두 대 때렸다. 그러자 여학생이 기절했고, 곧바로 보건실로 옮겼다. 이후 별다른 이상이 없어 교실로 온 학생은 귀가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해당 여학생의 부모가 “체벌 때문에 애한테 이상이 생겼다”라며 큰 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진단) 검사 등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교사에게 병원비 70만원을 청구했다. 이 교사는 학부모에게 병원비를 지급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체벌받은 학생의 부모가 위자료 요구하기도

▲ 지난 11월23일 서울 양재동 한국교총에서 체벌 금지 시행에 따른 대안 모색을 위한 현장 교원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 8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2학기 초에 중학교 2학년 학생이 교사를 여러 번에 걸쳐 놀려 댔다. 해당 교사는 재차 주의를 주었으나 학생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교사가 학생의 뺨을 때렸는데 고막이 파열되고 말았다. 그 후 학부모가 이를 문제 삼고 치료비와 위자료 명목으로 교사에게 1천만원을 요구해왔다고 한다. 

상담 사례로 보면 여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 간에 ‘외모 문제’로 인한 갈등이 많았다.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여교사가 학부모에게 폭행당했다. 당시 학교에서 쉬쉬하는 바람에 이 일은 학교 담장을 넘지 않았다. 해당 여교사가 털어놓은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한 여학생이 치마를 너무 짧게 입고 다녔고, 담임인 교사는 여러 차례 주의를 주고 상담도 했다. 그 여학생도 ‘다시는 치마를 짧게 입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다.

한 번은 아침 조회 시간에 문제의 여학생이 치마를 길게 입어서 칭찬까지 했다. 그런데 종례 때 보니 역시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알고 보니 조회 때에는 다른 친구의 긴 치마를 입고, 종례 때 다시 바꿔 입은 것이었다. 담임 교사는 해당 학생과 친구를 불러서 상담을 했고, 그 자리에서 문구용 칼을 주고 본인 손으로 치마 단을 뜯어 길게 만들어 입도록 했다.

그런데 다음 날 학생의 어머니가 교실로 찾아왔다. 담임을 보자마자 “수업을 참관하겠다”라며 폭언을 했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 교사의 얼굴을 때렸다. 교장이 중재해 교장실에서 학생의 어머니와 마주했으나 사과 대신 수표를 내보이며 “이거면 1년치 되겠느냐”라며 촌지를 뜻하는 말투로 교장과 담임을 조롱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한 여중에서 일어난 일이다. 1학년 학생을 학습 지도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의 볼에 손톱으로 상처를 냈다. 그런데 올해 8월 2학기 개학을 앞두고 학생이 “외모 스트레스를 받는다”라며 성형 수술비 1백20만원과 치료비 등을 합쳐 1백70만원 정도를 교사에게 요구했다.

한국교총 홍보위원인 남정권 부천공고 교사는 “학생 인권은 지켜져야 하지만 현행 인권 조례는 목적과 방법이 바뀌어 있다. 학생 인권 문제는 법 이전에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과 의사소통이 우선해야 한다. 학교만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 국가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다”라고 강조했다.

학생들 “교사와 수직 관계인 이상 발전 없다”

학부모들도 학교나 교사에게 할 말이 많았다. 지난 10월 중순쯤 강원도 한 중학교에서 음악 교사가 학생을 체벌한 일이 있었다. 학부모는 해당 학교 교장에게 항의했으나 돌아온 답변이 가관이었다. 학교장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은 것이지, 왜 학교를 시끄럽게 하느냐”라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학부모는 “학교장과 교사의 태도에 참을 수 없다”라며 대응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이혜숙씨(가명)는 지난해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복받친다. 아들 박형석군(가명)이 2학년이던 지난해 11월 체육시간 때였다. 형석이가 목이 말라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그런데 이를 본 여교사가 형석이의 머리채를 잡고 폭언과 함께 각 반을 돌아다니며 인신 모욕을 한 것이다. 그 뒤로 여교사 두 명이 형석이를 계속 모욕하며 트집을 잡았고 교사들 사이에서 왕따를 시켰다. 이 일로 형석이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만 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학교나 교사들에 대한 불만이 무엇일까. 청소년인권행동단체 ‘아수나로’에 오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북 지역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최성민군(가명)이 최근에 경험한 일이다. 최군은 학교 두발 단속 때 걸려 교사에게 기합을 받고, 학생부로 불려갔다. 학생부장이 “머리 자르지 않을 거야?”라고 묻자 최군은 “잘라야 할 이유가 없다”라며 거부했다. 그러자 학생부장은 최군의 뺨을 두 차례 때린 후 “교장이 자르라고 하는데 이유가 없어? 이 건방진 ×새끼가”라며 폭언을 했다. 최군은 최초에 두발 단속을 한 교사에게도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고 한다. 그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는 수직 관계인 이상 둘 사이의 발전은 불가능하다”라고 토로했다.

학교 안에서의 ‘이성 교제’를 규제하는 것에도 불만이 있었다. 한 학생은 “학교는 우리가 큰 사회로 나가기 전 개개인의 다원성을 존중할 줄 아는  가치관을 형성해주고 사교성과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학생들의 감정, 특히 인간의 감정인 우정·사랑 등의 기본적인 감정들은 학교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이를 탄압하고 있다. 학생이라는 직책이 인간의 기본 감정을 억압하면서까지 중요하게 지켜야 할 신분인가. 어떤 이유에서도 이성 교제를 탄압하는 것은 합리화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지금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과도기적 상황이다. 체벌 금지나 학생 인권 조례 등에 대해 교사나 학생이 준비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교권을 보호한다고 학생의 인권을 소홀히 할 수 없고, 학생의 인권만을 내세우며 교사의 권리를 축소할 수 없다. 아직은 혼란스럽지만 차츰 자리를 잡아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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